<미추홀 정가원>은 자기를 찾아가는 길목

2021.04.13 11:13:39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1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UCLA 한국음악과와 감동석 교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2014년 학과의 폐과 위기에도 한국 정부는 무관심이어서 소중한 전통문화의 전진기지를 잃게 되었다는 점, L.A 교육국은 <한국음악> 수업을 세계음악 강좌(world music classes)의 하나로 인정을 해 주어 대학진학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의 초ㆍ중ㆍ고교의 순회공연도 연 100회였다는 점, LA <한국문화원>이나 대학이 주최하는 한국문화 세미나와 zoom을 통한 음악 동호인, 교사들을 위한 특별강좌를 해 왔다는 점, 최근 세계인명사전출판협회로부터 <평생공로상>에 선정되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이번주 에는 국내 이야기로 돌아와 인천 부평구 소재 <미추홀 정가원(正歌院)> 관련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2년 전 겨울, 나는 인천 부평구 소재 미추홀 정가원 정례발표회에 초대되어 그들의 발표내용을 관심있게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박금례(한양대 미래교육원 교수) 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정가원은 “살리는 공간, 자기를 찾아가는 길목”이라고 설명했다.

 

살리는 공간이란 무엇이고, 자기를 찾아가는 길목이란 또한 무슨 의미인가? 어렴풋이 감이 잡히기는 하나, 정가원이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그곳이 노래, 정가를 배우는 곳은 분명해 보인다. 미추홀이 인천의 옛 이름이고, 정가(正歌)가 ‘바른 노래’라는 뜻이므로 “인천지방에서 바른 노래를 지도하는 곳” 정도로 해석이 되는데, 그렇다면 <바른 노래>란 어떤 노래인가 하는 문제부터 접근해 보기로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전통음악에서 “바른 노래”의 범주에 속하는 분야는 가곡(歌曲), 가사(歌詞), 시조(時調), 시창(詩唱)과 같은 비교적 속도가 느린 노래들이 포함된다. 이들 노래는 부르는 이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불러나가는 점, 곧 기쁨의 감정이나 혹은 슬픔의 감정을 억제하며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노래를 부름에 있어 멋이나 기교를 배제한다면 그 노래는 맛이 생략된 재미가 없는 노래가 분명하다. 맛이 없어 재미가 없다는 이러한 노래를 즐겨 온 계층은 이름난 선비나 지식인 계층이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래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밥>이나 <물>에 비교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주식은 쌀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매일 매일 밥을 먹고 물을 마신다. 그런데 밥이나 물은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매일 먹고 마셔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먹었어도 점심때 또 먹게 되고, 저녁에도 또 먹으며 내일도, 모래도 1~2년이 아니라 평생을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음식이다. 물도 마찬가지이다. 목이 마르면 많은 음료수가 있지만 물을 마신다. 그것도 산속의 샘물을 제일로 찾는다. 물은 맛이 들어 있지 않기에 하루에도 여러 차례 목이 마를 때마다 마실 수 있다. 만일 맛이 들어 있는 음료라면 그렇게 마실 수 있을까!.

 

정가는 밥이나 물과 같은 노래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맛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디 노래라고 하는 것은 기분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것이어서 기쁠 때 부르는 노래는 즐겁고 명랑한 마음을 담고 있어서 노래의 분위기도 비교적 밝은 편이지만, 상대적으로 슬픔을 간직하고 부르는 노래는 그 분위기도 슬프게 나타내게 마련이어서 그 끝이 타들어 가듯 어둡고 느린 편이다.

 

그래서 음(音)이 일어나는 것은 곧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凡音之起 由人心生也),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물건이 있어 그렇게 시키기 때문(人心之動, 物使之然也)이라고 했다.

 

이 말은 곧,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이 있어서 그 영향으로 내 마음이 그렇게 움직인다는 말인데, 그 어떤 대상을 통칭하는 것이 물(物), 곧 세상만물이 나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게 만든다는 말이다.

 

 

내 마음은 내가 결심하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나 대상물의 반응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내 마음이 내 결심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아주 쉽게 각자의 일상을 생각해 보자.

 

오늘 아침, 그대가 집을 나서면서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를 기분좋게 지내야겠다!”“누가 내 뒤에서 나를 욕하고, 흉을 본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심한 대로 하루를 기분좋게 지내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고 하자.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거기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과의 접촉에서 깨끗하게 차려입은 옷이 꾸겨지거나 머리가 헝클어지고, 또는 상대의 짜증 섞인 말이나 화내는 말에 기분이 상할 때가 생긴다. 자가용으로 이동할 때도 전혀 생각지 못한 접촉사고나 주차 문제 등으로 인해 남과 다투게 되기 때문에 ‘오늘 하루 기분 좋게 보내야겠다’라고 결심한 마음이나 결심은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수없이 경험해 왔을 것이다.

 

나의 하루를 스스로 기분 좋게 보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상대의 기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대의 기분이 내 기분을 좌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끼리의 언행은 상대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게 마련이어서 특히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평생 먹고 마셔도 또다시 찾게 되는 밥이나 물에 재미가 없는 정가(正歌)를 비교하는 이유는 맛이 들어 있지 않기에 싫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미추홀 정가원>이 곧 사람의 감정을 살리는 공간이며 자기를 찾아가는 길목이라는 표현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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