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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조광원 신부의 발자취와 강화 온수리 성당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이 우리들의 토지

조선을

훔친 지 무려 40년이다

 

몸을 던져

피를 흘려보면

그 피에 의해 되찾은

땅의 권리는

영원할 것이다.

 

....죽자

피를 흘리다

 

피의 가치에

권리가 있고

사상이 있으며

독립이 있다.

 

이는 대한성공회 신부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광원(1897.10.21. ~ 1972.10.7.) 지사의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말이다. 며칠 전 조광원 지사의 기념비가 있는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성안드레성당)엘 다녀왔다. 한옥의 자태가 그대로 살아있는 이 성당은 지은 지 113년이 되는 건물로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2호(2003.10.27.)로 지정되어 있어 성공회 신자가 아니더라도 강화의 유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이 건물 옆에 조광원 지사의 기념비가 서 있다.

 

 

조광원 지사는 어린 시절 이곳 온수리 성공회 성당의 신자였으며 그 뒤 1921년 서울 정동성당에서 열린 제3회 전도구연합회에서 '전도장려부' 설치를 위한 기초위원에 선임됐다. 평신도였던 조광원 지사는 트롤로프(조마가) 주교 명을 받아 미국 성공회 하와이교구로 파송되어 활동하였으며 동포 2세들에게 한국어 교육과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모아 보내는 등 독립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조광원 지사는 하와이 파송 뒤 미국 나쇼다 성공회신학대학에서 신학수업을 마치고 1928년 6월 3일 하와이교구장으로부터 부제성직 안수를 받았다. 그 뒤 1931년 5월 1일 하와이에서 리틀(S. H. Littell) 주교에게 사제성직을 받았으며 1945년 8월15일 광복과 함께 고국에 돌아오기까지 22년간 하와이와 본토 등지에서 성공회 교역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성안드레 성당안은 전시공간을 겸하고 있었는데 칼바람이 불던 날이라 그런지 성당 안도 쌀쌀했다. 113년 전, 조선의 등불이 외롭게 흔들리던 시기에 이 성당에 다니면서 조선의 앞날을 기도했을 신자들 틈에 어린 조광원 지사의 모습이 눈에 어른 거렸다. 국난의 시기에 신부, 승려, 학생, 기생, 노동자 등의 신분을 뛰어넘은 나라사랑 정신은 곳곳에 기념비로, 기념탑으로 남아 있어 그날의 숭고한 얼을 새기고 있다.

 

 

 

 

성안드레성당을 찾은 날은 영하 10도의 몹시 추운 날씨였지만 성당안팎을 돌아보면서 신부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그 뜨겁던 열정을 생각하니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광원 지사의 기념비 옆에 서있는 한그루 소나무는 한옥 성당을 향해 비스듬히 누워 이 겨울의 찬바람을 오롯이 받아내고 있었다. 조광원 지사가 말없이 조국 광복을 위해 쏟았던 열정을 나무는 알고나 있는지... 정부에서는 조광원 지사(신부)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길38번길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