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 그래도 어려워

2023.01.26 12:12:07

<산은 산 물은 물> - 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불광》이라는 불교 잡지사에서 근무하며 내가 우연히 알게 된 보살님(불교에서 여자 신도를 높여서 부르는 말)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다.

 

답: 산은 산 물은 물

무심 교수님께 (이 보살님은 나를 항상 무심 교수라고 불러서 당황하게 만든다.)

석촌 호수가에도 봄이 한창입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 어찌 그리도 어려운 질문을 하여 당혹스럽게 하시는지요. 하오나 제가 아는 대로 아뢰옵니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데 그것에 달리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요. 큰스님이라고 하시는 분이 너무나 당연한 말씀을 당연하게 말씀하시니 그것이 당혹스럽고 의아스럽게 느껴졌겠지요. 자, 그러면 함께 생각해 볼까요?

 

“(산을 가리키며) 저것은 산이라고 했는데 누가 산이라고 했습니까?”

“········.”

“언제부터 산이라고 했습니까?”

“········.”

“산이 산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습니까?”

“········.”

“입을 열어도 입을 열지 않아도 어긋납니다. 도대체 이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합니까?”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아무런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무심히 산을 그냥 바라만 보세요, 모든 생각이 완전히 끊어지고 오직 의심만이 사무쳤을 때 물론 산은 산이요 물은 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산은 본래 산이고 물은 본래 물이지요. 산이 산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 적도 물이 물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 적도 없어요.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붙여 그렇게 부르고 생각과 형상을 붙이기도 하지요. 그 산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을 붙이기 전에도 산이었고, 물론 산이라고 이름 붙여도 산이고, 또한 설령 다른 이름을 붙인다고 하더라도 역시 산은 산인 것이지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입니다.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 입을 여는 즉시 본래 참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또 입을 열고 말았습니다. 수박을 함께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수박 맛을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가능한 일도 아니지요. 한 번도 수박을 보거나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저 상상으로만 수박을 그리는 것이고요.

 

화두 공부가 안되고 참선이 안 되고 삼매에 쉽게 들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 망상, 집착에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생각과 몸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버리기를 하면서 화두(의심)가 들려지면 공부는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의심이 저절로 이는 사람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만사 내려놓고 스승 밑에서 한 일주일 정도 당근질(화두문답)을 당하며 공부하다 보면 공부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어요.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어떠한 경지가 있는데, 그것은 말로는 잘 표현이 안 되니 실제로 경험해 보는 수밖에 묘안이 없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수박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에스키모인에게 수박 맛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소용이 없고, 그저 수박 한 조각을 주고 먹어보게 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라는 뜻이리라. 아울러 한 일주일 모든 것을 제쳐 놓고 스승 밑에서 공부하다 보면 깨달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절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반인들은 정말로 깨우칠 수 없다는 말인지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나는 ‘수질 오염 개론’이라는 전공과목을 2학년 학생에게 가르치고 있다. 학기가 시작되면 첫 시간은 학생들이 아직 교재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개는 서론적인 이야기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2002년 봄 학기 첫 시간에 나는 공학적인 연구의 대상으로서의 물이 아니고 물의 철학적인 의미를 주제로 강의한 뒤 과제를 내주었다.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유명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 나름대로 연구하여 2주 뒤에 과제물로 제출하면 5점을 주겠노라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그 문장의 뜻을 중학교 2학년인 찬연이(우리 집 둘째 아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식으로 과제를 작성하라고 단서를 붙였다.

 

어리둥절해진 학생들 가운데서 한 학생이 어떤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요즘 인터넷 시대이니 인터넷에 들어가서 찾아보고, 불교에 관한 책도 빌려 보고, 사찰의 누리집에 번개글(이메일)을 보내어 물어보기도 하고, 아는 스님이나 불교 신자가 있으면 물어보는 등 창의성을 발휘해 보라고 대답하였다.

 

2주 뒤에 과제를 받아 읽어 보니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이 썼다.

 

찬연아, 우리 불교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고 가신 성철스님에 대해 한 번 알아볼까? 성철스님이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났지만, 그분에 관한 관심은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단다. 괴팍한 성품의 스님, 수십 년 동안 눕지 않고 또한 8년 동안은 잠도 앉은 채로 자며 철저한 수행을 한 스님, 영어 일어 중국어 불어 독일어 등 5개 외국어에 능통하고 시사잡지인 《TIME》지를 구독하며 물리학, 심리학, 심령학 등 현대 학문을 두루 섭렵한 스님 등등 성철스님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참 많단다. 유명한 이야기로서 성철스님을 만나기 위해서 누구를 막론하고 3천 배를 해야 했단다. 3천 배는 예불 경험이 많은 수행보살의 경우 7~8시간 정도 걸리고 보통 사람은 15~24시간 정도 걸린단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무릎이 벗겨지고 심할 경우 몸살도 날 정도란다. 하지만 그 벼리선 엄격함 뒤에 가려진 더없이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 또한 가지고 계신 분이셨지. 우리 시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스님인 만큼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는데 대표적인 것 몇 개를 살펴보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남을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

“발아래를 보고 발아래를 보라”

“일체를 존경합시다”

 

아직까지도 우리들 입에 거론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스님이 남기신 법어 중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지. 이 계송은 1981년 1월 20일 대한불교 조계종 제6대 종정 추대식 때 내리신 건데 원전은 이래.

 

원각(圓覺)이 보조하니 적멸(寂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권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사회 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뜻은 이래. 참다운 자기 소식도 남에게 전해질 때 잘못 전해지기 쉬운데 남의 소식을 다시 다른 남에게 전한다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뜻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우리는 자기 깨달음의 참모습을 스스로 구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남이 한 것을 가지고 흉내 내며 사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중생들의 망상적 세계를 뚫어 보시고 자기완성을 이룩할 것을 당부한 거야.

(성철 스님에 대한 설명이 충실하고 법어의 출처를 밝힌 것은 좋은데 그 구절에 대한 해석은 무슨 말인지 명백하지 않다.)

 

 

다른 학생은 다음과 같이 과제를 작성하였다.

 

이 법문은 성철스님께서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면서 대중에게 내린 법어입니다. 그 뒤로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맨 처음 하신 스님은 황벽스님일 것입니다. 황벽스님은 백장, 황벽, 임제로 이어지는 조사선의 정통을 이어받은 스님으로서 ‘전심법요’ ‘완릉록’ 등의 어록이 전해져 옵니다. 황벽스님은 심외무불 곧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는 법문을 즐겨 하셨습니다. “그저 다른 견해만 내지 않는다면 산은 산, 물을 물, 스님은 스님, 속인은 속인일 뿐이다.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모두 너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삼천대천 세계가 모두 너의 본디 면목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뒷날 운문스님은 황벽스님의 이 말을 이어서 “온 땅덩어리가 그대로 해탈의 문이거늘 공연히 불법이라는 견해를 일으키는구나! 어째서 산을 산으로 보지 않고 물을 물로 보지 않는가?”라고 하였던 것이다. 사실 온 땅덩어리가 곧 해탈의 법문이거늘 지견으로 알려고 하는 견해를 지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때로는 산을 보고도 산이라 부르지 않고 때로는 물을 보고도 물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 대중은 피차가 대장부이니 남의 말에 속임을 당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말의 출처를 성철 스님이 아니라 중국의 황벽 스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새롭다. 중간까지는 이해가 가는듯한데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무슨 말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처럼 여러 사람의 답변을 종합해 보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은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사례를 들어 보면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말하면서 군대를 보내 침공했는데,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부시가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라크는 보유하고 있던 미사일을 파괴했고, 또 국제 사찰단의 사찰 결과 대량살상 무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데, 이라크가 어째서 악의 축인가?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종교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선입견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절에서 부처님께 절하는 것을 우상 숭배라고 몰아붙이는 일부 기독교인들, 그리고 천주교는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선입견에 사로잡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구체적인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찍이 교육으로 사물에 대한 개념과 가치 판단을 배우기 때문에 선입견이 없이 사물을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도 사물에 대한 관념이 생기기 전의 갓난아기는 벌거벗은 자기 몸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은 교육받은 일반인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가치 판단하고, 싫어하고, 좋아하고, 비난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선입견을 떨치고서 산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아니, 사실은 산이라는 이름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방해가 된다. 산에 가까이 가야만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산에 들어가서 있는 그대로 본다면 산이라는 이름까지도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입견을 넓은 뜻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법칙이나 진리도 일종의 선입견으로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방해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집착 가운데 가장 큰 집착을 법집(法執)이라고 한다. 세상에 유일한 진리가 있다거나, 이것만이 진리라거나 하는 것은 모두 법집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법구경⟫에 나오는 그 유명한 뗏목의 비유이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서 지혜의 저편 언덕에 도달한 사람이 뗏목을 메고 간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뗏목을 버리고 지혜로 들어가면 된다. 뗏목을 붙잡고 살아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두 번째 사례는 사물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는 경우이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듯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 사람은 잘 살기 위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자로 잘살아 보겠다는 목표를 두고 살아간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나타내는 예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장기간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중심의 인생관이 놓치는 것은, 돈이란 행복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수단과 목적을 구별하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서, 주변을 보면 돈이 많아져도 행복하게 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젠가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났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돈 번 이야기만 하여 물렸던 적이 있다. 어디에다 땅을 사두었는데 얼마가 올랐고, 아파트 평수를 늘려 몇 번 이사하다 얼마를 벌었고, 남들은 증권을 하면 손해를 본다지만 자기는 한해에 한번 사고팔았는데도 얼마를 벌었다는 등등. 사실 내가 친구를 만났을 때 관심이 있는 것은 어떤 부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아이들은 학교에 잘 다니는지, 요즘 건강을 위해서는 무슨 운동을 하는지 등인데, 그와는 돈 이야기만 듣다가 헤어졌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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