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새싹 위에 또롱또롱 봄비가 찾아왔어요. 봄나들이 가자고 또로롱또로롱 봄비가 놀러 왔어요. 어서어서 자라라고 쭈욱쭈욱 봄비가 내리고 있어요. 서현이 봄비는 조롱조롱 할머니 봄비는 대롱대롱”
– 42쪽 ‘봄비 1’ 가운데 -
“하얀 꽃, 노란 꽃 봄 속에 파묻혀서 색깔 꽃놀이하다 배고픈 서현에게 ‘서현아, 뭐가 먹고 싶니? 묻자마자 ‘까만 국수’, 까만 국수 무얼까 곰곰이 생각하니 국수에도 색깔들이 하얀색, 노란색... 우리는 짜장면 집으로 룰루랄라”
- 54쪽, ‘까만 국수’ 가운데 -

이는 정현경 작가의 동시집 《세 살배기의 말 몸살-세 살에게 배우다》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분홍빛 표지에 새싹을 그린 꽃잎을 아로새긴 동시집을 손수 들고 연구소를 찾은 정현경 작가를 지난 4월 15일 만났다. 진주의병장 정한용의 증손녀로 태어난 정현경 작가는 의병장 할아버지의 삶을 다룬 《바람은 썩지 않는다》(전 2권, 2019, 2023)를 썼으며 시집 《우화의 날갯짓》(2029)을 쓴 탄탄한 실력을 지닌 수필가자 시인이다.
그가 돌아간 뒤 앙증맞은 동시집을 열어 보았다.
“손주 돌봐 달라는 딸의 요청에 난 별 고민 없이 승낙했다. 세 남매를 키웠고 어린이집 교사로 아이들을 돌본 경력이 20년이었다. 나의 전문 인력이 내 손녀의 성장에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젊어서는 내 자식들 키워 내느라 진액을 다 빼고, 이제 여유를 즐 기며 산천 유람하며 살아야 할 나이에 이 무슨 고된 노역인가 할 수도 있었다. 또 내 삶을 송두리째 다시 손주들 돌보미로 나의 황금 같은 시절을 보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린이집 교사 경력을 지원군 삼아 그러겠노라 했다. 내 손주를 내가 돌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자원했던 것이다.”
나는 정현경 작가의 이 말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실은 나 역시 올해 두 돌이 되는 쌍둥이 할머니지만 맞벌이 직장인인 딸 부부의 총총거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손주들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인지라 더욱 그러했다. “내 손녀의 성장에 보탬이 되겠다”라는 마음으로 손녀 두 명을 유치원에 보낼 만큼 키워놓은 할머니 정현경 작가는 그 틈틈이 글밭을 가꾸어 왔던 것이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한 할머니의 손녀 사랑의 마음이 뚝뚝 묻어나는 동시집을 읽으며 나는 신산한 겨울 속에서 살포시 푸른싹을 틔우는 봄의 향기를 느꼈다.
봄바다에 하나둘 햇살 띄우고
봄하늘에 여기저기 구름 피어 오른다
발가락이 간지러운 땅속 씨앗 하나
서현이를 깨우고 눈 비비며 기지개를 켠다
– 34쪽 ‘새싹2’ -
버들강아지 눈망울 틔우는 봄바람 앞에
들바람 지나가고 산바람 깨어난 시간
자매가 소꿉놀이 한창이다.
- 74쪽 ‘그건 안돼’ -
작가는 봄을 사랑한다. 손녀들만큼이나 사랑한다. 그 아름다운 봄날에 딸 부부가 직장에서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투하하면서도 짬짬이 아이들의 성장을 기록한 작가정신이 만들어 낸 동시집 《세 살배기의 말 몸살-세 살에게 배우다》는 이 땅 모든 할머니의 마음이라고 생각된다. 정현경 작가의 동시집을 읽고 용기를 내어 자신들이 돌보고 있는 사랑스러운 손주, 손녀들의 이야기를 일기장에라도 기록한다면 먼 훗날 손자녀와 그들의 부모에게도 훌륭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한다. 다음은 정현경 작가와 나눈 대담이다.
짜장면을 까만국수, 눈 흘김을 눈으로 때렸다고 하는 아이들 《세 살배기의 말 몸살-세 살에게 배우다》 정현경 작가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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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옹알이 단계를 지나 말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대상을 포착하는 언어가 심상치 않았어요. 짜장면을 까만국수라 하고 눈 흘김을 눈으로 때렸다 하니 그 표현력에 할머니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문장들을 기록해 놓았다가 5살을 넘기기 전에 동시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 이 책에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 핵심은?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어떤 아이든 겪고 지나가는 일이고 기록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수 있어요. 이런 아이의 소중한 말 배움 과정을 흔적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또 이런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 첫 동시집이라고 들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첫째 외손녀의 말배움 과정을 모아 동시집으로 출간했더니 사위가 둘째 외손녀는 어떻게 할 거냐고 농담처럼 말했지요. 지금 29개월인 둘째 외손녀는 말보다 몸짓언어로 의사표현을 해서 난감하긴 해요. 하지만 기록을 해 보니 또 묘한 매력이 있네요. 둘째 아이도 역사를 써야 할 것 같아요.”
- 손자녀를 대상으로 글을 쓰고 싶지만, 망설이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시작이 반이라고 지금, 이 순간부터 아니면 지나온 시간에 아이가 했던 잊히지 않는 말 몸살의 재미있었던 말들을 기록해 보세요. 생각만 하면 어렵지만 기록하면 생각보다 쉽습니다. 메모하는 순간 입안 가득 향기 나는 미소가 퍼질 거예요. 어떤 분은 유치할수록 재밌는 게 동시라 하시네요. 제가 쓴 세 살배기의 말 몸살은 대부분이 동시조입니다. 동시는 한 행 한 행을 천천히 읽어야 맛이 우러납니다. 졸시지만 누군가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자녀거나 손주거나 예쁜 세 살배기의 말 배우는 과정을 흔적으로 남겨 준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밝고 따뜻할 거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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