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스티로폼 상자에 커다란 돌멩이 넣어주었다

  • 등록 2025.05.18 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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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첫사랑>
[겨레문화와 시마을 22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첫사랑

 

                                       - 고영민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밤새 저리 뒹굴 것 같아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주었다.

 

 

 

 

며칠 뒤면 24절기 ‘소만(小滿)’이 온다. 소만 때가 되면 모든 들과 뫼가 푸른데 오히려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이는 새롭게 태어나는 죽순에 영양분을 모두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봄철의 누런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 곧 ‘대나무 가을’이라고 한다. 또 이때 만물은 가득 차지만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구황식품을 구해야 할 때다. 그래서 소만은 우리에게 세상 이치를 잘 가르쳐 준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따뜻함이 있으면 차가움도 있으며, 가득 차 있으면 빈 곳도 있다고 말이다.

 

입하와 소만 무렵 세시풍속으로 ‘봉숭아 물들이기’가 있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4월 조에 보면 “계집애들과 어린애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 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인다.”라는 기록이 있다. 봉숭아 꽃이 피면 꽃과 잎을 섞어 찧은 다음 백반과 소금을 넣어 이것을 손톱에 얹고 호박잎, 피마자잎 또는 헝겊으로 감아 붉은 물을 들인다. 이 풍속은 붉은색이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그런데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기 고영민 시인의 <첫사랑> 시를 보면 “그녀의 집 대문 앞에 / 빈 스티로폼 박스가 /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 와 / 그 안에 / 넣어주었다.”라고 노래한다. 그녀의 가슴에 커다란 돌멩이 하나 넣어두는 것이 첫사랑일까? 그 돌멩이가 첫눈 올 때까지 꾹 눌러주고 있음이 어쩌면 첫사랑인지도 모른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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