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영혼끼리의 뭉침, 홍-삿세 커플

  • 등록 2026.03.29 11: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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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5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뒤 K 교수는 체육대학의 ㄱ 여교수와 ㄴ 교수를 초대하여 미녀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ㄱ 교수는 무용학과 교수여서 무용을 전공한 미스 K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날 미스 K는 또 서울 갔다고 자리에 없었다.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미스 K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 혹시 아느냐고 ㄱ 교수에 물어보니, 학교 다닐 때 1년 후배로서 예쁘다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나중에 미스 코리아 진에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어서 확실하지는 않다고 했다. 어쨌든 미스 K가 학교 가까이에 왔다니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식사가 끝나고 주로 무용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ㄱ 교수는 얼마 전에 경기도 안성군의 죽산면에서 열린 국제예술제에 다녀왔다고 했다. 죽산국제예술제는 ‘웃는 돌 무용단‘의 홍신자 씨가 1994년부터 시작한 연극축제였다. 무용가인 홍신자 씨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인도 철학자 라즈니쉬의 제자가 되었다. 그녀는 인도에서 3년 동안 머무는 동안에 봄베이 근처 라즈니쉬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 푸나에서 생활하였다.

 

홍신자 씨가 쓴 《푸나의 추억》이라는 책을 읽어 보면, 그녀는 라즈니쉬로부터 ‘마 푸렘 바티야(Ma Prem Vartya)’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계를 받았다. 푸렘은 사랑을, 바티야는 회오리바람을 의미하므로 그녀는 ‘사랑의 회오리바람’이 된 셈이다. 라즈니쉬가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이기 전에 홍신자의 춤을 시험하였다. 라즈니쉬는 그녀의 춤을 보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무용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나는 네 팔과 다리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만 네가 네 춤 속에서 스스로 사라져 버릴 수 있는가를 보려고 하였다. 너는 타고난 무용가다. 결코 무용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계속해라. 너에겐 춤이 곧 구도의 길이 될 것이다. 춤의 신비, 춤의 순수, 춤의 자유, 그것이 너의 길이다. 너는 그 길을 통해 깨달음으로 가야 한다. 너는 춤을 추되 춤추는 자는 사라지고 춤 그 자체만 남아 저 영원의 율동으로 남게 해야 한다.”

 

이러한 라즈니쉬의 격려는 그녀가 춤을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라즈니쉬는 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마냥 추기만 하다가 춤을 떠나려던 그녀에게 춤을 새롭게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라즈니쉬의 춤에 대한 이러한 해설은 또 다른 춤꾼인 서울대학교 체육학과 이애주 교수의 해석과 비슷하다. 이애주 교수는 살풀이춤을 잘 췄는데, 이애주 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춤이란 '몸짓으로 얻는 열반의 희열'이다.

 

이애주 교수는 춤을 좀 더 풀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춤출 때는 관객도 자아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율동만이 우주에 퍼져 나가야 한다. 나를 보이려는 춤은 춤이 아니다. 춤은 완전한 자기 없음이 되어야 한다.” 라즈니쉬의 춤의 해설과 비슷하다. 고수(高手)는 서로 통하는 가 보다.

 

‘웃는 돌 무용단’을 만든 홍신자 씨는 70살이 되던 2010년 10월 9일에 한 살 아래의 독일인 한국학자 베르너 삿세 씨와 제주도에서 혼례식을 올렸다. 삿세 씨는 1975년에 독일 보쿰대학에서 독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 대학 등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다가 은퇴한 뒤 한국으로 영구 귀향하고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가 되었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있는 한옥집에서 살고 있는 삿세 씨는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전라도라고 대답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다. 두 사람은 혼인 2년 전에 서울에서 열린 어느 미술작품전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싹틔웠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조우석 씨는 “Love is Play.”라고 쓰인 청첩장을 받고서 다음과 같은 글을 자기 블로그에 남겼다.

 

이렇게 닭살 돋는 청첩장은 처음이다. 커플끼리의 사랑을 과시한 카드를 요모조모 보며 한참을 웃었다. 봉투부터 ‘베르너 삿세♡홍신자’로 돼 있는데, 안에 담긴 카드는 날아갈 듯한 붓글씨로 제목이 달려있다. ‘홍신자 시집가는 날’. 잘 보니 홍신자 이름 석 자에 나비 한 마리가 살포시 앉아 있다.

 

꽃 본 나비? 독일 신랑 삿세(69ㆍ한양대 석좌교수ㆍ한국학 전공)가 신부 홍신자(70ㆍ전위무용가)를 낚아챈다는 뜻이리라. 카드 안쪽을 여니 ‘춘향가’의 그 대목처럼 서로 업고 노는 그림이 펼쳐진다. 방실 웃고 있는 신랑, 넓은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수줍은 신부, 그 그림 아래에 ‘Love is play(사랑은 놀이다)’라고 쓰였다. 나이도 관습도 훌쩍 떠난 이 커플의 사랑철학을 압축한 메시지가 아닐까? 뒷장은 보너스. 둘의 뽀뽀 사진으로 마무리했다.

 

(가운데 줄임)

 

그들은 우리의 고정관념도 깨줬다. “70대 사랑은 완숙한가?”라고 누가 홍신자에게 물으니 이렇게 답을 했다. “아직 난 철부지 소녀이고, 이 양반은 열일곱 살 소년”이라고…. 홍신자는 1960년대 이후 미국ㆍ인도를 넘나들며 예술실험과 구도(求道)여행을 거듭했다. 국내에 돌아와선 30년 가까이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데, 긴 우회로를 거쳐 발견한 건 예술도 명상도 아닌 삶 그 자체였다. 그리고 삿세를 만나 자기 안의 여성성까지 꽃 피웠다. 요즘의 그는 행복한 여자이자, 삶을 즐기는 달인의 모습이다.

 

물론 둘의 결합은 보헤미안 영혼끼리의 뭉침이다. 각자 이혼의 아픔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새롭게 만나 사랑에 골인했다. 삶이란 드라마는 때론 그렇게도 쓰여지는 법인데, 관전 포인트는 따로 있다. 요즘 고령화 시대 홍-삿세 커플은 인생 2모작, 3모작의 훌륭한 모델이 아닐까? 인생을 축구경기로 치자면, 50세까지 전반전, 75세까지 후반전이다. 이후는 연장전인데, 둘은 말년 이후 더욱 유쾌 상쾌 통쾌하게 산다. 그걸 배울 일이지만, 기회에 덕담을 좀 해야겠다. “삿세 서방, 자식을 몇 명 둘 진 모르겠으나, 부디 저 한국 신부를 잘 보듬으시고 부디 행복해야 합니다. 아셨죠?”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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