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과 함께 하는 건축 시간여행 2,500년

2022.01.31 11:21:05

《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 김봉렬, 플레져미디어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8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한국예술종합대학 직전 총장이었던 김봉렬 교수가 《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김 교수가 서울신문에 ‘김봉렬과 함께 하는 건축 시간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입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김 교수가 시간을 거슬러 석기 시대까지 우리를 데리고 가, 고인돌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까지 시간을 따라가며 각 시대의 주요한 건축물을 소개하고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글이나 강단에서만 건축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답사팀을 이끌고 건축물이 있는 현장도 찾아가, 현장에서 생생한 건축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단순히 건축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 건축의 시대적 배경, 그 건축이 나오기까지의 역사, 다른 건축과의 비교 등등을 구수한 이야기로 풀어나가지요. 게다가 유머도 곁들이니, 열심히 듣고 있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저는 김 교수의 답사를 여러 번 따라다녔습니다. 처음 김 교수의 답사를 따라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고교동기인 김 교수의 답사여행 소문을 듣고 2006년 9월에 나도 따라가기로 하였었지요. 당시 여기저기서 김 교수를 끌어가느라 난리여서, 김 교수는 주말마다 서로 다른 답사팀을 이끌고 전국을 다닐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급한 일정이 생겨 다른 답사팀을 따라가게 된 것이 2006. 10. 14.의 나눔문화 답사입니다.

 

당시 김 교수가 시민단체인 <나눔문화>의 이사장도 맡고 있어, 나눔문화 회원들을 이끌고 마곡사와 신원사 답사를 떠나는데, 저도 여기에 낀 것이지요. 그리고 돌아올 때는 나도 김 교수에 포섭되어 나눔문화 회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나눔문화 회원인데, 그때 급한 일정이 아니었으면 나눔문화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니,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 묘합니다. 그런데 이번 책에 마곡사 이야기도 나오니, 그때 마곡사 답사의 추억이 떠올라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그 뒤에는 제가 한국예술종합대학 문화예술 지도자 과정(CAP)에 들어가면서, 여기서 또 김 교수의 답사를 따라갔지요. 그리고 제가 고교 동기회장이 되었을 때는 김 교수의 멋진 건축 이야기를 동기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 애원 반, 협박 반(^^)으로 김 교수가 이끄는 동기 답사 여행을 꾸렸습니다. 그런데 이 답사 여행이 인기 폭발하여 그 뒤 아내들도 참석하는 정기 답사여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김교수에게 한 번만이라도 동기 답사 여행을 이끌어주면 된다는 약속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네요.^^ 얼마나 인기였냐면, 안동 하회마을 1박2일 답사를 가는데 한 친구가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같이 가기로 하였던 그 친구 아내가 자기만이라도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목발을 짚고요. 친구 아내도 답사를 앞두고 다리를 다쳤는데, 목발을 짚고서도 따라나선 것입니다. 이 정도면 김교수의 답사여행이 얼마나 대단하지 이해되시겠지요?

 

이런! 김 교수의 답사여행 이야기하느라 정작 《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 책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책에는 모두 28개의 건축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다른 것은 다 건축물을 제목으로 달고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데, 하나만 건축가 이야기입니다. 바로 조선 전기의 궁정 건축가 박자청(1357 ~ 1423)입니다.

 

박자청은 지방 하인 신분에서 종1품 공조판서까지 신분 상승한 건축가입니다. 반상의 구분이 엄연한 조선에서 상놈이 공조판서까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자청의 건축 실력이 뛰어났다는 것이겠지요. 수도 한양의 기본설계를 짠 이가 정도전이라면, 이를 건축으로 실현한 이가 박자청이랍니다. 저는 종로 피마골에서 막걸리에 취할 줄만 알았지, 박자청이 피마골을 만들었다는 것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환자들이 살았던 여수 애양원의 경우에는 김 교수가 직접 건축에도 참여하였지요. 애양원은 1926년에 세워졌습니다. 원래 광주에 나병원이 있었는데, 일제가 강제 이전명령을 내려 여수 애양원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이전할 때 800여 명의 나환자와 그 가족들은 무거운 침상과 짐을 들고 기차도 타지 못한 채 사람들의 눈을 피해 140km의 밤길을 걸어서 이동합니다. 그야말로 ‘눈물의 이주’였지요.

 

그리고 자신들이 직접 애양원을 지었습니다.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앞두고 폐가로 남은 14동의 여자 나환자 숙소를 철거하고 펜션을 지으려고 할 때는, 김 교수는 남겨진 건축적 흔적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자원하여 맡았다고 합니다.

 

청계천에서 퇴계로로 이어지는 세운상가 있지 않습니까? 원래 세운상가 자리는 일제 말에 소개 공지(疏開空地)였답니다. 곧 미군 폭격 때 화재가 번지지 않도록 세운상가 자리에 있던 집들을 헐고 공터로 남겨둔 것이었지요. 여기에 한국 전쟁 때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더니, 1960년대 중반까지 최악의 빈민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김현옥 시장이 1966년에 부임하여 두 달 만에 이곳 판자촌을 싹 밀어붙였지요. 그래서 ‘불도저 시장’이란 명성(?)도 얻고요. 그리고 여기에 상가를 세우고, 세계로 기운을 뻗으라고 세운(世運)상가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세운상가도 지은 지 오래되어 세계로 뻗던 기운도 다 하여 철거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철거를 두고 의견 충돌이 많아 철거가 지지부진하면서 세운상가도 슬럼화가 되어갔는데, 2014년 박원순 시장이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현재 2단계 계획을 실현 중이라고 합니다.

 

책에는 우리가 잘 아는 경주 황룡사터, 구례 화엄사, 도산서원, 남한산성 등도 나오는데, 김 교수의 책을 읽으면 우리가 겉만 알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봉화 충재와 청암정, 영천 매산고택, 화천 화음동정사 등에 이르러서는 겸허한 마음으로 김 교수의 설명에 귀를 쫑긋하여야 합니다. 책 겉표지에는 ‘2,500년이라는 시간을 축적한 건축물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라고 쓰여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책을 펴들고 김 교수의 안내를 받아 2,500년의 건축 시간여행을 떠나지 않으시렵니까?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