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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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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 민주화 이끈 5ㆍ18민주항쟁 38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20]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지난해 5ㆍ18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민들과 함께 부른 백기완 원작시, 황석영 개사, 김종률 작곡의 “님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오늘은 5ㆍ18민주항쟁 제38돌, 다시 한 번 “님을 위한 행진곡”을 조용히 읊조려 봅니다. 또 아버지 영정을 들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는 다섯 살 아이의 서글픈 사진 한 장을 쓰다듬어 봅니다. 5ㆍ18민주항쟁은 폭도들의 반란 또는 북한군의 침투가 있었다는 등 왜곡된 정보 속에 오랫동안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진실은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5ㆍ18민주항쟁 37돌 기념식을 계기로 이젠 5ㆍ18민주항쟁은 ‘불온한 국가권력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이 총과 칼에 죽어갔음이 분명해졌지요. 아직 발포명령자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못했지만 5ㆍ18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를 이끈 소중

정제된 아름다움, 거문고 산조를 들어볼까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19]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전통음악에는 민속 음악에 속하는 기악 독주곡 형태의 하나로 “산조(散調)”라는 것이 있습니다. “산조”는 장단의 틀 말고는 정해진 것이 없으며, 서민들의 슬픔과 기쁨 등의 생활 감정을 담았는데 19세기 말 김창조에 의해 가야금산조가 맨 먼저 생겼습니다. 이어 생긴 것들엔 거문고산조, 대금산조, 해금산조, 그리고 아쟁산조가 있지요. 그 가운데 ‘백악지장(白樂之丈)’ 곧 모든 음악의 우두머리라고 일컬어지는 거문고의 산조는 1896년(고종 33)에 당시 20살이었던 백낙준(白樂俊)이 처음으로 연주했습니다. 백낙준 명인이 틀을 잡은 거문고산조는 백악지장인 거문고로 천한 음악을 연주한다는 반발과 함께 초기에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개화의 물결을 타고 점차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하였지요. 이후 거문고 산조는 신쾌동(申快童, 본명 신복동, 1910-1977) 명인에 의한 신쾌동류 거문고산조, 한갑득(韓甲得, 1919-1987) 명인에 의한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두 유파로 발전해왔습니다. 신명이 분출하는 듯하다는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보유자 김영재 명인에 의해 이어지고 있지요 또 구수하면서도

없어진 철불, 도피안사에 앉아 있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18]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원도 철원군 화개산에는 신라 경문왕 5년(865) 도선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오래된 절 ‘도피안사’가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도선대사가 철조비로자나불을 만들어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모시려고 했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아보니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이곳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합니다. 이 불상이 바로 국보 제63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입니다. 신라말에서 고려초에는 철 곧 쇠로 만든 불상이 크게 유행했는데, 이 작품은 그 대표적인 예로,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까지도 쇠로 만든 보기 드문 작품이지요.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갸름한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하게 보이는데 몸에는 굴곡의 표현이 없고, 양 어깨를 감싼 옷에는 평행한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몸에 견주어 가냘픈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비로자나불의 일반적인 손 모습입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이때에 가장 유행한 모양으로, 상대와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중대는 8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참고로 ‘비로자나불’은 햇빛처럼 불교의 진

1397년 오늘 훗날 세종이 될 ‘이도’ 태어나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17]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종 장헌영문예무인성 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의 이름이 도(祹)요, 자는 원정(元正)이니,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의 셋째 아들이요, 어머니는 원경 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다. 태조(太祖) 6년 정축 4월 임진에 한양(漢陽) 준수방(俊秀坊) 잠저(潛邸) 에서 탄생하였으니...” 《세종실록》 총서에 나오는 세종임금의 태어난 내력입니다. 이로써 세종이 태어난 곳은 준수방이며, 어렸을 적 이름이 “도(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준수방(俊秀坊)이라 함은 조선 초기부터 있던 한성부 북부 12방 중의 하나로서, 현재의 종로구 통인동, 옥인동 일대로 경복궁 서쪽문인 영추문길 맞은편 의통방 뒤를 흐르는 개천 건너편인데, 청운동을 흘러내리는 한줄기 맑은 물과 옥인동으로 내려오는 인왕산 골짜기의 깨끗한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입니다. 어떤 이는 세종대왕이 경복궁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태어날 당시 아버지(이방원)가 왕자 신분이었기에 궁궐이 아닌 사가(私家) 준수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남이 아닌 세종이 임금에 오를 수 있었던 까닭은 《세종실록》 즉위년(1418년) 9월 4일 기록에 "임금이 말하기

연령초 꽃을 보면 정말 젊어질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16]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그저 꽃인데 바라보기만 하면 볼 때마다 ‘연령(延齡)’ 곧 수명을 연장한다는 다시 말하면 젊어진다는 꽃이 있습니다. 높은 산 깊은 골이 아니면 만나볼 수 없는 꽃 ‘연령초(延齡草)’가 바로 그것입니다. 늘씬한 키에 얼굴이 하얀 귀공자가 풍성한 초록색 망토를 걸친 듯한 풍모라고들 합니다. 실제 연령초를 보고 젊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제게는 오히려 ‘왕삿갓나물’이나 큰꽃삿갓풀’ 같은 토박이말 이름이 정겹습니다. 연령초는 백합과 연령초속의 여러해살이풀인데 5~6월 여름이 시작되면서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연령초는 러시아 동쪽 아무르, 우수리, 사할린, 캄차카와, 중국 동북부, 한국, 일본 등 주로 동북아시아에 자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 경기, 충북, 경북, 지리산 이북의 높은 산 숲 속 계곡 근처 습한 곳에 드물게 자라지요. 산림청에서는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선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한 학자가 자신의 책에 우리말 표기법과 달리 ‘연영초’라고 잘못 기록하여 ‘연영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요. 뿌리줄기를 말려서 연영초근이라하여 위장약이나 거담제로 쓴다고 하지요. 꽃이 우아하고 탐스럽지만 잎은 독성이 있어서 생으

과거 시험장, 응시생은 놀고 거벽이 대신 짓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15]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지난해 한 은행은 채용비리 의혹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부정채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며 10년 동안 보지 않던 필기시험을 부활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이마저도 관리감독 부실로 부정행위가 잇따랐다는 언론보도입니다. 이런 부정시험이 조선시대 벼슬아치를 뽑던 과거시험에는 더 심했다고 《성종실록》과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 한양의 풍물을 노래한 ‘한양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먼저 과거장에 들어갈 때 예상답안지와 참고서적 등이 들어 있는 책가방 곧 “책행담(冊行擔)”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이는 커닝의 고전적인 방법이지요. 따라서 과거장이 마치 책가게 같았다고 합니다. 또 과거장에 들어가는 사람 중 실제 답안지를 내는 사람은 턱없이 적었는데 예를 들면 정조 24년에 치른 과거는 10만 명 정도가 들어가 답안지는 3만 명만 냈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응시생인 양반집 자제들은 과거장에 여러 명의 조수를 데리고 들어가는데 글을 짓는 “거벽(巨擘)”, 글씨를 써주는 “서수(書手)”가 따라 들어갑니다. 정작 과거를 보는 사람은 손

늙은 시어머니 방에 끝물로 남아 있을 반닫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14]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는 “반닫이”이라 하여 책ㆍ두루마리ㆍ옷ㆍ옷감ㆍ제기(祭器) 따위를 넣어 두는 길고 번듯한 큰 궤짝을 써왔습니다. 이 반닫이는 앞판의 위쪽 반만을 문짝으로 하여 아래로 젖혀 여닫아서 반닫이라 합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문을 앞쪽으로 열고 닫는다 하여 앞닫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반닫이는 오히려 장, 농보다 필수적인 혼수용품이었으며, 그래서 반닫이는 집집마다 한 두 개 정도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소나무, 참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두꺼운 널빤지로 만들어 묵직하게 무쇠 장식을 하였는데, 반닫이는 제기처럼 무거운 내용물을 보관하거나 서책, 귀금속과 같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견고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 두꺼운 판재를 쓰지 않을 수 없었지요. 반닫이 위에는 도자기로 장식하거나 이불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지방에 따라 나누는 반닫이 종류에는 주로 백통과 놋쇠로 조촐하게 장식한 서울반닫이, 대체로 크고 큼직큼직한 쇠장식을 앞면에 가득 대는 평양반닫이, 제비초리(제비꼬리를 닮은 모양) 경첩을 달며, 안쪽 윗부분에 세 개의 서랍이 있는 전주반닫이, 크기가 작으며 쇠장식을 적게 대고 나무의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상도반

세 부처의 모임 “상주 용흥사 괘불”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13]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 보물 제1374호 ‘상주 용흥사 괘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용흥사는 경상북도 상주시 연악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 진감선사(眞鑑禪師) 혜소(慧昭, 774~850)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용흥사에 전해지는 괘불은 세로 10m, 가로 6m가 넘는 큰 그림으로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아미타불의 모임 장면을 묘사한 불화지요. 모임의 주재자는 석가모니부처로, 그의 몸에서 발하는 영롱한 빛은 모임의 시작을 알리는데 약사부처는 질병의 고통이 없는 세상을, 아미타부처는 즐거움만이 가득한 극락세계를 다스리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세 부처에게 살아서는 무병장수하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하기를 비손한 것이지요. 현재 전해지는 괘불 110여 점 가운데 세 부처를 함께 그린 것은 5점만이 남아 있어 <용흥사 괘불>은 매우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상주 용흥사 괘불”은 1684년, 90여 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조성하였습니다. 당시 홍흡(弘洽)스님이 중심이 되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폐허가 된 용흥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괘불을 조성는데 필요한 시주를 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