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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곤, 이병우 명인을 만나 국악의 눈을 뜨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67]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우리음악사에서 황금기라고 말하는 세종 세조시대의 음악적 사건들을 알아보았다. 요약하면 아악의 정리, 편종과 편경과 같은 악기의 제작, 조회와 회례, 제례의 음악 제정,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여민락(與民樂), 정대업(定大業)과 보태평(保太平)과 같은 대악의 창작, 그리고 정간(井間)악보 및 오음약보(五音略譜)의 창안과 악보집 간행, 등이 주 내용이다. 또한 세종임금의 음감이 뛰어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라에 변란이 생기면 우물에 편경을 숨겨놓을 정도로 귀중하게 다루었다는 이야기, 세종 이후에도 편경의 제작은 간간히 있었으나 1969년 이후에는 남갑진과 김현곤이 함께 해 오다가 현재는 김현곤 1인에 의해 제작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편종이나 편경을 제작하기 위한 기술복원의 다양한 정보나 각종 기록은 김현곤 명인의 잠재된 능력을 일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제작한 편종과 편경을 1980년대 초부터 국립국악원을 비롯하여 각 대학 국악과나 또는 전문 연주단체에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개인의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이전의 통설을 깨고 국내 유일의 편종과 편경의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명인이 된 것이다. 과

5월 15일은 교토의 대축제 ‘아오이마츠리’날

[맛있는 일본이야기 442]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은 마츠리의 나라라고 일컬어질 만큼 전국적으로 마츠리(축제)가 쉴 새 없이 열린다. 그 가운데서도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 아오이마츠리, 7월17일 기온마츠리, 10월 22일 지다이마츠리가 대표적이다. 초록이 눈부신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는 고대 한국과 관련이 있는 하타씨 일족과 관계가 깊은 가모씨(賀茂氏)와 조정(朝廷)의 행사로 당시 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주류는 귀족들이라 귀족 마츠리라고도 불렸으며 한편으로는 가모신사의 마츠리라해서 가모마츠리(賀茂祭)로도 불렀다. 《가모신사유래기》에 기록된 아오이마츠리 유래를 보면 6세기 무렵 긴메이왕 시절에 일본 전역에 풍수해가 심각하여 점쟁이에게 점을 쳐보니 가모대신(賀茂大神)이 노한 것으로 나왔다. 점괘가 나오면 해결 방법도 나오는 법으로 점쟁이인 우라베(卜部伊吉若日子)의 해결 방법은 튼실한 말을 골라 방울을 잔뜩 달고 기수는 얼굴에 동물 가면을 쓰고 가모신사 주변을 돌면서 성대한 제사(마츠리)의식을 행하면 풍수해를 잠재울 수 있다고 하는데서 마츠리가 시작되었다. 일본의 마츠리는 대부분이 고대에 기원을 둔 것으로 풍수재해 예방, 전염병 확산 금지,

변란이 생기면 우물에 ‘편경’을 숨겼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66]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편경을 소홀히 다루거나 잘 못해서 깨뜨리게 되면, 곤장 백대의 중벌이 내려진다는 이야기와 함께 조선조 세종 이전에 국내에서는 편경을 만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와경(瓦磬)으로 대체하여 썼지만 와경은 울림이 짧고 맑지 못해서 경돌처럼 매끄럽고 고운 소리를 낼 수 없었다는 점, 세종 7년(1425), 경기도 수원 남쪽의 남양에서 경석이 발견되어 편경을 제작하였다는 이야기, 편경은 춥거나 덥거나 기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에 여러 악기의 조율시, 표준악기로 삼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국은 12매나 32매의 편경도 있고, 크기에 따라 높낮이를 결정하지만 우리는 16매 모두가 크기가 같고 두께에 따라 높낮이가 결정된다는 이야기, 경석 발견 뒤 5년 동안 편경 33틀을 제작하였고 여기에 130여명의 장인들이 참여하였다는 이야기, 현대에 와서는 김현곤 명인이 편종이나 편경을 혼자 제작하고 있으며 그 배경도 단절된 제작기술을 복원시킬 수 있도록 갖가지 정보와 기록이 밑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편종과 편경의 제작이 우리 음악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나 하는 점을 살

편경을 깨뜨리면, 곤장 백대를 맞았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65]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편종과 편경의 외형 모습이 비슷해 보이지만, 편종은 목사자, 편경은 백아(白鵝), 곧 흰거위를 받침대로 쓰는데 그 이유는 편종 소리는 웅장하고, 편경은 청아한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란 점, 또한 편종의 틀이 용머리인데 비하여 편경은 봉황의 머리를 조각해서 쓴다는 점, 편경은 경석 끝부분인 고(鼓)를 가볍게 쳐야 맑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외부 침략이나 내란, 또는 관리소홀 등으로 파손되면 스스로 제작이 어려워 명(明)나라로부터 사오다가 조선조 세종 때부터는 국내에서 직접 편종과 편경을 제작, 사용해 왔다는 점, 또한 편종은 주종소(鑄鐘所)를 설치하여 국내 생산이 가능했다는 점, 그러나 편경의 경우에는 그 재료인 단단한 옥석을 구하는 일이 어려웠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조선조 세종 이전에 국내에서 편경을 제작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도 그 까닭은 편경의 재료인 경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에 가서 직접 사 온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에서 구해오는 과정도 여의치 못할 경우, 기와를 구워서 만든 와경(瓦磬)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이때 편경의 귀중함을 나타내는 단적인 말이 전해

편종에는 용머리, 편경에는 봉황머리 조각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64]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편종과 편경이 12율(음)형태와 16율(음)형태의 두 가지였으나 후대에 12율 형태는 없어지고, 16율 형태가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 상하 2단 틀에다 8개씩 16개의 종이나 경을 음높이의 순서대로 매달아 놓았으며 중국의 편종은 크기에 따라 음높이가 결정되는 것에 반하여, 한국의 편종은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두께에 의해 음정의 구별이 생긴다는 이야기, 편종이나 편경에서 제일 낮은 음이 황종(黃鐘)이고, 위치는 오른쪽 아랫단에 걸려 있으며 그로부터 왼쪽으로 반음씩 높은 종이 걸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편종을 연주할 때에는 아랫부분 가운데에 돌출된 수(隧)를 정확하게 쳐야 특유의 음색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 예전 악사들은 눈을 감고 쳐도 16개 종의 수 부분을 정확하게 쳤다는 이야기, 얼핏 보면 편종과 편경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편종은 목사자를 받침대로 쓰는데 견주어 편경은 백아(白鵝), 곧 흰거위를 받침대로 쓴다. 이는 편종 소리가 웅장하기 때문이고, 편경은 그 소리가 청아한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또 다른 점들이 있다. 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