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기, 가족 반대에도 소리꾼의 길 선택

2021.05.24 22:29:30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2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방영기 명창의 국악입문 50돌을 기념하여 영상으로 제작된 공연 내용을 소개하였다. <산타령>의 <놀량>을 독창으로 불러 선소리꾼으로의 공력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는 이야기, 성남의 명창들과 함께 경, 서도민요를 흐드러지게 불러 주었다는 이야기, 지경다지기 소리는 방영기 명창이 발굴한 작품으로 경기 중부지역의 음악적 토리와 특색있는 선율로 짜여져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방영기의 고향은 경기도 성남, 분당구 이매동이다. 5대째 200여 년을 한자리에서 살아온 뿌리 깊은 집안의 2남 8녀 가운데 장남이다. 10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는데, 어린 시절을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지금과는 달리 이때만 해도 아들로 태어난 것은 집안의 경사로 여겼던 시절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성장과정에서 조부, 조모님의 사랑도 하늘만큼 높았고 바다처럼 깊었지요. 그런데 저는 어려서부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춤과 소리를 배우겠다고 하자, 가문의 종손이 춤꾼이 되려고 하고, 소리꾼이 무슨 말이냐라며 집안에서는 절대 반대를 하셨지요. 당시만 해도 춤을 추고 소리를 한다고 하면, 이를 '딴따라'라고 불러, 집안 망신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 것은 당연했지요.”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고 하는 점은 쉽게 수긍이 된다. 그러나 어린 방영기의 결심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는 무언의 시위를 통해 아버지의 절대적인 반대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자기 생각을 밝혔다. 지금도 그렇지만, 60여 년 전, 부모님들도 자식의 생각이나 뜻을 이겨내기 힘들었던 것일까? 결국 아버지도 어린 방영기의 고집을 꺽지는 못 했다. 어린 시절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어린아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민요가락을 듣고 어떻게 스스로 어깨춤을 출 수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자식의 요구를 묵살하지 않고, 존중해 준 부모님의 판단이 오늘날 한국의 큰 명창이 태어날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일까? 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그를 보면, 방영기에겐 분명 남다른 끼'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부터 그는 당시 민속춤의 대가 한영숙을 찾아가 전통무용을 배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는 경기소리의 대가였던 이창배 명인에게 긴잡가와 휘몰이잡가, 경서도 창의 이론적인 내용과 실창을 폭넓게 배우기 시작했고, 산타령의 인간문화재였던 정득만, 경기민요의 김옥심, 그리고 최창남과 황용주 등에게 다양한 경기소리들을 배웠다고 한다.

 

방영기는 이러한 노래를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또한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소리를 내 연습하고, 암기하는 그 자체가 즐거웠다고 회고하고 있다. 처음엔 도저히 흉내 내기 어려웠던 가락들이었지만, 그 어려운 가락이나 표현들이 연습을 통해서 자기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과정이 너무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스스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누가 시켜도 그 배움을 지속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방영기는 춤을 추며 노래를 배우고 부르는 것이 적성에 맞았고 재미가 있었다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분당에서 당대 유명한 명인 명창들이 자리잡고 있던 종로 3가까지 수시로 나와 배우는 열정을 보였다. 주변에선 어린이가 그토록 열심히 배우는 모습을 보면서 "기생 오라버니 되려고 하니?", "신이 들렸나 봐!"라고 수군거렸지만, 방영기는 아랑곳하지도 않았고 배움을 주저하지도 않았다. 진정으로 '춤꾼'이 되기 위해, 그리고, '소리꾼'이 되기 위해 정말 미친 사람처럼 이매동 촌구석에서 서울 한복판까지 올라 다녔다. 어느 때는 배고픔을 참아가며, 또 어느 때는 눈비를 맞아가며, 수십 리 먼 길을 걸어서 가고 오고를 했다고 한다.

 

소리꾼이 되기 위한 방영기의 노력은 점점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무대에서 발표공연에 참여하기도 하고, 각종 경연대회에 출전하여 경쟁자들의 실력도 비교해 보고, 본인의 수준이나 노래실력도 평가를 받아 본 것이다. 점점 방영기를 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991년, 제2회 경기국악제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입상해오다가 1999년, 제6회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드디어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게 되었다.

 

 

특히 경기민요로 대통령상을 받는다는 것은 실로 하늘의 별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본인의 영광은 물론이고, 온 가족, 산타령보존회, 경기소리계, 성남시민 등등의 자랑이었다. 특히 "집안의 경사이며 마을의 큰 경사"라며 눈물을 흘리셨던 어머니와 가족들의 기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성남지역 국악인으로서 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방영기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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