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진회숙 선생이 이번에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이란 책을 내셨습니다. 그동안 이미 10권을 훨씬 넘는 클래식 관련 책을 내었어도, 진 선생의 음악의 샘은 계속 퐁퐁 솟아나는군요. 그만큼 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겠지요. 제목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은 책 표지 오른쪽에 세로로 쓰여있고, 표지 위쪽에는 ‘삶에 지친 당신을 위한’이란 수식어가 쓰여있습니다. 그리고 표지 아래쪽에는 ‘일생에 한 번은 들어야 할 명곡 40선 / 당신을 위한 클래식 에세이’라고 쓰여있네요. 그만큼 이번에 진 선생이 엄선한 클래식 명곡 40선은 삶에 지친 우리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명곡들입니다.
제목이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이라고 하였지요? 그래서인지, 표지는 카드 봉투를 빨간 원으로 봉인한 디자인입니다. 하얀 카드 봉투 표지에 빨간 봉인점이 찍혀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진 선생에게 물어보니, 빨간 봉인점은 옛날 유럽 귀족들이 편지 봉인할 때 쓰던 것으로 디자인한 것이랍니다. 빨간색의 밀납(양초) 녹인 물을 떨어뜨리면 시간이 지나면서 굳어져 봉인되는 것이라나요. 이런 디자인의 책이면, 책을 받아 든 독자도 진 선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아 든 기분이 들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책)를 개봉할(펼칠) 것 같습니다. 그러면 펼친 책에서는 진 선생의 따뜻한 위로의 말이 담긴 활자들이 잔잔히 춤을 출 것이구요.
그리고 이번 음악에세이는 그동안의 다른 음악에세이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동안의 음악에세이는 작품사진을 삽입시킬 수 있는 미술에세이와 달리 책에 음악을 넣을 수 없어, 뭔가 부족함이 있지 않았습니까? 물론 열성적인 독자는 스스로 음악에세이에 나오는 음악을 틀어놓고 에세이를 읽는 열정을 보이겠지만요. 그런데 이번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에서는 음악을 들으면서 에세이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요? 진선생이 매 에세이마다 시작하는 부분에 큐알코드(QR code)를 넣어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큐알코드에 폰사진기를 들이대면 해당 유투브로 연결되어 에세이에 해당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동안 다른 음악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이런 점이 아쉬웠는데, 이번에 진선생이 이를 멋지게 해결하였네요.
그리고 책에 나오는 정보무늬(큐알코드) 대부분은 진 선생이 진행하는 유투브인 ‘지니 TV’(https://www.youtube.com/@jinnietv3363)로 연결되어 음악이 흐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위 누리집 주소를 눌러 진 선생의 지니 TV를 보시지요. 그러면 진 선생의 자상한 해설을 들으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책의 정보무늬로 연결할 때만 음악이 바로 나옵니다. 진 선생의 해설은 에세이가 대신하고 있으니까요.
진 선생은 책을 여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클래식 음악에도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 속에 사랑이 있고, 슬픔이 있고, 웃음이 있고, 위로가 있다. 그러니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함께 듣는 것과 같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음악들이 부디 고통받는 이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음악,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음악,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 주는 음악, 세속의 욕망을 잊게 해 주는 음악, 그럼으로써 삶과 영혼에 건강한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음악이 되기를 바란다.”
그럼 삶에 지친 당신에게 진 선생이 들려주는 40편의 에세이 가운데 몇 편만 볼까요? 먼저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에 대해서 쓴 글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라>입니다.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사랑할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시간이 오리라.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 옆에서 슬퍼할 시간이 오리라.
리스트의 가곡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라>의 가사입니다. 음악팬이라면 리스트의 사랑 이야기를 모르지 않겠지만, 모르는 분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 내가 너무 사람들의 수준을 내 수준에 맞춰 생각했나? - 얘기해 보겠습니다. 리스트는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당대의 인기 스타였습니다. 얼마나 잘 생겼는지 빈의 한 판화가로부터 어떤 화가라도 그리스 신의 모델로 삼을 만한 얼굴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나요?
그런 리스트가 자기보다 6살 연상의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사랑의 열매(아기)가 생기자, 둘은 사랑의 도피를 합니다. 이들이 스위스와 이탈리아 곳곳으로 사랑의 도피여행을 할 때 리스트가 작곡한 곡이 <순례의 해>라는 피아노곡입니다. 하하! 리스트는 사랑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하고 있다고 생각했군요.
그런데 쇼팽과 마리 다구 백작부인은 그 뒤에도 두 명의 아이를 더 낳았는데 결국 9년 만에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리스트는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귀족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과 다시 사랑에 빠집니다. 리스트가 공작부인과 사랑을 하면서 독일 시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에 붙인 가곡이 위에 인용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이고, 이를 피아노곡으로 바꾼 것이 리스트의 유명한 작품 <사랑의 꿈>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에 그 딸인가? 리스트와 다구 백작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코지마는 커서 지휘자 한스 폰 뵐로우의 아내가 되었는데, 아! 글쎄! 코지마는 자기보다 24살 연상인 바그너와 사랑에 빠집니다. 이렇게 말하면 ‘바그너가 딸뻘이나 되는 코지마를 꼬셨겠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그 반대입니다. 코지마가 저돌적으로 나오자, 처음에 바그너는 당황했는데, 결국 코지마의 애정공세에 넘어가 둘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낳습니다. 코지마는 그런 다음 남편과 이혼하고 바그너와 결혼을 했다네요. 끌끌~ 피는 못 속이는 건가?
그런데 인기남 리스트는 말년에 성직자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실제 사제 서품까지 받습니다. 뭐야? 젊어서 가정이 있는 여자들과 불륜행각에 빠진 것이 후회되어 반성하는 삶을 살겠다고 것인가? 아니면 지옥 갈까봐 겁나서? 예이! 위대한 음악가의 결심을 그렇게 싸구려로 생각하면 되겠나. 무슨 거룩한 뜻이 있어서 그랬겠지.
진 선생은 사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리스트가 말년에 이르러서야 이를 깨닫고 성직자의 길을 걷겠다고 한 것이 아니겠냐고 합니다. 예! 저도 그렇게 보겠습니다. 진 선생은 그러면서 글을 이렇게 매듭짓습니다. “모든 화려한 사랑은 한순간의 꿈에 불과하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의 절정에 있을 때, 그 찰나적 행복을 마음껏 즐기시라. 그 사랑 곧 깨어질 꿈이니.”
아무래도 책에는 작곡자에 대해 쓴 글이 많은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번’에 관한 <중년의 모차르트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글에서는 모차르트에 관해서 쓰는 한편으로 이 곡을 연주한 프리드리히 굴다(1930~2000)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진 선생은 굴다가 1986년 여름 뮌헨의 가슈타이크 필하모니 홀에서 뮌헨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이 곡을 들으면서 중년의 모차르트가 환생해 자기 작품을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답니다.
굴다는 일절 권위와 형식을 거부하는 피아니스트로 유명하였다는데, 그래서 무대에 오를 때 연미복이 아닌 캐주얼을 입고 나오기도 했고, 재즈에 심취해 정통 클래식 연주회에 재즈나 자신의 자작곡을 집어넣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굴다는 장난기도 심하였습니다. 1999년 3월 28일 한 언론사에 ‘프리드리히 굴다 뇌졸중으로 사망, 시신은 행방이 묘연함’이라는 팩스가 들어왔답니다. 당연히 난리가 났는데, 며칠 뒤 굴다는 문상객 앞에 ‘나 안 죽었지롱’하고 나타났답니다. 사람들이 황당해하니, 자신이 부활하였다나요? 하하! 음악가가 이런 정도로 장난을 치다니, 제 여태껏 편견이 와장창 깨지네요. 굴다는 결국 이 가짜 팩스를 보낸 지, 10달 뒤인 2000년 1월 27일 이번에는 정말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날은 모차르트가 태어난 날과 같다는데, 이것도 무슨 기묘한 인연인가?
그리고 진 선생의 글에는 자기 개인의 인생사에 대해 언급한 것도 있습니다. 베를리오즈 (파우스트의 겁벌) 가운데 ‘마르가리트의 로망스’에 대한 글 <사랑의 불꽃은 내 젊은 날을 태우고>에서, 진 선생은 자신의 젊은 날의 사랑에 관해 얘기하며 글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랑을 하면 세상 모든 유행가가 다 자기 노래처럼 느껴진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철없던 시절에 어떤 남자를 만나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후, 나는 두고두고 괴로워했다. 그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진 선생은 당시 집에서 나와 징징 울면서 정처 없이 거리를 걷거나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오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는데, 진 선생도 젊은 날 심한 사랑의 열병을 앓았군요. 클래식 음악에는 사랑의 고통을 노래한 것이 많은데, 진 선생은 그 가운데 가장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마르가리트의 로망스’를 꼽는다고 합니다.
‘마르가리트의 로망스’는 파우스트에게 버림받는 마르가리트가 절망 속에서 파우스트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진 선생은 노래의 전주와 간주, 후주로 나오는 잉글리시 호른 소리가 가슴에 사무친다고 하네요. 그리고 전주가 끝나고 나오는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통곡이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이 노래를 꼭 듣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진 선생은 이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습니다.
“나이가 들어 편안해졌다고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다. 아니, 가끔 그 시절이 미치도록 그립다. 그러니 사랑에 상처받고 가슴 아파하는 젊은 청춘이여, 사랑의 열망이 선물한 그 고통에 감사하라. 머지않아 그 열망이 사라질 날이 오리니. 그때가 되면 상처로 얼룩진 그대의 젊은 날이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떻습니까? 진 선생의 말에 공감하십니까? 책에는 감칠 맛 나는 진 선생의 명 글귀가 계속 나옵니다. 계속 소개하고 싶지만 여기서 멈춰야겠지요?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책을 사서 보십시오. 책을 보시면 결코 책값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진 선생님! 책 잘 보았습니다. 진 선생님도 집에 불이 나는 등 고통을 많이 당하셨는데, 글을 쓰면서, 또 삶에 지친 독자들에게 이런 위로의 글을 건네줌으로 인하여 진 선생님도 치유를 받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진 선생님!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에세이집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위로와 행복을 주는 음악에세이 계속 우리에게 선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