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묘지사터서 고려 강도시기 온돌 건물터 확인

2022.11.28 11:59:50

상단 평탄지 조사에서 확인... 온돌 구조의 변천사 이해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 기대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소장 김지연)는 고려 강도시기의 절 유적인 강화 묘지사(妙智寺) 터에서 대형 온돌 건물터를 확인하였다.

* 강도시기(江都時期): 몽골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1232년(고종 19년)부터 1270년(원종 11년)까지 시기

* 온돌: 방 아래에 화기가 지나는 통로를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얹어 불을 지펴 돌을 덥히는 전통적 난방 방식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묘지사는 1264년(고려 원종 5년) 임금이 마니산 참성단에서 초제(醮祭)를 지내기 전에 거처했던 절로, 마니산 동쪽의 초피봉 남사면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묘지사 터는 산 사면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2개의 평탄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상단 평탄지에 대한 조사에서 해당 온돌 건물터를 처음 확인하였다.

* 초제(醮祭): 무속신앙이나 도교에서 별을 향하여 지내는 제사

 

 

 

건물터는 동서 너비 16.5m, 남북 길이 6.3m의 5칸×2칸 규모로, 남편 기단 양쪽 측면부가 앞으로 돌출된 구조다. 온돌은 동편 일부를 뺀 방 전체에 시설되었는데, 방 양쪽에 온돌이 각각 분리되어 설치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각 온돌의 아궁이는 건물터 동쪽 칸 및 서쪽 돌출부에 조성되어 있다. 아궁이를 통해 유입된 화기가 각각 3줄 및 2줄의 고래를 통해 방 전체를 ‘ㄷ’ 형태로 회전하면서 방을 덥힌 다음 북편 기단 외곽의 배연구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특히 온돌방에 설치된 고래와 고래둑은 너비 40~60㎝, 고래둑 위에 얹어진 구들장은 길이 70~120㎝로 지금까지 확인된 다른 온돌 시설물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다.

* 배연구: 연기가 배출되는 구멍

* 고래둑: 열기가 통과하는 통로로, 구들장을 고이는 받침

* 구들장: 고래 위에 깔아 방바닥을 만드는 얇고 넓은 돌

 

 

 

 

 

방 전체에 온돌을 시설한 전면온돌은 대체로 고려 후기부터 등장하여 정착된 것으로 여겨지나, 이 시기의 구조가 명확한 대형 온돌 건물터는 확인되는 사례가 드물다. 이번에 조사된 온돌 건물터는 13세기대 전면온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온돌 구조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학술적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성훈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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