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창작 방향성, ‘법고창신’을 바탕으로 해야

2023.10.29 12:03:55

[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9]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우리는 공연의 3요소를 흔히 무대ㆍ배우ㆍ관객으로 말한다. 이 전통적 개념에서 볼 때, 공연을 완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창작자의 것을 바라보는 관객이 포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작자가 무대 위에서 창의적 활동을 할 때, 이를 보고 소통하는 관객이 없다면 공연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연예술에서 관객은 시대에 따라 그 대상이 점점 더 다양해졌다. 예전에 예술은 소수의 부유층이 누리는 문화예술로서 그 희소가치가 높은 것을 의미하였다. 곧 특별한 것을 누리는 고급문화로서 계급적 권위와 품격을 높이는 행위로서의 예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예술은 대중의 향유에 시선을 맞추고 대중성에 입각한 상업의 흥행을 목적으로 향해 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예술의 값어치를 돈으로 지급하는 부유층의 후원에 따라 진행하던 것이 나중에는 대중의 흥행에 의한 것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관객은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가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서 살고 있다.

 

소수의 부유층이 향유 했던 예술을 전통 또는 클래식으로 말했지만, 이는 소수의 예술이 아닌 대중들에게도 향유되는 예술로서 그 범위가 확산하였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향유되기 위해서 대중들은 이 전통을 즐길 수 있도록 선 학습이 필요했다. 또한 전통을 그대로 학습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어려운 부분들을 예술가들은 대중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장르로 만들어 가며 독자적인 분야로 새롭게 창출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오페라에서 뮤지컬이 그러하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전통음악에서도 보인다. 전통음악을 더욱 친근하게 하려고 국악을 전공한 창작자들은 넘나들기(퓨전) 음악을 만들어 대중과의 접근을 쉽게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넘나들기에 대한 개념적 고찰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넘나들기란 융합,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것저것이 섞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넘나들기에서 전통음악 곧 ‘국악’의 본질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 유학생들과 함께 국악 창작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국립국악원에서 ‘일이관지’란 이름으로 기획하여 여러 분야의 명인들이 전통예술의 다양성을 선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공연이었다. 중국 학생들은 중국의 전통예술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현대적 융합에 관하여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창작공연 관람을 본 것이다. 바이올린, 첼로 등 여러 대의 서양악기와 한 대의 9현 거문고(9현 화현금)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중국 학생들은 거문고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본래 전통 거문고(6현 거문고) 음악을 들었던 중국 학생들은 현대의 음악을 수용하기 위해 개량된 거문고가 서양음악과 어떠한 융합적 결합을 추구하였는지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 연주는 그들의 목적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된 가장 큰 까닭은 여러 대의 서양악기 소리에 거문고 소리가 묻혀 잘 들리지 않았고, 서양 음계 체제에 맞춰 창작된 거문고의 음악이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국악의 창작이 그저 이것과 저것이 섞였을 뿐 어떠한 음악의 한 분야로 독립되지 못하고 우리의 음악인지 서양음악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음악이 되어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모차르트가 애용한 피아노는 본래 하프시코드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가 통일되기 전 토스카나 대공국의 군주였던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하프시코드를 자신만을 위한 악기로 만들어 내고 싶어 했다. 그는 베네치아의 크리스토포리에게 악기 제작을 의뢰하였다.

 

 

 

하프시코드가 셈여림 표현이 모자란 점을 보완하고자 기존의 현을 뜯어내고 대신 펠트(felt)로 만든 해머(hammer)로 때리는 방식을 써서 강약을 조절하고 감정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하였다.(해머 펠트는 피아노의 해머 쿠션으로 쓰이는 상질의 양모다)

 

그렇게 만든 피아노는 대중들의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모차르트에 의해 부흥을 맞게 된다. 모차르트는 뮌헨에서 처음 만난 이 악기를 주인공으로 오케스트라가 반주 되는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하였다. 모차르트는 큰 피아노에 양손과 양발을 이용하여 피아노가 돋보일 수 있도록 화려한 피아노협주곡을 만들어 내 대중들의 열광을 끌어냈다.

 

자신의 음악을 대중들에게 돋보이도록 하려고 자신의 음악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선택하였고, 그 피아노가 돋보일 수 있도록 협주곡을 만든 것이다. 이를 계기로 피아노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현재까지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독주 악기이자 협연 악기로 사랑받고 있다.

 

모차르트는 초기 작품에서 하프시코드를 위한 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1765년 이전에 작곡된 모든 건반악기가 들어가는 곡의 제목에 하프시코드가 있었다. 그는 여러 음을 동시에 눌러서 화음을 지속하는 작품들을 작곡하였으나 하프시코드의 경우 소리가 섞이지 않고 선율과 반주가 부딪히는 부분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부분에서 창작의 한계성을 느꼈던 모차르트는 슈타인의 피아노를 만난 뒤 창작에 제한되었던 부분을 피아노를 통해 음역을 극복하고 다양한 화음을 펼치게 되었다. 이것은 본래 피아노의 원형인 하프시코드를 오랫동안 연주하면서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악기의 한계에 부딪혀 펼치지 못한 것들을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피아노를 만나 비로소 모차르트만의 음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지점에서 모차르트의 ‘법고창신’ 노력을 돌아보아야만 한다.

 

국수주의자를 비하하는 유행어로 ‘국뽕’이란 비속어가 있다. 이 말은 국가와 히로뽕(마약의 일종)의 합성어로 무조건 대한민국의 것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국뽕은 우리 문화를 더욱 멀게 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국뽕은 우리가 경계해야만 할 행태지만, 지금 더 큰 문제는 다른 나라 문화가 무조건 좋다는 망상에 빠지는 일이다. 그로 인해서 우리 문화를 홀대하고 결국 스스로 문화 사대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산조를 전공한 사람이 ‘법고창신’ 해야 한다며 정악을 더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로써 그가 넘나들기 음악을 해도 우리 음악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진정한 의미의 창작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고창신’의 정신에서 그 본질을 찾고 그 뿌리의 근간을 두어야 할 것이다.

 

전통에 매몰되어 시대와 대중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사람들에 의해 변해간다. 시대를 담지 못하는 음악은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면당했던 피아노가 대중의 인기를 얻어 지금까지 사랑받는 악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차르트가 ‘법고창신’ 하는 마음으로 하프시코드를 잊는 것이 아니라 하프시코드를 바탕으로 한 피아노만의 독특한 특별성을 돋보인 곡들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음악과 그 음악을 표현하는 악기가 어느 예술가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 대중에게 외면되기도 하고 돋보이기도 한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국악은 대중의 음악이 되기 위해 넘나들기라는 장르의 창작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음악의 본질인 뿌리를 근간으로 치밀한 연구와 고민 없이 그저 이것과 저것을 섞어낸 음악으로 내놓는다면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모차르트처럼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국악 창작 방향성을 찾는다면 넘나들기 음악이 우리 음악의 본질 찾게 만드는 이끌림이 되어 줄 것이고 이를 통해 대중의 공감과 더 나아가 열광을 끌어내는 교두보가 될 것이다.

 

 

이진경 문화평론가 jksoftmil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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