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하 명인, 70년 예인삶 담아내다

  • 등록 2025.08.10 13: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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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전용극장 잔치마당, <유랑 예인의 하루, 춘몽(春夢)>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박첨지] : 어흠 어흠, 아다 아닌 밤중 가운데 사람이 많이 모였구나.

[산받이] : 아닌 밤중 가운데 사람이야 많건 적건 웬 영감이 남의 놀음처에 난가히 떠드시오.

[박첨지] : 날더러 웬 영감이 난가히 떠드냐구.

[산받이] : 그려.

[박첨지] : 허 허 허 내가 웬 영감이 아니라. 내가 살기는 저 웃녁에 산다.

[산받이] : 저 웃녁에 산다는 걸 보니 한양 근처에 사는가 보네.

[박첨지] : 아따 그 사람 알기는 오뉴월 똥파리처럼 무던히 아는 척하는구려.

 

 

무대에서는 지운하 ‘인천남사당놀이보존회’ 이사장의 <박첨지 유람거리>가 펼쳐진다. 박첨지 인형을 들고나와 박첨지와 걸쭉한 그리고 배꼽 빠지는 재담을 들려주는 관객의 눈길을 꼼짝 못 하게 사로잡는다. 인형의 ‘목덜미’를 잡고 놀린다고 하여 ‘덜미’라고도 불리고, 박첨지놀음이나 꼭두각시놀음, 등의 말로도 불리고 있다.

 

어제저녁 5시 인천 부평구의 국악전용극장 ‘잔치마당’에서는 <유랑 예인의 하루, 춘몽(春夢)> 공연이 열렸다. 지운하 명인의 풍물 인생 70돌을 맞아 명인과 제자들의 한바탕 놀음판인 것이다. 흔히 사람이 70을 살면 노인이라고 하지만, 명인은 평생을 남사당놀이에 빠져 산 결과를 오늘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다.

 

이어서 국가무형유산 서도소리 이수자면서 이은관 명인에게 배뱅이굿을 직접 배웠던 유상호 명인이 역시 배뱅이굿 한마당을 펼친다. 이은관 명인과는 다른 맛의 배뱅이굿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상호 명인은 공연 내내 사회자로서 위력을 발휘한다. 국악에 관한 상식이 풍부하고 직접 배뱅이굿을 부르는 소리꾼으로서 출연진과 관객을 하나 되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명인의 제자 이순덕ㆍ정계월ㆍ김유리ㆍ오채빈 등이 징 손복주, 장구 최병진, 북 권국균의 반주에 맞춰 화려한 ‘쇠놀음’을 선보인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다. 벙거지 위의 부포를 휘날리며, 무대 위를 날고 또 나른다.

 

다음 순서는 박규희 가객의 국악가요 시간이다. 쇠놀음의 자유분방했던 무대는 갑자기 적막이 흐른다. 지난 2021년 JTBC에서 방영되었던 ‘풍류대장’ 프로그램에도 한 출연자가 가곡풍의 노래를 불러 크게 손뼉을 받은 바 있다. 이날도 마찬가지다. 고운 청으로 부르는 노래에 관객들은 일시에 얼어붙고 감동을 받는다.

 

 

 

계속해서 무대는 (서) 한국전통춤협회 박은하 이사장이 영남교방무를 추는 시간이다. 교방이란 창기(倡妓)가 속악을 노래하던 곳이다. 물론 교방에서 아름다운 춤을 추던 기생은 노래 뿐만이 아니라 춤과 악기 연주에도 빼어난 솜씨를 보였다고 전한다. 박은하 이사장은 그때의 명성을 보여주듯 우아하고 섬세하게 춤을 춘다.

 

이후 지운하 명인의 제자들이 연속해서 판굿과 고깔소고춤, 채상소고놀이를 이어간다. 관람객들은 숨을 제대로 쉴 틈이 없다. 마치 무대에서 튀어 나가려는 듯 판굿을 벌이는 이들은 상모 끈를 돌리면서 무대를 돌고 또 돈다. 회오리바람처럼 관객들 가운데는 굿판에 휩쓸려 들어갈 것 같다는 어이없는 두려움에 휩싸이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것은 지운하 명인의 ‘쇠놀음’이었다. 누가 명인에게 노인이라고 할 것인가? 도저히 명인의 나이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열적이면서 또한 풍물 70해가 녹아든 소리는 역시 그에게 명인 칭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님을 확인해 주고 있다. 쇠 장단을 쳐나가는 동작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여유와 품격은 그 누가 따라올 수가 없을 만큼 눈부시다.

 

이번 공연이 열린 날은 말복으로 최근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사람들이 몸살 앓던 때였다는 것을 잊게 해준 공연이었다고 관객들은 입을 모았다. 산곡동에서 왔다는 한소희(54) 씨는 “물론 지운하 명인의 명성은 익히 들은 바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쇠놀음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명인의 동작 하나하나에 쇠놀음의 품격이 무엇이고, 빠르게 돌아가는 동작 가운데 여유가 느껴지는 것은 명인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한판이었다.”라고 소감을 얘기해 주었다.

 

공연 이름 <유랑 예인의 하루, 춘몽(春夢)>처럼 이날 공연을 수놓은 명인은 유랑 예인으로서, 공연을 본 관객은 관객으로서 흐드러진 봄꿈을 꾸고 난 듯하지 않을까?

 

 

남사당은 풍물굿에 견줘 연희가 훨씬 강화된 것

지운하 명인과의 대담

 

 

- ‘남사당’이란 단체에 관해 설명해달라. 흔히 보는 풍물굿과 다른 점은?

남사당은 풍물은 물론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탈놀음, 박첨지놀음(홍동지놀음) 등 여섯 가지 놀이를 모두 연희하는 것이다. 풍물굿에 여러 가지 연희를 함께 하는 종목으로 연희자들은 이를 연마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대신 관객들은 이런 다양한 연희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 어제부터 풍물을 접하게 되었나?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서는 아버지와 마을 어른들이 풍물을 자주 치셨기 때문에 그 장구가락이나 쇠가락을 노상 듣고 자랐다. 인천 숭의국민학교에 입학한 직후였다. 마침 학예회를 준비할 때였는데, 우리가 준비하고 있던 연극 속에 풍물의 상모 돌리는 역할이 있었는데, 연출격의 여자 친구가 저에게 '네가 맡으면 멋지게 해 낼 것 같으니 해보지 않겠느냐?’라고 권유했다...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무조건 하겠다고 대답하고, 열심히 상모 돌리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풍물과 남사당놀이와 연을 맺은 시작이다.”

 

- 어렸을 때 풍물에 관한 더 재미난 얘기도 있나?

”교실에서 선생님이 구구단을 외우라고 하는데, 교실 안 구구단 외우는 소리는 귀에 안 들리고 창밖 넘어 풍물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그 소릴 쫓아가 보니 아버지가 상쇠(우두머리)로 있는 풍물패가 있었다. 장독가에 누군가 벗어 놓은 돌모(상모)를 머리에 쓰고 돌리니까 어른들이 ‘저놈 배우면 잘하겠다’라고 칭찬했다.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너 진짜 잘한다’라고도 했다. 그 길로 학교를 그만두고 풍물패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충남 천안의 박산옥 명인을 초대해서 한 달에 쌀 한 가마를 주고 저와 동네 아이들에게 풍물을 가르치게 했다.

 

그 뒤 12살 무렵인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경기도 대표 팀(당시 인천은 경기도 소속)으로 출전해서 팀이 대통령상을 받는데, 일조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까마득한 옛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풍물과 더불어 삶을 살았다는 얘기로 오늘의 지운하 명인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 이번 공연 말고 계획 중인 공연은?

“큰 공연으로 <지운하 명인의 예인인생 70주년 전통예술 ‘동행’>이 11월 28일 저녁 7시 30분 (사)인천남사당놀이보존회 주최ㆍ주관으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벌어진다. 이날 주요 출연진은 나와 함께, 장사익ㆍ김덕수ㆍ오은명ㆍ남기문ㆍ조성돈 등 유명인들이 무대에 오른다. 많은 관심을 바란다.”

 

대담을 마치면서 지운하 명인 대한 생각은 ‘명인이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요즘 조금만 유명해지면, ‘명인’이란 말을 쉽게 붙이곤 하는데 지운하 명인은 어렸을 때부터 풍물 나아가 남사당만 생각하고 평생을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음에 나는 대담 내내 감동 속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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