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50년 전인 1971년 1월 22일 집권 8년 차에 접어들었던 박정희 정권은 부처별 지시사항을 발표했습니다. 50여 개에 달하는 이 지시사항은 경제성장과 국민생활 개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속에는 장기집권에 필요한 국민 감시 규제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지요. 특히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문화 전반에 걸쳐 검열을 주도했는데 박정희는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히피 머리형의 장발족은 국영뿐 아니라 민간 텔레비전 방송에도 절대 출연하지 못하게 하라”고 직접 지시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경찰은 길거리에서 히피 머리형의 장발족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였고, 시민을 마구잡이로 연행해 머리를 깎은 뒤 집으로 돌려보기까지 했지요. 이에 대해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은 “장발 추악한 작폐 등은 사회윤리와 법질서를 문란 시키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쳐 건전한 국민정신을 해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는 아울러 신문ㆍ방송ㆍ영화ㆍ음악ㆍ도서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검열을 강화하도록 하는 ‘자율 규제 강화 방안’을 지시하기까지 합니다. 이후 예술과 국민의 의사 표현에 대한 자유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강화군 교동도 읍내리에 가면 교동향교 옆에 비석(碑石) 40개가 모여 있는 <읍내리 비석군>이 있습니다. 이 비석들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ㆍ도호부사(都護府使)ㆍ삼도수군통어사(三道水軍統禦使)ㆍ부사 등을 지낸 사람들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를 한곳에 모아놓은 것입니다. 원래는 읍내리 교동양조장 부근 비석거리에 있던 것들인데 1991년에 이곳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암행어사,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 공조판서,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박영보(朴永輔)의 ‘휼민선정비’도 있습니다. 실제 어떤 선정비는 벼슬아치들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세워진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만 이 박영보는 조선왕조실록에 54번이나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는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 많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그는 경기감사로 있을 때 부하 벼슬아치가 잘못하자 이에 상관으로서 책임이 있다며, 자신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한 것은 물론 대사헌일 때 임금에게 언로(言路)를 열어 충언을 듣고 검소한 삶을 살아 백성을 사랑할 것을 간언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인 대한(大寒)입니다. 이름으로 보아서는 가장 추운 날이지만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소한 무렵이 대한 때보다 훨씬 추울 때가 많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의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간(新舊間)”에 하지요. 신구간은 대한 뒤 5일에서 입춘 전 3일 동안을 말하는 것인데 이때 모든 신이 염라대왕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기 위해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여도 탈이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에는 이사하는 것은 물론 부엌, 문, 변소, 외양간 고치기, 울타리 돌담고치기, 묘소 고쳐 쌓기 등 다양하지요. 소한부터 대한까지는 한해에 가장 추울 때인데 예전엔 세수하고 잡은 방문 고리에 손가락이 "쩍쩍" 달라붙었습니다. 또 눈 덮여 황량한 겨울 들판엔 칼바람 추위 속에 먹거리도 부족하니 사람도 뭇 짐승도 배곯고 움츠리기는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나 이 만물이 얼어붙어 죽은 듯한 땅에도 저 멀리 봄소식은 오고야 맙니다. 소설가 김영현은 그의 작품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에서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