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덟 천민, 그들도 백성이었다

2023.02.27 11:32:33

《나도 조선의 백성이라고!》, 이상각 글, 박지윤 그림, 파란자전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팔천(八賤)!

조선에는 흔히 ‘팔천(八賤)’이라 불리는 여덟 가지 낮은 신분이 있었다. 바로 사노비, 승려,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이었다. 이들은 갖은 설움을 받으며 인간보다 못한 대접을 받기도 하고, 억울해도 호소할 곳도 없이 그저 타고난 신분을 탓하며 울분을 삼켜야 했다.

 

조선의 백성들은 태어나면 양반, 중인, 양인, 천민 이렇게 네 가지 신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조선 초기만 해도 신분제도는 상당히 유동적이었고 신분 간 이동도 빈번했으나 점차 제도가 굳어지면서 한 번 양반은 영원한 양반, 한 번 천민은 영원한 천민이 되었다.

 

이 책, 《나도 조선의 백성이라고!》는 천민으로 태어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여덟 부류의 천민을 각각 짧은 동화와 설명으로 보여준다. 흔히 조선시대를 떠올릴 때 열심히 농사짓는 농부나 글을 읊는 선비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이야말로 그런 양민들의 삶을 죽을힘을 다해 떠받친 조선의 백성이었다.

 

 

특히 천민 가운데 가장 수가 많았던 사노비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주인에게 짐승 취급을 받기 일쑤였고, 어떤 때는 말이나 소보다 싼값에 매매되기도 했다. 승려 또한 조선이 유교사회가 되면서 많은 수모를 겪었다. 불교 탄압은 세종 때 최고조에 달해 그때까지 실시되던 승과 제도가 없어지고, 전국에 36개소의 절만 남게 되었다.

 

이를 통해 조정에서는 절에 소속되어 있던 10만여 명의 노비와 수천 명의 승려를 면천시켜 세금을 거둘 수 있었지만, 남은 승려들에게는 본격적인 고난의 시작이었다. 특히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은 절에 가서 음주가무를 하고 승려를 마음대로 부리며 폭행하기도 했고, 성을 쌓는 등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승려를 동원하기도 했다.

 

천민 가운데서도 잘 알려진 백정의 삶 또한 비참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이나 《속대전》에는 백정을 규제하는 법만 있을 뿐 보호하는 법은 전혀 없었다. 백정은 호적도 없었으니, 한마디로 사람 취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돈이 많아도 집에 기와를 올릴 수 없었고, 남자는 상투를 틀지 못하고 여자는 쪽을 질 수 없었다.

 

그 밖에도 백정들은 일반 백성들이 흔히 누릴 수 있는 권리도 무엇 하나 허락되는 것이 없었다. 조선 후기 하층민과 머슴들의 조합인 농청에서 백정들을 특히 많이 괴롭혔는데, 이들이 열었던 노동위안회라는 잔치에서 벌어진 백정각시놀이는 가관이었다.

 

농청꾼들이 북과 꽹과리를 치며 지켜보는 가운데 백정 부녀자를 끌어다가 치마를 벗기고 소처럼 끌고 다니거나 말처럼 기게 한 다음 등에 올라타서 모욕을 주는 식이었다. 신분이 낮은 이들이 더 험하게 백정을 괴롭히는 모습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기생도 조선의 대표적인 천민으로 숱한 일화를 남겼다. 조선 기생의 신분은 나라에 소속된 공노비였다. 그래서 기생 명부인 기적에 오르면 국법에 따라 서울이나 지방의 관청에서 춤과 노래를 배운 다음, 잔치에 동원되고 손님을 접대해야 했다. 기생이 양반의 첩이 될 수 있는 것은 나이가 들어 자신의 이름이 기적에서 지워진 다음에야 가능했다.

 

그 밖에도 상여를 메는 상여꾼, 놀이를 보여주는 광대, 수공업 기술자인 공장, 무당이 천민으로 고통받는 신분이었다. 특히 그 시절 무당에 대한 차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녀는 여염집 부녀자처럼 저고리와 치마를 입을 수 없었고 따로 옷을 입는 방식이 있었으며 머리방식도 정해져 있었다.

 

양반들은 무당을 멸시하면서도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그러나 굿으로 효험을 보지 못하면 보복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태종은 막내아들 성녕대군이 위독하자 굿을 했는데 효험을 보지 못하자 무녀를 관비로 삼았고, 결국 성녕대군 집의 노비들이 무당을 때려죽이기까지 했다.

 

이런 비인간적인 신분제도가 없어진 것은 불과 백여 년 전인 1894년, 갑오개혁이 실시되면서였다. 그때까지 신분제도에 짓눌려 있던 백성들이 느꼈을 환희가 가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물론 신분제도가 폐지되었다고 일거에 사회 인식이 바뀐 것은 아니어서 그 뒤로도 천민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이들은 마침내 한 명의 당당한 인간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태어나 보니 천민, 그리고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천대. 천출(賤出)의 고통은 숱한 사람들에게 죽어도 잊지 못할 아픔과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이런 억압과 폭력의 역사는 근대에 와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이 책은 온갖 차별과 수난에도 자기 몫을 살아내며 조선을 지탱해 온 여덟 천민의 하루를 생생하고도 진솔하게 보여준다. 한 사회를 정확히 보려면 그 사회의 가장 낮은 곳까지 봐야 하는 법이니, 이 책은 조선 사회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고맙고도 중요한 책이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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