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윤석열과 김건희 뒤에는 이들의 앞날을 예언해 주는 도사들이 있었다고 하지요? 특히 김건희는 윤석열과 혼인하기 전부터 점술에 취해있었던 것 같습니다. 12.3 불법계엄도 김건희가 날짜를 택했다는 설이 있지요. 주말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면 지역구에 내려가 있는 국회의원들이 많을 거라 그렇게 신속하게 국회에 모이지 못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왜 굳이 화요일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지요. 어떤 이는 명태균이 더 큰 것 터뜨리기 전에 계엄을 선포한 것이라는 설을 얘기하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김건희가 도사들에게 길일을 잡게 한 것이 12월 3일이라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김건희가 점술에 빠져있었다는 얘기를 듣다 보니, 민비와 무당 박창렬이 생각납니다. 임오군란이 터졌을 때, 민비는 충주로 도망갔습니다.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 국망산 아래 이시영의 집에 숨어 살던 민비는 ‘언제나 환궁할 수 있을까?’ 답답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냈겠지요. 이때 알게 된 이가 무당 박창렬입니다. 이름이 남자 같은데 박수가 아닌 무당이니 여자입니다. 박창렬은 일찍 과부가 된 뒤 자신은 관왕(관우)의 신 내린 딸이라며 관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신라의 차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조용히 스며들어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였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몇 개의 또렷한 기록들이 서로 이어지며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렴(大廉)이 당나라에서 돌아오며 차나무 종자를 들여온 사건이다. 《삼국사기》에는 828년, 그가 가져온 차 종자를 임금이 지리산에 심게 했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이 기록은 단순한 수입의 사건이 아니라, 차가 개인의 기호를 넘어 나라 차원의 재배와 보급 단계로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이미 존재하던 차 마시는 풍속이 이때 비로소 뿌리를 내리고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기록 속에 이미 더 오래된 시간을 가리키는 문장이 함께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다”라는 구절이다. 이는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632~647) 시기, 곧 7세기 전반에 이미 차가 신라 사회에 알려지고 보급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 당시의 차가 어느 정도로 퍼져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최소한 왕실이나 불교 문화권을 중심으로 차가 존재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진다. 이렇게 보면 대렴의 사건은 시작이 아니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5살의 조지 포크를 만나 보자. 해군사관학교에 막 들어간 아들에 대해 아버지가 자기 동생(포크의 삼촌)에게 거침없이 자랑하는 편지다. 매우 긴 편지의 손글씨 판독이 썩 어렵다. 오래 뚫어본 결과 거의 완파하였다. 번역문을 여기에 올린다. 1872년 6월 20일 마리에타에서 친애하는 조지 사관생도 조지 클레이턴 포크를 소개하려네. 나는 방금 아나폴리스에서 돌아왔네. 거기에서 녀석이 학교용 군함 산텍호(US S School Ship Santec)에 승선하는 것을 보았네. 이제 그 자초지종의 역사를 기술하려 하네. 5월 초 우리 지역 의회의 의원인 디키(Dickey)가 카운티 신문을 통해 밝혔다네. 곧 랑카스터 지역에서 14살에서 18살 사이의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발시험을 열어 가장 우수한 인재를 한 명 뽑아 해군사관학교 생도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디키 의원은 브룩스 교수, 에반스 교수 그리고 헤이스 판사를 심사 위원으로 임명하고 신체검사는 블랙우드 박사에게 위촉했다네. 이 소식을 나는 아들 녀석에게 알려주면서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지. “아빠, 딱 제게 맞군요, 도전해 보고 싶어요.” 하더라구. 나는 녀석를 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