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놀이 발굴에 앞장서 온 방영기 명창

2021.06.07 21:15:54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2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소리 공부 30년에 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을 거머쥔 방영기 명창의 이야기를 하였다. 수상했을 때의 결심으로 해마다 개인발표회를 열어 오고 있는데, 지난해는 국악입문 50돌이었으나 감염병 확산으로 무관중 영상 공연을 하였다는 이야기, 2009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선소리 산타령의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되어 그 보급과 확산에 전력하고 있다는 이야기, 성남이라는 지역사회에서 전통놀이를 발굴하였고, 공연 작품으로 재구성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판교 널다리 쌍용 거 줄다리기>의 발굴과 재현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이 종목은 현재 성남의 대표적인 공연 작품으로 재구성하여 많은 시민의 관심을 받는 작품이 되었다.

 

우선, <판교 널다리 쌍용 거 줄다리기>라는 긴 이름의 놀이는 정월 대보름날, 널다리 마을(판교동)에서 행해졌던 민속놀이의 하나다. 이름이 긴 놀이, 그 뜻부터 풀어보도록 한다.

 

지금 판교(板橋)신도시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일대에 조성된 계획도시로 대도시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기능을 분담하고 있지만, 첨단과학이나, 또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경부고속도로 들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새롭게 부상한 지역이 판교다.

 

판교라는 이름은 다리라는 뜻이다. 그것도 돌이나 쇠로 만들어진 다리가 아니라, 나무 그것도 여러 가닥을 낸 판자, 곧 널판으로 다리를 놓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통나무를 그대로 올려 만든 다리라면 몰라도, 판자로 만든 다리는 사람이나 무거운 물체가 이동할 때, 출렁출렁 흔들리게 마련이다. 판자 다리, 곧 판교가 있는 동네 이름을 예전에는‘널다리’ 또는 ‘느다리’라고도 불렀다.

 

쌍용(雙龍)이란 두 마리의 용을 뜻하는데, 여성을 의미하는 황룡(黃龍)과 남성을 의미하는 청용(靑龍)을 일컫는다. 거(巨)는 크다는 뜻, 그러니까 <판교 널다리 쌍용 거 줄다리기>라는 민속놀이는 널다리가 있는 동네에서 두 거대한 용을 만들어 줄을 당기고 밀면서 승패를 가리는 민속놀이의 하나다.

 

 

방영기 명창은 “1970년대 초,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길을 가로지르는 신작로를 따라 길게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이곳에서 정월 대보름날에 줄다리기가 행해졌다고 합니다. 이 행사를 위해 대보름 며칠 전부터 마을의 남자들이 모여 줄을 꼬았는데, 수십 미터가 넘도록 굵고 길게 만들어야 해서 마을 주민 3~4명이 약 1주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꼬아야 했다는 겁니다. 줄은 작은 줄 18가닥을 엮어 중(中) 줄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엮어서 대(大)줄을 만듭니다. 만드는 형태도 각기 달라 청용 줄은 남근형으로, 여성형은 활룡줄로 만들지요. 광장이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없어지게 되자, 마을에서는 그 뒤편에서 줄을 꼬아 그 자리에 보관하고 행사 당일 옮겼던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민속놀이의 대표적인 종목, 줄다리기는 지방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대체로 만장과 풍물패를 앞세우고 주민들이 함께 흥을 돋우면서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줄다리기가 끝난 뒤에는 청룡줄을 황룡줄에 끼우고, 잘 깎아 온 비녀목을 꽂는다.

 

대보름 저녁, 주민들은 한 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를 지낸 뒤, 줄다리기를 하는데, 그에 앞서 간단한 의식도 갖게 마련이다. 특히 이 놀이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청룡줄에는 기혼 남성, 황룡줄에는 여성과 미혼 남성이 한편이 되어 각각 세 번씩을 당기는데, “여성 황룡줄이 두 번을 이겨야 풍년이 든다”라는 속설 때문에 대체로 활룡줄이 이기도록 힘을 쓰는 편이라고 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음식을 나누어 먹는데, 이날의 음식은 마을의 전 주민이 합심하여 공동으로 준비했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민속놀이는 북과 장고를 앞세운 풍물패가 태평소의 능계가락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한마당 놀이를 하고 난 뒤에, 황룡줄과 청룡줄을 강이나 냇가에서 태워 액운을 물리치는 것으로 줄다리기 놀이는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이다.

 

판교의 <쌍용 거 줄다리기>와 유사한 민속놀이가 여주의 흔암리에서도 전승되는데, 이것은 경기도 지역의 쌀농사 문화가 지닌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 주는 사례로 보인다. 농촌이 하루아침에 현대화되는 환경 속에서, 이와 같은 옛 민속놀음의 순서와 방법을 꿰고 있던 촌노(村老)들도 떠나버린 마당에 전통의 민속놀이가 온전하게 보존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일찌감치 간파한 방영기 명창은 지역의 잃어버린 전통문화를 되찾는 작업에 앞장에서 왔다.

 

방영기 명창이 선대의 옛 전통이 올바로 전승될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을 설득하고, 전문인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함께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성남은 옛 전통놀이를 하나씩 복원해 나가는 명품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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