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배우기'로 삶의 의미를 찾는 마츠우라 씨

2021.10.20 11:02:30

[맛있는 일본이야기 62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사히신문에서는 지난 9월 6일부터 10일까지 모두 5회에 걸쳐 한국관련 기사를 연재했다. 그 주제는 '이웃나라의 언어' 였다. 글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제1회: 조선어인가 한국어인가 요동쳤던 강좌명    (2021.9.6.)

제2회:현장에서, 50년전 결심하고 배운 시민         (2021.9.7.)

제3회:현장에서, 일본과 한국을 연결한 두명의 시인(2021.9.8.)

제4회:현장에서, 괴롭고 씁쓸한 모국어의 추억     (2021.9.9.)

제5회:현장에서, K pop에 빠진 젊은이들            (2021.9.10)

 

'이웃나라의 언어'라는 것은 곧 한국어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한국어'라고 맘대로 부르기가 어렵다. '한국'이라는 이미지는 대한민국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국어'에는 북한이 포함되지 않는다. 일본에서 북한어는 어디까지나 '조선어'다. 남과북으로 갈리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아사히신문에서는 5회나 걸쳐 지면을 할애하여 '한국어(조선어)'를 다뤘다. 그것은 단순한 언어만이 아닌 것으로 언어를 매개로한 '인물, 문화,역사' 등을 두루 다루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깊다.

오늘은  제5회 연재분을 소개하겠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것은 필자가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일본어를 공부한 임철완 선생이 번역한 것을 일본의 구라하시 요코 씨가 감수한 것이다.  며칠전 지인 구라하시 요코 씨는 아사히신문에서 연재했던 5회분의 한국어 번역본을 내게 보내왔다. 아래에 제5회 연재분을 그대로 소개한다. 

 

현장에서, K pop에 빠진 젊은이들.  이웃나라의 언어(5) 2021년 9월 10일


야구부가 여름의 고시엔 대회에서 처음 출전하면서 베스트-4 로 건투한 경도국제고교. 이 학교의 전신은 전후에 재일동포를 위하여 바로 만들어진 민족학교이었다. 이전 이름은 경도학국고교이다. 후에 일본의 학교교육법1조 학교로서 인가를 받아 2004년에 새 교명으로 출발하였다. 학생수는 132명으로 남녀 비율은 거의 절반씩이다. 한국에 뿌리를 둔 학생은 지금 약 30% 정도이다. 남학생은 거의가 야구부원이다. 한편 여학생의 많은 수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입학하였다. 


한국어가 필수과목으로서 한국인이 가르치고있다. 한국의 지리와 역사도 배운다. K pop의 아이돌(방탄소년단)의 영향으로 수년 전부터 여학생 지원자가 급증하였다고 한다. 신형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확대 전에는 현지에서의 어학연수와 수학여행도 있었다.

 

 

입학전부터 한글을 읽을 수 있어서, 다짜고짜 중급반으로 들어가는 1학년학생도 있다. 日吉 花葉(15)는 초등학교 5학년때 K팝에 빠졌다. 어머니가 자주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어서 유치원때부터 한국에 흥미가 있었다. 드라마나 아이돌이 나오는 테레비 프로를 보면서 귀로 듣고 자연히 단어들을 외우게 되었다고 한다.  박경수 교장(62)은 한국정부 교육부에서 장기간 근무를 하였다.

 

<무용 (Dance)부에서는 일류 지도자가 K-pop의 무용을 가르친다. 한국의 대학에 진학하거나 현장에서 무용을 배우는 졸업생도 있다. 문화를 통하여 양국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인재를 교육하고 싶다> 고 말한다. 창설 22년된 야구부는 고시엔 대회에서 봄, 여름 연속하여 처음 출전하는 결과를 이루었다. 그래서 한류에 의한 한국어 학습열이 고조와 함께  내년 봄에 완공을 목표로 하는 새 교사의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정부공인의 한국어능력시험(TOPIK)의 수험자가 증가하고 있다. 금년 10월에는 일본에서 과거 최고인 약 1만6천명이 응시한다.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10대, 20대의 여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동경 신주쿠의 메지로대학 3년생으로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松浦歩美(20)는 뇌성마비로 보행이 어려워 휠체어를 떠날 수가 없다. 어려서부터 몸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너무나 힘들어서 날마다 울고 있는 소녀의 기분을 아주 달라지게 한 것이 (한국) 전통의상인 치마저고리였다. 특별지원학교 초등부 3학년때 한국의 학교로부터 보내져 온 것이다. 선명한 색의 둥실둥실한 치마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교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장소에 장식되어 있는 의상을 보기위해 선생님의 도움으로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어갔다. 그것이 날마다의 목적이 되었다.

 

테레비에서 대장금(장금이의 선서)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역사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초등부 6학년부터 거의 해마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고, 중 2학년때 학교의 대표로서 교류하고 있는 학교를 방문했다. 통역도 할 수 있어서 선생님에게 부탁받았다. 고교때는 한국어 연설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때 한국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대학에서 한국을 공부한다는 꿈도 이루어졌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남보다 몇배 더 시간이 걸리지만 재활에 힘써서 생활에 필요한 일상의 것들은 할 수 있도록 되었다. 한국은 삶의 원동력이다. 松浦는 한국을 말하는 동안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아사히신문 원문은 사쿠라이 이즈미 기자의 취재

글임-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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