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 등록 2025.05.04 10: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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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1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손님이 많으니 K 사장님 금방 부자 되겠네요.”

“그러면 좋겠어요. 오늘은 유달리 손님이 많네요. 아마 K 교수님이 오셔서 그런가 봐요.”

“그렇다면 내가 매일이라도 오겠습니다."

"그러시면 더 좋고요.“

“부자가 빨리 되어서요?”

“그렇기도 하고, K 교수님을 매일 볼 수 있으면 그것도 좋지요.”

“정말이에요?”

“정말이라고 믿으세요? 호호호.”

 

미스 K는 스스럼없이 농담을 해가며 대화를 이끌어갔다. K 교수는 맥주를 하나 더 주문하여 미스 K와 함께 세 사람이 쨍하고 잔을 부딪쳤다. K 교수는 직접 물어볼 수는 없고 대화 중에 미스 K의 이혼 여부에 관한 단서를 찾으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여 보았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K 교수는 미스 K의 친구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그런데, 미세스 정이라고 하셨죠? 아이들은 다 컸나요?”

“아들 하나인데 거창고등학교 1학년에 다닙니다.”

“거창이라면 경남 거창 말입니까?”

“예, 거기에 기독교 대안학교가 하나 있어요. 좋은 학교에요.”

“아, 신문에서 소개된 기사를 한번 보았어요. 그런데 거기는 학생들이 전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하죠?”

“예, 맞아요. 우리 아이도 기숙사에서 처음에는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 괜찮아졌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한라산(1950m)이다.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에 이어 덕유산(1614m)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이다. 거창고등학교는 덕유산의 남동쪽인 거창읍에 있는 시골 고등학교다. 거창고는 1953년에 전영창 선생(1917~1976)이 설립한 기독교 학교다. 이 학교의 교훈은 ‘빛과 소금’이며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주 시민 양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전영창 선생은 1956년에 3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1976년까지 21년 동안 재임하면서 거창고등학교를 독특한 명문학교로 키웠다. 전영창 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한 독립 투사였다. 전영창 교장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69년에 거창고 학생들이 삼선개헌 반대 시위를 했을 당시, 주동 학생을 처벌하라는 당국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는 이 일로 교장 승인을 취소당하였으나 대법원에서 승소하여 복직하였다. 그 뒤 공개 강연에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라며 유신 독재를 비판하기도 했다.

 

전영창 선생이 세상을 뜬 뒤 아들인 전성은씨가 1977년부터 1990년까지 교장을 역임하였다. 전성은 교장이 교육자로서 주력한 것은 인간이 국가 권력이나 힘 있는 자들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가 도덕적인 목사를 길러내지 못하는 것처럼, 교육으로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꿈에서 깨야 한다. 높은 점수를 받아 검사, 판사, 의사 등 ‘사’자 돌림이 된 자들에게 스스로 변화해서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그들이 높은 대우를 받는 만큼 사회적으로 욕망과 권한을 제한하고 책임은 더 지도록 법ㆍ제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거창고등학교의 누리집에 나와 있는 ‘직업 선택의 십계명’이 매우 유명하며 흥미롭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이러한 이념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이니 매우 특이한 대안학교라고 말할 수 있다. 자녀가 유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명 대학에 진학하여 돈 많이 버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부모라면 자녀를 거창고등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교육열로 말하면 우리나라 최고라는 강남 8학군에 사는 학부모라면 자녀를 거창고등학교에 보낼 수가 없을 것이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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