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앞서 인용한 일본인의 김옥균론에 보이는 오류를 지적해야겠다. 김옥균이 ‘18~19세 무렵 대원군에게 알려져 처음으로 관직에 나아가 진급을 거듭하여 25~26살 때에는 호조판서에 나아갔다.”라는 것은 물론 오류다. “1880년(명치 13년) 불교 연구를 구실삼아 처음으로 일본에 왔다.”도 오류이다. 이는 아마 1879년 일본에 밀입국한 이동인 스님을 착각한 것일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후쿠자와 유기치를 맨 처음 찾아낸 조선인은 이동인이다. 시기는 1880년이었다. 후쿠자와 유기치에 대해 김옥균 등 개화파 동지들에게 맨 처음 알려준 사람도 이동인 스님이었다. 이동인은 1881년 봄 한양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따라서 그와 후쿠자와 유기치의 교류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김옥균과 유기치의 교류는 긴밀하고 깊어졌다. 후쿠자와 유기치와 김옥균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김옥균을 경솔한 친일파로 보는 시각의 근저에는 ‘김옥균이 생각 없이 후쿠자와 유기치에게 조종, 이용당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는 것은 지나치게 일면만을 본 것이 아닌가 한다. 후쿠자와 유기치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 조선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밤새 도둑비가 내렸습니다. 길은 젖었고 하늘은 여전히 흐립니다. 어제보다 포근한 날씨지만 바람은 서늘합니다. 오늘 아침, 추위를 살짝 잊게 할 만큼 뜨거운 기별이 들려왔습니다. 정부가 우리 먹거리인 반도체 산업, 그 가운데에서도 설계를 맡은 분야를 키우려고 무려 700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는다는 것입니다. 온누리에서 으뜸가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야무지고 올찬 앞생각(계획)을 보니, 우리 앞날이 오늘보다 훨씬 넉넉해 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은 ‘가멸다’입니다. ‘가멸다’라는 말, 어딘가 낯설면서도 소리 내어 읽으면 입안에 꽉 차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 말은 ‘재산이나 살림살이가 넉넉하고 많다’는 뜻을 지닌 그림씨(형용사)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부유하다’나 ‘잘산다’는 말과 비슷하지만, 토박이말이 가진 구수하고도 수수한 맛이 살아있는 낱말이지요.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나라와 백성이 잘 살기를 바라는 대목에서 힘 있게 쓰였습니다. 김동인 님의 소설 <운현궁>을 보면 흥선대원군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다짐하는 대목에서 이 말이 나옵니다. "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첫눈이 기상예보대로 왔다. "저녁 6시에 대설경보입니다. 8시까지 5~10센티가 내리는 곳도 있겠습니다." 뭐 이런 내용인데 저녁 6시가 되니 정말 놀랍게도 눈이 내린다. 그것도 싸라기눈이 아니라 작은 아기 주먹만 한 눈송이들이 어깨로, 머리로 내려 곧 행인들을 할아버지로 만든다. 거리에 눈이 쌓이고 차량들이 엉금엉금. 사람들은 조심조심... 도시에는 그렇게 눈이 내렸고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조용히 소복소복 눈이 내렸다. 눈앞의 창틀에서부터 건너편 아파트 집과 창문, 그 옆의 나무들이 차례로 옷을 갈아입는다. 아이들의 놀이터 놀이기구도 눈을 뒤집어쓴다, 올겨울 첫눈으로는 너무도 황공할 정도로 깨끗한 세계를 만들어준다. 모든 먼지를 덮는 것은 물론 세속이익을 위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씻어주고 덮어준다.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敍情詩)는 백설(白雪),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겨울이 익어 가면 최초의 강설(强雪)에 의해서 멀고 먼 동경의 나라는 비로소 도회에까지 고요히 고요히 들어오는 것인데, 눈이 와서 도회가 잠시 문명의 구각(舊殼)을 탈(脫)하고 현란한 백의(白衣)를 갈아입을 때, 눈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