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명활성 속내를 드러내다

  • 등록 2013.12.02 10: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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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문화재연구원 발굴 조사결과

[그린경제/얼레빗=한성훈 기자]  계림문화재연구원(원장 남시진)경주 명활성(慶州 明活城, 사적 47) 북문터를 발굴조사(2013.6.25.11.30.)했다 그 결과 명활성의 북문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문터, 치성(雉城, 성곽 일부를 돌출시켜 놓은 것), 문지로 진입하기 위한 석축 구조물 등이 최초로 조사되었으며, 반원형(半圓形)의 치성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충청북도의 보은 삼년산성(報恩 三年山城, 사적 제235)과 경상북도의 문경 고모산성(聞慶 姑母山城)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 명활성 발굴조사 완료 뒤 전경 1

   
▲ 명활성 발굴조사 완료 뒤 전경 2

북문터의 양쪽 측벽에서는 다량의 평기와와 철판(鐵板), 철정(鐵釘, 쇠못) 당시 나무문에 사용되었던 철제유물이 출토되었고, 특히, 문터의 동서 끝 부분에서는 확쇠(나무 기둥을 바닥과 고정시키는 철기)가 출토되어 그 너비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번 조사 성과는 명활성 문터의 실체와 반원형(半圓形)의 치성이 신라 외곽지역 이외에 경주에서 최초 확인된 점에서 학술 가치가 매우 크며, 이는 앞으로 경주 명활성 정비에 있어 중요한 기초 자료를 확보한 것이고 평가된다.  

아울러 경주 명활성은 삼국사기에 실성왕(實聖王) 4(405)에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하며,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18(475)부터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10(488)에는 임시 궁궐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또 선덕왕(善德王) 16(647)에는 비담과 염종의 반란군들이 반역을 도모한 근거지로 기록되어 있어 지리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산성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 명활성 치성 전경

 

   
▲ 명활성 북문터 주변 전경

   
▲ 븍문터 서쪽 벽 철제유물 출토 모양

   
▲ 명활성 북문터 출토 확쇠

 

 

한성훈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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