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한글,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쓴소리

2013.12.04 23:14:08

홍사내의 세종한글 길라잡이 7

[그린경제/얼레빗=홍사내 기자] 

1. 글로벌 

요즘 우리 사회의 큰 화두 가운데 하나가 한류(韓流)이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말과 글, 음악과 디자인, 영화와 연속극이 그대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유행하고 있다. 그 속엔 우리만이 가지는 독특하고 고유한 말과 글, 멋과 맛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먼저 생각나게 하는 말은 글로벌이라는 말이었다. 그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 세계화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개발도상국이란 말을 버리고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지위가 오른 만큼 모든 사회 문화적 잣대를 경쟁력 있는 선진국형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예컨대, 보건, 의료, 교육, 정치, 제도 따위의 기준을 높이고, 환경과 건강 등 삶의 질을 올리자는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권위주의적인 많은 관습을 버리고, 국가 중심에서 인간 중심, 조직 중심에서 개인 인권 중심, 남녀 평등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였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과 맞물려 정치적으로도 발전을 거듭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많았다. 세계화라는 것은 외국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라는 오해를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영어로 표현하고 유럽풍으로 바꾸려는 견해도 있었고, 영어를 배워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빠른 시간 안에 익히고 말하고 영문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예컨대 영어마을을 전국 곳곳에 세워 초중고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가르치게 하려는 시도와 대학에서까지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영어공용어를 서슴지않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 한 지자체에서 세운 영어마을 알림세움판

지금도 이런 주장은 식을 줄 모른다. 학교 교육에서 영어교육이 차지하는 비율은 날로 높아지고, 기업이나 대학에 취직할 때는 영어로 발표하고 자기소개서를 써내고 영어 능력 자격을 필수적으로 본다. 이제 좀 더 깊이 생각하여 지혜를 모을 때이다.
 

2. 집현전 학사의 문자주의 

조선시대는 국제적으로 명나라가 동양의 신흥강대국이었고, 그 문화 또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자문화권을 형성하여 옥죄고 있었다. 마치 서양이 중세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서 천년 동안 기독교와 라틴어로만 획일화된 채 암흑기를 보내야 했던 것과 같이 사상과 윤리가 획일화된 시대였다.  

그런 시대적 외교적 상황 속에서도 세종은 백성을 위한 올바른 정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국가 독립, 겨레 자립, 인간 중심, 백성이 백성다운 삶 중심. 이것이 진정한 통치이고 임금이 해야 할 일이면서 오랫동안 나라가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집현전을 세운 것이 그 때문이다. 집현전은 우선 학자 양성을 위한 기관이었다. 집현전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경연(經筵)과 서연(書筵)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경연은 왕과 유신이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자리로 국왕이 유교적 교양을 쌓도록 하여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서연은 왕이 될 세자를 교육하는 것이다. 집현전관은 외교문서 작성도 하고 과거의 시험관으로도 참여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사관(史官)의 일을 맡았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이 학문 연구였다. 중국 고제(古制)에 대하여 연구하고 편찬사업을 하는 등 학술사업을 주도했다. 세종은 학사들의 연구에 편의를 주기 위하여 많은 전적(典籍)을 구입하거나 인쇄하여 집현전에 보관시키는 한편, 재주 있는 소장 학자에게는 사가독서(賜暇讀書)의 특전을 베풀었다. 또한 정치지도자도 많이 배출되었다. 서연관은 모두 집현전관을 겸하고 있었으므로 집현전관은 첨사원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편찬사업을 보더라도 《고려사》, 《농사직설》, 《오례의》, 《팔도지리지》, 《삼강행실도》, 《치평요람》, 《동국정운》,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의방유취》 등의 많은 서적을 편찬·간행하였다. 또한 많은 학자적 관료를 배출하여 세종 때뿐만 아니라 이 이후의 정치·문화의 주춧돌 구실을 하게 하였다. 

이렇게 세종이 집현전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통치의 진정한 의미와 백성의 삶을 위한 깊은 통찰력이 그 바탕을 이룬다. 하지만 집현전의 많은 유학자들과 정치관료들은 당시의 정치적, 외교적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만 할 뿐, 진정성 있는 통찰력이 없었다. 문자는 지배자의 소유물이며 권위의 상징이기 때문에, 문자를 함부로 백성에게 내어주어서는 안되며, 문자 연구는 중화주의에 충실한 통치자와 권력자만의 영역이라 보았다.  

이러한 사대부 양반들의 생각에서 벗어난 세종의 통찰은 매우 넓고 높고 깊었다. 이것을 문화사적으로 정신적 근대화라고 부르면 어떨까싶다. 세종에게는 이러한 넓고 큰 안목이 있었다. 서양의 르네상스처럼 인문주의와 백성 중심의 눈을 가진 세종의 생각은 어쩌면 동양의 ‘문예부흥’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3. 한글의 세계화

세종은, 백성이 배제된 통치, 학문, 기술, 제도, 경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고, 또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격이라서 오래 가지도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백성이 아주 쉽고 편하게 배우고 익혀서 날마다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보겠다고 피땀을 쏟으며 애써서 만든 글자가 현대 과학자들도 놀랄 만한 훌륭한 문자로 재평가된 것이다. 이 세종의 정신을 뛰어난 우리나라 과학자나 위정자들이 본받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많이 발전하였다. 흔히 우리는 이 발전이 우리 겨레의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 하지만, 어쩌면 서양 열강의 동양 침략과 지배 역사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계화를 부르짖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력을 키우고, 국방력을 키우며, 전통문화를 자랑하고, 우리 삶의 질을 다지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 역량과 가치관이 세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펼쳐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자랑스럽고 위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현전 학사들처럼 주어진 학문을 달달 외고 따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동안 몰랐던 지식과 지혜를 배우기 위해 열심히 영어나 외국어를 공부했다고 그 외국서적 원문을 그대로 읽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은 모든 학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구성과와 업적과 결과물이 많이 축적되었다. 그러므로 이젠 제목소리를 낼 때이다. 우리글로 써서 기록하고 우리말로 발표하고 가르칠 때가 온 것이다. 
 

   
▲ 온통 영어 투성이인 의학서적, 꼭 저래야만 할까?

   
▲ 온통 한자투성이 법전은 누굴 위함일까?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은 배운 학문서적 그대로를 그 나라 글자로, 그 나라 말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사와 검사는 일본 법전을 본떠서 만든 우리나라 법전을 그대로 법률가들만 알고 소통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의사는 독일의학서, 미국의학서대로 원서문장을 읽고 의사들만 소통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문이 그렇다.  

이젠 깰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 의사가 의술이나 의약을 새로 개발했다면 먼저 우리말과 한글로 표현하고 난 뒤에 영어나 독일어로 발표해야 마땅하다. 더욱이 모든 학문과 기술은 사람을 위해 발휘되어야 하듯이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듣고 알 수 있도록 우리말식으로 용어와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원전이 되어서 다른 나라로 퍼져나갈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강국으로서 세계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도 세계화(글로벌)를 외치면서 자기 나라 말과 글을 저버리지는 않는다. 자칫 국어학자가 한글의 우수성을 말하면 국수주의자라 비난받겠지만, 판사와 검사가 법률용어를 우리말 용어로 바꾸어 한글로 쓰고, 의사가 의학용어를 우리말 용어로 바꾸어 한글로 쓰며, 약 설명서를 쉬운 우리말로 설명하고, 전자공학이나 제조학 등 모든 전문용어를 그 전문가들이 나서서 우리말 용어로 바꾸어 한글로 쓴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실천이고, 인권 존중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며, 나아가 인간의 보편적 가치 중심의 세계화를 이루는 것이다. 가치가 있으면 누군가 본받기 마련이다.                                  

                                                                                                   2013.12.03.©홍현보.

 

홍사내 기자 azaq19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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