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최치원!
신라를 다룬 사극이나 위인전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고운 최치원, 그는 당대를 주름잡은 천재이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지어 난을 일으킨 ‘황소’를 의자에서 굴러떨어지게 했다는, 전설의 문장가다.
그러나 동시에 ‘6두품’이라는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원대한 뜻을 온전히 펼쳐보지 못한, 비운의 천재이기도 하다. 이런 불운한 인생사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반영된 것일까. 그는 조선에서 《최치원전》이라는 고전소설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 책은 작가 미상의 《최치원전》을 어린이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재밌게 풀어 쓴 책이다. 물론 여기 나오는 최치원의 삶은 영웅적 설화에 가까우며 실제 삶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열두 살에 중국 당나라로 가서 글로 이름을 떨치고,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 상대를 놀라게 하고, 신라로 돌아온 뒤 식솔과 함께 가야산에 들어갔다는 내용은 상당히 비슷하다.
소설의 주요 내용은 태어날 때부터 ‘금돼지의 아이’라는 의심을 받아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최치원이, 학문을 관장하는 별 ‘문창성’의 현신으로 추앙받으며 문명을 떨치고, 그 이름이 중국에까지 전해져 이를 시험하고자 하는 중국 황제의 계책에 슬기롭게 대응한다는 내용이다.
중국 황제가 상자 안에 든 것을 맞추어 보라는 문제를 내자 한 수 앞을 내다보며 현명하게 대처하고, 시 짓기 대결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등 신라의 자존심을 지켜낸 영웅적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영웅담은 최치원이 쓴 「토황소격문」을 읽고 황소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p.100)
무릇 사람의 일이란 스스로 아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내가 헛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너는 살펴서 잘 들어라.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덕이 깊어 더러운 것을 용납해 주고 은혜가 두터워 결점을 따지지 않아서 너에게 병력과 지휘권을 주고 지방을 맡겼거늘 너는 오히려 짐새*의 독을 품고 올빼미의 흉한 소리를 거두지 않아, 움직이면 사람을 물어뜯고, 가면 주인을 보고 짖는 개와 같도다.
황소는 최치원이 보낸 편지를 읽다가 너무 놀라 의자와 함께 그 자리서 그만 콰당탕 굴러 넘어지고 말았어. 「토황소격문」에 담긴 최치원의 기세에 간담이 서늘해졌거든. 황소는 심장이 떨리고 손발도 덜덜거렸어.
* 짐새 : 중국 남방 광둥(廣東)에 사는 독이 있는 새
이렇듯 당나라에서 글재주를 천하에 알린 최치원이었지만, 신라 신분제 사회의 벽은 견고했다. 신라를 개혁해 보겠다는 큰 뜻을 품고 돌아온 그를 신라 관료사회는 오히려 배척하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에 실망한 최치원이 아내를 데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고, 두 사람은 신선이 되어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다소 허무한 결말이다. 최치원과 같은 인재를 받아들일 그릇이 되지 않았던 신라사회의 경직성이 망국을 재촉한 것이 아닐까.
한 나라의 국력을 결정짓는 요소는 땅의 크기와 인구수와 같은 외형적인 요소도 있지만, 다양한 인재를 받아들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포용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조선 또한 갈수록 일부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고 성리학 일변도로 흐르며 망국의 길을 걸었다.
지은이는 이 소설이 지어진 시점이 명나라가 횡포를 부리던 시기인 점을 고려할 때, 당대 백성들이 최치원이 대국 당나라에 의연히 맞서는 내용에서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라 설명한다. 동아시아의 오랜 강대국 중국은 언제나 버거운 상대였다.
이는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을 압박하는 중국의 모습에서 문득 기시감을 느낀다. 소설에 나오는 최치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외교의 달인’이다. 비록 줄거리 전개가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긴 하지만, 오늘날 읽어도 상당한 대리만족을 주는 ‘통쾌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