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충청도 의병장 '조헌' 유품

  • 등록 2014.08.27 08: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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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 1007호

[그린경제/얼레빗 = 윤지영 기자]  말이 쉽지 왜군과 대적할만한 군사나 조직을 철저히 대비 못한 상황에서 이들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용기이며 애국심이라는 생각이다. 바다를 지킨 이순신이 그렇고 온나라 곳곳에서 왜군과 싸운 장수들이 그러하다. 충청도에도 그러한 용감한 의병장이 있다. 바로 조헌 의병장이다.

조헌(1544∼1592) 의병장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충청도에서 의병을 모아 금산벌판에서 왜병과 목숨을 건 한판을 벌였다. 조헌은  문과에 급제한 후 호조좌랑, 예조좌랑, 감찰을 거쳐 보은현감으로 나갔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직을 사임하고 옥천에서 1,700여명의 의병을 일으켜 영규대사와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하였다.

   
    명나라에 파견되었을 때 일기< 조천일기>

이어 금산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남은 군사 700명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의 나이 48살 때이다. 

그가 남긴 유품은  총 6종 7점으로 유품 가운데는 『조천일기』와 문과에 급제했음을 알리는 임명장인 교지, 의병장 제수교서, 조헌종사문묘 교서, 치제문 2매 등이 있다. 간략히 살펴보면 『조천일기』는 조헌이 선조 7년(1574) 명나라에 질정관으로 파견되었을 때 남긴 일기이다. 이 일기는 영조 10년(1734)에 왕명에 의해 간행되기도 하였다.

   
    조헌 의병장 관련 유품


문과급제 교지는 조헌이 나이 24세에 명종 22년(1567) 문과에 급제한 교지로서 조헌의 관계문서로서는 제일 오래된 것이다. 의병장제수교서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임금이 조헌에게 충청도 의병장으로 제수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조헌종사문묘 교서는 1883년 고종임금이 조헌을 문묘에 제사지낼 것을 명해 내린 교서이다. 또한 치제문(致祭文)은 2매로, 1795년 정조와 1812년 순조가 조헌 영전에 그의 죽음을 기리며 보내는 제문이다. 

 

   
   대나무를 조각하여 끈으로 꿰어 차도록 만든 화살통

 전쟁도 초기에 기선을 잡아야 하는 것처럼 조헌 의병장이 왜란초기에 장렬한 죽음으로 이 나라를 지킨 덕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이다. 그의 유품으로나마 조헌 의병장의 삶을 되새겨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있는 곳 :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50, 칠백의총 기념관
* 지정일  : 1989.08.01

<문화재청 자료>

윤지영 기자 qdbeg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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