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헴, 훈장이 당근이신가?

2021.11.05 11:04:22

선인들은 공유경제로 일상을 유지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지난 1일, “선인의 당근마켓”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1월호를 펴냈다.

 

공유경제는 이미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함께 공유해서 사용하는 협력 소비 경제다. 당근마켓으로 불리는 중고직거래 플랫폼과 카쉐어링 서비스(같은 생활권의 주민이 시간단위로 차를 빌려 쓰는 것), 아(껴쓰고)나(눠쓰고)바(꿔쓰고)다(시 고쳐쓰고) 운동 등 공급 과잉인 현대사회에 공급자는 개인의 자원을 활용해서 자신에게는 필요 없으나 수요자가 필요한 물품이 이동하여 선순환하는 의미가 있다. 물자가 부족했던 조선시대의 선인들은 공유경제로 일상을 유지했다. 이번 호에서는 다양한 공유경제 일화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임금은 구휼하고 세금 감해주고

백성은 두레ㆍ품앗이로 나누고

 

이재민 연구위원의 [우리 함께 ‘당근’해요. – 조선시대 ‘나눔’과 ‘공유’의 가치]에서는 공유경제의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은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의 성공 요인을 내가 사는 동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나눔'과 '공유'의 값어치로 이야기한다. 이 값어치는 기본적으로 공동체성에 바탕을 두고 유교적 이념을 국가 실천덕목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더욱 성행했다. 나라의 위정자들이 백성들에게 베풀었던 것은《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백성들 사이에서 효율적인 생업 실천을 위해 마을 단위로 이루어진 '두레', '품앗이'를 살펴본다.

 

세종 7년(1425년) 논바닥이 메마를 정도로 극심한 가뭄이 당시 조선 전역을 덮쳤을 때 백성들의 세금을 면제 또는 감면하고, 백성들의 삶이 오롯이 원만해지도록 보전하였다. 정조 7년(1783년)에도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고, 이로 인해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생계에 위협이 되자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이에 정조는 《자휼전칙(字恤典則)》이라 하면서,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의 구호방법’을 적은 법령집을 한글로도 반포하였다.

 

백성들 사이에서 '품앗이'는 정(情)을 바탕으로 하는 '믿음'에 기초하고, '두레'는 엄격한 규정과 거래에 의한 협업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직파법이 아닌 이앙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일명 모내기를 하여 모를 계획적으로 심어놓고 가꿀 수 있는 집약재배(集約栽培)를 실천하여 노동력이 크게 줄고, 단위 면적 당 수확량이 늘어나다 보니 경작면적이 늘어나고, 늘어난 경작면적 때문에 노동력이 더 필요해져서, 한 집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곧 생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력의 공유와 나눔은 필수적이었다. 노동력을 나누고 공유하며, 농사일을 서로 돕는 값어치를 실천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기초가 되었다.

 

 

 

돈을 주고 책을 빌린다고?

구운몽은 못 참지

 

이문영 작가는 [정생의 야행일기]에서 달빛 밝은 깊은 밤, 양줏골 훈장 정생이 김만중의 《구운몽》을 구해보기 위해 세책가(貰冊家)로 향하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잡서를 읽으면 체면이 구겨진다고 생각했던 정생은 우연히 한 학생이 보던 《구운몽》을 접하게 되고, 아주 잠깐 읽었으나 그 이야기가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다. 학생에게 방앗간 근처에 새로 생긴 세책가에서 빌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부인도 모르게 밤길을 달려 도착했으나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맴돌다 마을 어른 오 진사를 만났다.

 

오 진사의 소맷자락에도 묵직한 책 한 권이 담겨 있었다. 부인이 빌려오라고 했다는 오 진사의 변명같은 대답을 들은 뒤 겨우 책방에 도착했으나, 《구운몽》은 이미 다 빌려가고 없었다. 정생이 실망하려던 순간 책방 주인이 《전우치전》을 권했다. 정생은 닷 전을 외상으로 달고 소맷자락에 숨겨 오다 《구운몽》을 반납하러 온 학생을 만났고, 세 권의 책은 무리였던지 소맷자락이 터져 무슨 책을 빌렸는지 탄로 나고 말았다. 정생은 오다 만난 오 진사의 변명과 똑같이 둘러대고 웃음을 참으며 그 답을 들어주는 학생의 모습이 재미있다.

 

빌린 밭 갈려고 또 소를 빌리고

누가 마지막에 빌려 갔지?

 

권숯돌 작가의 [이달의 일기 – 나눔의 공식]에서는 어머니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직접 《동의보감》을 공부하려 책을 빌리러 다녔던 1738년 최흥원(崔興遠)의 《역중일기(曆中日記)》의 이야기, 몸이 아파 씨를 뿌리지 않은 이웃 할머니 밭을 빌리고, 그 빌린 밭을 갈기 위해 또 소를 빌렸으나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소 주인이 소 아프면 큰일이라며 다시 데려가는 1596년 오희문(吳希文)의 《쇄미록( 尾錄)》 속 일화, 빌리는 일이 너무 흔해 나중에는 어디에 빌려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관혼상제 물품 빌리러 다니는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려냈다. 조선시대에는 모든 물자가 부족해서 나누고, 지금은 넘쳐나기에 나누지만, 그 나눔에는 ‘믿음’이라는 분모가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관계 발전의 매개체,

일상에서 주고받는 물건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미디어로 본 역사 이야기 – 내 것은 네 것, 네 것은 내 것]에서 ‘무언가를 빌리고 주고받는 행위’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어떤 장치로 사용되는지 영화 [스캔들]과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통해 소개한다.

 

오늘날에도 무언가를 빌리고 주고받는 행위는 매우 흔하나 물건이 귀하고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전근대 사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상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면 보여주기 어려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드물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스캔들]에서 줄곧 물건을 빌리고 빌려주고, 선물을 주고받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사가 진행되는데, 이는 관계를 발전시키고 방향을 돌리게 하는 매개체로 일상생활에서 주고받을 법한 차(茶), 책 등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과 욕망을 담아 표현했다.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용과 봉황이 새겨진 기름먹인 천막 ‘용봉차일’을 빌렸다가 국왕의 노여움을 사 정치 인생이 끝난 한명회와 허적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물론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겠으나 용봉차일은 그것을 함부로 사용하려 했다는 자체로 숙청당할 만큼 상징하는 바가 컸다.

 

나눔과 공유에도 보이지 않는 ‘네 것과 내 것’의 다양한 층위의 경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에서는 가을을 맞아 풍호(風乎) 신지(申祉, 1424~1517)가 지은 청송군 진보면의 ‘풍호정(風乎亭)’ 정자를 소개한다. 신지는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이 학문을 성취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평생 나가지 않았다. 가을 풍경이 아름다운 풍호정의 ‘풍호’는 ‘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노닌다’라는 뜻이 유래하였다.

 

장래의 희망을 묻는 공자의 물음에 제자들은 부귀공명을 원했는데, 증점이라는 제자만이 ‘저는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沂水)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霧雩)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올 것입니다.[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스토리이슈]에서는 ‘2021 전통 기록문화 창작 콘퍼런스’ <위드 코로나 시대, 전통문화 콘텐츠의 길을 묻다>를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유튜브 채널에서 2021년 11월 4일(목) 14:30~17:00에 연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사회 속에서 전통문화 콘텐츠의 방향성을 논의한다.

 

또한 2021년 11월 13일(토) 11:00~17:00에는 성수아트홀 공연장에서 ‘제7회 전통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을 열어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8팀이 5달 동안 발전시킨 기획서와 창작 시안을 공개한다. 같은 시간 스토리테마파크 유튜브 채널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김민옥 교수는 “지금과는 달리 물자가 부족했던 조선시대 선인들은 공유경제를 통해 일상을 유지했다”라고 말하며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교수의 ‘공유경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득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이득을 보게 하는 자발적 행위로 인해 만들어진 경제 생태계가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형태로 존재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8권을 기반으로 한 6,100건의 창작 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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