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성 군창지 동편 대규모 성토터와 건물터 발굴

  • 등록 2025.05.27 1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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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식 대지 축대를 기와로 조성’ 첫 확인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부여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기 후기 왕궁터로 알려진 관북리유적 북편에 있으며, 1981년부터 현재까지 17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백제의 성벽과 구조를 파악하였으며, 성 내부의 탐색갱 조사를 통해 곳곳에서 건물터와 우물터 등의 시설들이 있음을 파악한 바 있다. 올해 17차 조사에서는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고 넓으며 평탄한 터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 군창터 동편에 대한 전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 군창터: 군대에서 사용할 식량을 비축했던 창고 터

 

 

 

조사 결과, 이 넓은 평탄터는 경사지고 깊이 팬 계곡부를 인공적으로 평탄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3~4m 깊이에 이르는 계곡부에는 흙을 쌓을 때 생기는 밀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둑을 먼저 만들고 위에서 아래로 흙을 한 켜 한 켜 부어 쌓았는데, 이는 백제 한성기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축조 때부터 전래한 전통적인 터 조성 방식이다.

 

3개의 계단식 단으로 구성된 이 평탄터 위에 굴립주 건물지와 와적기단 건물지, 저장시설 등을 조성하였는데, 특히 첫 번째 대지와 두 번째 대지를 나누는 동서방향 축대는 기와로 쌓아 만든 것(와적축대)이 특징이다. 축대를 돌이 아닌 기와로 쌓은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사례다. 와적축대는 군창터 방향 서편에서 더 길게 발견될 것으로 보이나 현재로서는 잔존길이 26m이며, 기와 20여 단을 0.6m 정도 높이로 쌓았고 출입시설도 확인되었다.

* 굴립주 건물(掘立柱建物): 땅속에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넣어 만든 건물로, 지표면 위에 생활면을 설치한 건물 모두를 아우르는 이름

* 와적기단(瓦積基壇) : 기와를 쌓아 가장자리 마감을 한 기단으로, 기단이란 터를 반듯하게 다듬고 단을 만들어 쌓은 건축물의 기초부를 의미함.

 

 

 

첫 번째 단에서는 백제시대 굴립주 건물터와 와적기단 건물터, 저장시설, 그리고 남북국시대(통일신라)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다. 두 번째 단에서는 와적기단 건물터 2동이 확인되었는데, 건물터 1개 동의 크기는 동서길이 약 14.6m, 남북너비 약 11.5m에 이른다. 원형초석을 건물의 바깥기둥(외진주)에 사용하였고, 내부 건물에는 네모형 주춧돌을 사용하였으며, 주춧돌과 주춧돌 사이는 기와를 이용하여 건물의 고막이를 시설하였다.

* 고막이 시설: 하인방(기둥 아래를 가로로 연결하는 부재) 아래에 조성되는 초석 사이의 마감시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부소산성 내부에서 백제시대 대규모의 성토터와 와적기단 건물터가 조성되어 운영되었음을 파악함으로써, 해당 지역 일원이 단순한 방어 공간이 아닌 백제 왕궁의 높은 위계 공간이었음을 확인한 의미가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소장 황인호)는 5월 29일 낮2시 백제 사비기 왕성인 「부여 부소산성」 발굴현장에서 2023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한 17차 발굴조사 성과를 소개하는 공개설명회를 연다. 현장 공개설명회는 백제 사비 왕궁유적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방문할 수 있으며, 비가 올 경우에는 행사가 변경될 수 있으므로 전화(☎041-830-5645)로 문의하면 된다.

* 발굴현장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78-2임(군창지~영일루 일원)

 

 

한성훈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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