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회도서관에 소장된 조선인 첫 서양방문기

  • 등록 2025.05.10 11: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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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익, 희귀한 여행에 유교서적만 읽어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29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난 번에 이야기했듯이 미 해군 소위 조지 포크가 1883년 12월, 3명의 조선인과 함께 북대서양의 아조레스(Azores) 섬을 방문했다. 안타깝게도 조선인들는 이 희귀한 여행에 대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특명전권 대신 민영익(보빙사 대표)은 처음으로 서양 여행을 하면서도 유교 서적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조지 포크는 탄식을 삼켰다.

 

반면에 서광범과 변수는 열정적으로 서양에 대한 지식.정보를 수집하고 메모하였다고 조지 포크는 전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전해오지 않는다. 서광범과 변수가 갑신정변의 실패로 역적으로 몰리면서 자료가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조선인들의 첫 서양 방문에 대해 오직 조지 포크를 통해서 그 조각이나마 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조지 포크의 부모님 전 상서에서 아조레스 방문에 대한 첫 부분을 지난 번에 실었다. 그 뒤의 이야기를 여기 잇는다.

 

“(부모님께) 저야말로 좌중의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노부인들이 꼬치꼬치 캐물어 시베리아 탐험이며 일본 여행이며 중국 사원 탐방이며 등등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또 조선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제가 독차지하다시피 되었지요.

 

점심을 먹고나서 우리는 영사관에 딸린 정원을 산책했습니다. 거대하고도 오래된 이 정원은 야생의 정글입니다. 온 세상의 열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더군요. 일찍이 저는 이토록 흥미롭고 아름다운 정원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코르크 나무 숲이었습니다. 나무 둥치가 단단한 코르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께가 3인치 정도입니다. 조선인 변수가 말하길, 자신이 이런 나무를 가질 수 있다면 양조회사를 차리 거라 하더군요,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꽃과 과일을 가득 싣고 트렌호에 승선했습니다. 곧 지브롤타를 향해 출발했는데 밤 8시였습니다. 19일 맞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답니다. 밤하늘의 별들이 밝게 빛나는가 싶다가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우리 배는 역풍을 안고 나흘간 증기기관을 가동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 피티언 함장은 석탄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어제(23일) 오전부터 우리는 돛으로 항해하고 있답니다. 한 시간에 고작 1노트(1,852m) 내지 3,4 노트를 갈 뿐입니다.

 

오늘 정오 우리는 지브롤타까지 360 마일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100마일을 더 간 다음 우리는 증기엔진을 가동하여 입항할 예정입니다.

 

이번 항해 체험에서 저는 뼈아픈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위대한 미국 정부는 좋은 함선을 만들거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말로만 하지 말고 그렇게 했어야 합니다. 트렌턴 호는 아마도 우리 해군에서 가장 우수한 군함일 겁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함선들과 비교해 본다면, 이 배는 증기선으로서도 범선으로서도 실패작임이 분명합니다. 이 배는 스크루를 끌고 있고 중장비를 가득 싣고 있기 때문에 돛만으로는 항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울러 이 배는 최대 일주일 분의 석탄을 실을 수 있을 따름이어서 증기만으로도 잘 항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상선도 증기만으로 대서양을 횡단하지 못하는 건 없습니다. 우리 함선은 상선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군함에도 뒤집니다. 더구나 우리 배의 대포는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질풍 노도를 만난다면 대포들이 바다 위로 둥둥 떠다니게 될 거라고 저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트렌턴 호는 마르세이유에서 수리ㆍ정비를 받을 겁니다. 석탄을 채워 넣고 대포의 안전을 점검하고 장비들을 정비할 겁니다. 그곳에서 배가 3주 혹은 그 이상 머물 것 같습니다. 조선인들은 아마도 귀국 일정이 그토록 지체되는 걸 참지 못할 겁니다. 만일 그들이 마르세이유에서 증기 우편선으로 갈아타고 가게 된다면 저도 그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조지 포크 일행이 지중해의 관문인 지브롤타에 입항한 것은 12월 29일이었다. 뉴욕항을 떠난지 28일 만이었다. 지브롤타에 도착하자마자 조지 포크는 서둘러 부모님에게 쪽지를 보낸다.

 

“1883년 12월 29일 지브롤타에서

트렌턴호는 어제 저녁 6시에 지브롤타에 도착했습니다. 져희는 모두 무탈합니다. 항구에 도착하니 모두들 뛸 듯이 좋아합니다. 여기에서 나흘 동안 머문 뒤 마르세이유로 향할 겁니다. 여기 도착을 알리기 위해 이 쪽지를 보냅니다. ……마르세이유에서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조지 포크의 1883년 11월 27일자 부모님전 상서

                                                (출처: 미의회도서관에서 김선흥 촬영)

 

조지 포크의 부모님 전 상서는 현재 미의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필자는 직접 미의회도서관을 방문하여 조지 포크의 손글씨를 열람하고 그 일부를 카메라로 촬영한 바 있다.

 

 

김선흥 작가 greensprou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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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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