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 인기작가 이하라 사이카쿠 책 번역본 나와

2021.04.28 12:42:45

[맛있는 일본이야기 598]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미녀는 ‘남자의 앞길에 해로운 존재’라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오고 있는데 그도 그럴 만하다. 이마카와 우네메(今川采女)라는 사람은 태어난 에치고(越後, 현재의 니가타현)에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거듭하다 결국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일가(一家)가 없는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2년 남짓 정을 나누던 여자가 있었는데 이 여자가 이 무렵 이별을 슬퍼해 “어디든 함께 데려가 주세요”라며 소맷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여자가 워낙 절실히 원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여자를 데리고 두 사람은 지역의 경계인 검문소를 피해 도망쳐 간신히 위험한 에치고를 벗어나 시나노(信濃, 현재의 나가노현) 길로 들어섰다.“

 

 

이는 에도시대의 인기작가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가 지은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이야기(西鶴諸国ばなし)》 제5권 제4화의 첫 대목이다. 살던 고향에서 간신히 도망친 부부(정식 부부는 아니지만 편의상)는 밤이 되어서야 낯선 동네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생판 모르는 동네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 마을에 숙박을 할 수 있는 집이 몇 집 있었으나 부부가 워낙 늦게 마을에 도착하는 바람에 방이 동이 났다. 부부는 하는 수 없이 잘 곳을 물색 중에 친절한(?) 마을 사람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는데 이게 문제였다.

 

이 집 주인은 마을에서도 소문난 깡패 두목 집이었는데 집으로 들어서는 부부의 행색을 보니 부인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 밤에 부하들을 불러 모아 이 부인을 겁탈하기로 한다. 부하들과 작당을 한 집주인은 부부 중 남편을 묶어 놓고 부인을 차례로 돌아가며 성폭행을 하는데 부인으로서는 너무나도 황당한 일이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인 이하라 사이카쿠는 부인이 겁탈하는 사내들 등짝에 검은 숯의 손자국을 나게 하고 이튿날 관가에 가서 이 집주인을 고발하는 것으로 결말을 내고 있다. 관가에서는 이 사내들 가운데 18명에게 사형을 내린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스운 판결이지만 아무튼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고 있다. 백미는 이 부부가 서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이야기다. 조금은 황당한 이런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 책이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이야기(西鶴諸国ばなし)》 다.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이야기》라고 하면 얼른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일본판 전설의 고향’이라고 하면 ‘어? 재미있겠는데...’라며 흥미가 있을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고전명저독회> 회원들이 이번에 펴낸 따끈따끈한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지방은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와 같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의 외진 농촌이나 산골에 이르기까지 일본 전역에 이르고, 등장인물 또한 당시의 중심 계층이던 무사와 상인을 비롯해 선인(仙人), 덴구(天狗)와 같은 비현실 세계의 존재까지 매우 다양하다.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이야기》에는 신기하고 기묘한 35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야기마다 삽화가 함께 실려있어 이해를 돕고 있다. 삽화는 당시에 그려진 것으로 이야기의 이해에도 도움이 되지만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암호가 담겨 있어 이를 짚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이야기(西鶴諸国ばなし)》, 한국외대 <일본고전명저독회> 회원 지음,

지만지 출간, 20800원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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