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리석 부인 홍매영 지사 포장증을 받은 차영조 선생

2018.11.19 09:31:44

소년 가장으로 초근목피 삶을 꾸렸던 지난날을 회상하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 어머니(홍매영 지사)의 건국포장을 받아들고 효창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차리석 지사) 묘소에 어머니 건국포장을 놓고 큰절을 올리자니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동안 험난한 풍파에 시달려왔으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이 싹 풀린 기분입니다.”

 

이 말은 임시정부의 버팀목 동암 차리석 지사의 아드님인 차영조(75살) 선생이 한 말이다. 차영조 선생은 어제(18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어머니 홍매영(洪梅英) 지사의 건국포장을 받아든 소감을 그렇게 말했다. 지난 17일(토) 오전 11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잔디광장에서는 국가보훈처 주최로 제79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차영조 선생은 어머니 홍매영 지사의 건국포장을 유족 대표로 추서 받았다.

 

 

 

 

특히 이번 79회 순국선열의 날에는 홍매영 지사를 비롯하여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 안맥결 지사, 박열 의사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 지사, 기전여학교 4명의 여학생 등 여성 32명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 주목을 받았다.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포상을 받은 여성 독립유공자는 357명(모두 15,180명)이다. 이 가운데 건국훈장은 10,940명, 건국포장 1,270명, 대통령표창 2,970명이다.

 

“제가 두 살 때 아버님(차리석 지사)이 돌아가셨으니 어머님(홍매영 지사)께서 얼마나 고생하셨겠습니까? 아버님은 1945년 8월 15일 중경에서 광복을 맞이하시고 9월 5일 환국을 위한 준비를 하시다가 과로로 쓰러져 9월 9일 중국땅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 뒤 모자(母子)의 삶은 고난의 가시밭길 그 자체였지요.”

 

뒤늦게 받아든 어머니의 건국포장을 가슴에 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렸을 노신사의 모습이 그려져 기자도 가슴이 울컥했다. 통화 목소리에도 이슬이 촉촉하게 맺힌 듯 했다.

 

이번에 건국포장을 받은 홍매영 지사는 1942년 중국 중경에서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광복군의 생활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한책임한국광복군군관소비합작사(有限責任韓國光復軍軍官消費合作社)사원으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을 헌신적으로 지원한 공적이 인정되어 이번에 건국포장을 추서 받게 된 것이다.

 

홍매영 지사의 남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과 중앙감찰위원장 등을 지낸 차리석 (1962. 독립장)지사이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으로 활약한 차보석(2016.애족장)지사는 시누이다. 뿐만 아니라 역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독립운동을 한 차정석(2017. 대통령 표창) 지사는 시숙으로 일가 네분이 독립유공자이다.

 

 

“서울에 살다가 6ㆍ25전쟁 때 부여로 피난 내려가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부여 읍내를 다니던 시절, 너무나 배가 고파 어머니에게 고아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차리석, 홍매영 부부독립운동가의 아들 차영조 선생은 당시 8살이었다. 부모가 쟁쟁한 독립운동가 후손이었지만 서울에는 다리 펴고 누울 공간 하나 없는 상황이라 낯선 피난지 부여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 당시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날품팔이를 해서 어린 아들을 키웠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난 뒤부터 어린 차영조는 소년가장이 되고 말았다. 나이 12살의 피난지 부여에서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보살피며 초근목피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집안의 현주소”였다는 것을 그 누가 알 것인가!

 

 

 

그래서 이번에 추서 받은 어머니 홍매영 지사의 건국포장은 칠순 아드님 차영조 선생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뜻 깊은 것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건국훈장 5등급 안에는 못 미치는 훈격이지만 어머니의 독립운동을 인정 받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차영조  선생은 말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아버지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유일한 사람이고, 아버지 묘소에 가장 많이 다니는 사람이며, 양손에 두 대통령(노무현, 문재인)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도 저일 겁니다.”

 

전화 대담 중 차영조 선생은 당당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효창원 7위(석오 이동녕, 백범 김구, 청사 조성환, 동암 차리석, 이봉창, 매헌 윤봉길, 구파 백정기)에 속하는 한 분이 아버지(차리석)이지만 칠순의 아드님과 생전 어머니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다리 펴고 누울 방 한칸 없이 남의 집 살이를 전전하고 병든 어머니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8살 아들이 아이스케키 통을 들고 다니며 끼니를 구걸해야 했으니 이 나라가 과연 정상의 나라였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금은 행복합니다. 천금과 바꿀 수 없는 독립운동가 부모의 후손으로 그 어떤 어려운 시기에도 항상 정도(正道)를 걷기 위해 몸부림 친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어머니의 건국포장으로 어느 정도 소원은 이뤄진 셈입니다. 하지만 아직 남은 일들이 있습니다. 작은 아버지 (차정석 지사)는 대통령표창(2017)에 그쳐서  흥사단 쪽에 작은 아버지의 활동 기록을 검토 중에 있습니다.  ” 라고 말끝을 흐렸다.

 

 

한날 한 시에 독립운동을 했으면서도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는 시기는 몇 십 년이 걸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쪼록 차영조 선생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차리석(1962년 독립장), 홍매영(2018년 건국포장) 부부독립운동가와 차보석(2016년 애국장) 고모님, 차정석 (2017년 대통령표창) 작은 아버지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전화 대담을 마쳤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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