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병합 이전의 <한국 신사(神社) 창건론>

2021.12.02 11:19:58

맛있는 일본이야기<628> 연재 《일본 통치하의 해외신사》 1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25년(대정14년) 10월 15일, 하늘은 맑았다. 일제는 경기도 경성부(당시 표기, 지금의 서울) 남산에 천조대신과 명치왕을 제신으로 하는 '관폐대사 조선신궁(官幣大社 朝鮮神宮)'의 진좌제(鎭坐祭)를 봉행했다. 진좌제란 신사(神社)에서 건물을 지어 영령께 고하는 의식을 말한다.

 

이날 아침 10시 10분, 의장대가 연주하는 국가의 진혼이라는 음악에 맞춰 다카마츠 시로 궁사(宮司) 이하 제원(祭員)들과 참례자 대표인 이왕가의 이강공(李岡 公)을 비롯하여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부부, 각국 영사, 총독부 고위관료, 사단장 이하 군인, 은행가, 실업가 등이 대례복 또는 정장 차림으로 3,500여명이 모여 신전에 납폐와 공물을 올리며 진좌제를 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날 진좌제에 참석했던 신도학자(神道学者)인 오가사와라 쇼조(小笠原省三, 1892~1970)의 참배 소감이다. 오가사와라는 진좌제 참배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왠지 그림책을 펼쳐 놓은 듯한 풍경이었으나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들었고 부족함이 느껴졌다”

 

이에 대해 스가 코우지(菅浩二) 씨는 그의 저서 《일본 통치하의 해외신사》에서, 오가사와라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오가사와라 씨는 평소 조선신궁에는 조선땅의 신을 모셔야한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에 “조선신궁에 일본신을 모시고 진좌제를 봉행한 것이 못마땅해 진좌제 소감을 그렇게 피력했던 것같다” 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뭔가 상식적이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게된다.  조선땅에 일본 신궁을 지었다면 당연히 일본신을 모시려고 한 것일텐데 오가사와라 씨의 '조선의 신을 모시지 않아서 실망했다'라는 말은 대관절 무슨 뜻이란 말인가? (2)로 이어짐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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