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노해가 말하는 ‘작은 방’이란 무엇일까?

2022.02.10 11:38:37

《내 작은 방》, 박노해, 느린걸음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86]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의 사진에세이 4집 《내 작은 방》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라 카페 갤러리(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28)에서 사진전도 겸합니다. 그동안 박시인이 평화나눔 활동으로 중동, 남아시아, 남미를 순례하면서 찍은 사진 중에 37점을 엄선하여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진에세이집 제목이 왜 ‘내 작은 방’일까요? 박 시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지요.

 

 

“우리 모두는 어머니 자궁의 방,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위대한 방에서 태어났다. 그리하여 기쁨과 슬픔으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성취하고 저물어가면서 마침내 우리는 대지의 어머니, 땅속 한 평의 방으로 돌아간다.

 

살아있는 동안 한 인간인 나를 감싸주는 것은 내 작은 방이다. 지친 나를 쉬게 하고 치유하고 성찰하고 사유하면서 하루하루 나를 생성하고 빚어내는 내 작은 방. 우리는 내 작은 방에서 하루의 생을 시작해 내 작은 방으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고 앞을 내다본다. 그곳에서 나는 끊임없이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다.

 

광대한 우주의 별들 사이를 전속력으로 돌아나가는 지구의 한 모퉁이에서, 이 격변하는 세계의 숨 가쁨 속에서 깊은 숨을 쉴 나만의 안식처인 내 작은 방. 여기가 나의 시작, 나의 출발이다.”

 

그렇군요. 지친 나를 감싸주는 소중한 내 작은 방. 박 시인은 자신의 발길이 닿은 곳에서 만난 그런 소중한 방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군요. ‘내 작은 방’이라고 하니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고단한 내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그런 방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방만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꿈이 자라는 방’에서는 정성 들여 재봉질하는 어머니를 보여주고, ‘어린 나무들의 방’에서는 사막에서 어린 종려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만든 구덩이를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숲속의 목욕터’에서는 하루의 땀과 먼지를 씻어내는 아가씨들의 목욕터를 보여줍니다.

 

박 시인이 보여주는 사진들의 공통점은 박 시인이 말하듯 영혼이 깊은숨을 쉬는 오롯한 성소, 상처 난 인간의 위엄을 가다듬어 세울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방은 어떻습니까?

 

박 시인은 지금 시대의 우리의 방을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시대는 내 고유성과 존엄성을 보존하기 위한 성소와 성역으로서의 방이 사라져가고 있다. 내밀한 은신처인 방은 투명한 유리창으로 변해버렸고 스마트한 기계들이, 온 세계의 유행들이, 쉼 없는 접속과 자극들이, 대중의 시선들이, 끝없는 비교와 우울이, 과시와 질시가 나의 내면까지를 관통하고 있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지 않은 방. 내 영혼이 안식하지 못하는 방. 마지막 보루로서의 은신처가 사라지면 내 희망의 전망대도 사라진다.”

 

이제 고개가 끄덕여지지요? 왜 박 시인이 《내 작은 방》으로 사진 전시회를 하고, 에세이집을 냈는지 대해서요. 우린 우리 작은 방에 문명의 이기를 들여오면서 영혼이 깊은숨을 쉬는 그런 방은 쫓아낸 것 아닌가요? 박 시인은 하루 일을 마치고도 곧장 방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천천히 주위를 거닐며 오늘 자신이 한 일과 자신이 만난 사람과 자신의 감정과 태도를 되돌아본답니다. 그러다가 멀리 검푸른 산들과 청아한 향기를 내주는 꽃들에 부끄럽고 슬프기도 하여, 밤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답니다.

 

‘신독(愼獨)’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조선의 선비들이 소중히 여기던 말로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감’이란 뜻이지요. 박 시인도 홀로 있을 때의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이기에 ‘신독’을 소중히 여깁니다. ‘신독’할 수 있는, 내 영혼이 쉴 수 있는 작은 방! 우리 모두는 잃어버렸던 그런 작은 방 하나를 다시 찾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박 시인의 사진에세이집에 대해 말하면서, 정작 사진은 보여주지도 않았네요. 그럼 에세이집에 실린 사진 몇 장과 그에 대한 박 시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계엄령과 휴교령이 내려진 카슈미르의 아침.

어른들의 긴장 어린 두런거림에서 빠져나온 남매는

전기도 없는 어둑한 방으로 숨어 들어간다.

한 줄기 햇살이 비추는 창가에 걸터앉은 누나는

글자를 모르는 동생을 위해 책을 읽어준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바깥세상과 아득한 별나라와

고대 신화 속으로 멀고 먼 여행을 떠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은 동굴이 필요하다.

지치고 상처 난 내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어둑한 방.

사나운 세계 속에 깊은숨을 쉴 수 있는 고요한 방.

 

 

안데스 만년설산 자락의 감자 수확 날.

엄마는 뉘어놨던 아이가 추위에 칭얼대자

전통 보자기 리클라로 등에 업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우리 모두의 첫 번째 방은 엄마의 등.

찬바람 치는 세계에서 가장 따뜻하고 믿음직한

그 사랑의 기운이 내 안에 서려 있어,

나는 용감하게 첫 걸음마를 떼고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선 청년이 되어

나만의 길을 찾아 걸어가고 있으니.

사랑, 그 사랑 하나로 충분한 엄마의 등은

가장 작지만 가장 위대한 탄생의 자리이니.

 

 

지상에 집 한 채 갖지 못한 나는

아직도 유랑자로 떠다니는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나만의 작은 방이 하나 있어

눈물로 들어가 빛으로 나오는 심연의 방이 있어

나의 시작 나의 귀결은 ‘내 마음의 방’이니.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주어져도

내 마음의 방에 빛이 없고

거기 진정한 내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너를 만나고

무슨 힘으로 나아가겠는가.

 

이 밤, 사랑의 불로 내 마음의 방을 밝히네.

 

<내 작은 방> 전시회는 올 9월 18일까지입니다. 어떻습니까? 한 번 라 카페로 발걸음 하여 박 시인이 보여주는 ‘내 작은 방’을 보지 않으시렵니까? 마지막으로 박 시인이 <내 작은 방>을 내면서 쓴 시 한 편을 읊조리면서, 제 횡설수설을 마칩니다.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주어져도

내 방에 세상의 좋은 것이 다 채워져도

내 마음의 방에 빛이 없고

거기 진정한 내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너를 만나고

무슨 힘으로 나아가겠는가.

나의 시작 나의 귀결은 ‘내 마음의 방’이니.

이 밤, 사랑의 불로 내 마음의 방을 밝힌다.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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