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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백성의 경험방과 사대부의 집단지성 활용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24 (사맛의 길)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살아있는 지혜를 중히 여긴다

사맛[소통]은 현장의 소리를 잘 듣는 데서 출발

 

사맛은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마지막에는 사상도 교환하게 된다. 사상은 지식과 지혜로 구성되고 이런 사맛은 개인이 스스로 대화하는 곧 생각하는 활동까지를 포함한다. 안다는 것에는 지식과 지혜가 있다. 세종조 당시 사대부는 지식인으로 문자를 알기에 경전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익히고 이를 논리화 하고 현실 실천으로 옮기려 한다.

 

지혜는 인간 본연의 앎에 대한 반응으로 실생활 현장의 노인, 기술자들이 경험을 통해 얻는 경우가 많다. 생활 속의 경험을 통한 발견이 지혜로 쌓이게 되는데 이를 세종시대에는 ‘경험방’이라고 불렀다. 전국 각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여러 생활 현장에서 얻는 ‘생업의 앎[정보]’으로서 바로 삶의 지식이다. 이는 경험적 지식이기도 하고 스스로 깨우쳤기 때문에 지혜의 측면도 있다.

 

경험적 지식에는 의방 · 경험방 등이 있다

 

경험적 지식으로 세종 시대 세종실록에 ‘의방’이나 ‘경험방’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ㆍ의방 : “임금이 말하기를, 의술은 인명을 치료하므로 관계되는 것이 가볍지 않으나, 그러나 그 심오하고 세밀한 것을 아는 자가 적다. 판사 노중례의 뒤를 계승할 사람이 없을까 염려되니, 나이 젊고 총명 민첩한 자를 뽑아서 의방(醫方)을 전하여 익히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22/6/25)

 

ㆍ경험방 : “호조에 전지하기를, 각도에 공문을 내어 메밀을 경작하게 하되, 《농상집요(農桑輯要)》ㆍ《사시찬요(四時纂要)》 및 본국(本國)의 경험방(經驗方)으로 시기에 따라 경작할 것을 권면시키라, 하였다.”(《세종실록》 5/6/1)

 

세종은 이런 현장에서의 경험적 지식을 중하게 여겨 농사짓는 노인에게 물어 이를 정리하여 농사책으로 만들었다. 실록 속의 기사를 보자.

 

ㆍ문어농부(問於農夫): “영서 땅은 원래는 비옥한 땅인데, 곽존중(조선 전기 문신)이 메마르다고 대답한 것은 그릇된 것이다. 이날 행차에 오로지 내금위 사금만 거느리고 양산이나 부채는 쓰지 않았다. 벼가 잘되지 못한 곳을 보면, 반드시 말을 멈추고 농부에게 까닭을 물었다.‘ 점심을 들지 않고 돌아왔다.” (《세종실록》 7/7/1)

 

ㆍ노농에게 물어 : “평안도ㆍ함길도는 농사에 몹시 서툴러 땅의 생산력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 가히 행할 만한 농사법을 골라, 그들로 하여금 배워 익히고자 하니, 무릇 오곡이 토양의 성질에 적합함과, 갈고 씨뿌리고, 김매고 거두는 법과, 잡곡을 번갈아 심는 방법을 모두 ‘각 고을 늙은 농부들을 찾아 물어서’ 요점을 모아 책을 만들어 올리도록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10/7/13)

 

일선 현장의 힘

 

조선 초기의 경험에서 얻는 지식 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농사법은 농부들이 알고 있을 것으로 특히 지역마다 풍토가 다르니 오랜 농사를 지은 노인들이 그 지역의 농사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약초는 그 지방의 나이든 사람들이, 배는 바닷가 사람이 그리고 많은 공산품들은 그 직종의 종사자들이 전문가일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런 산업적 기술이 관이 아닌 이상 민간에서는 자료로 정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대부가 아닌 직업의 종사자들은 오랜 경험자의 ‘경험방’[경험적 지식]이 곧 그 시대의 기술 맨 앞에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살아 있는 지식 곧 지혜는 경험의 산물이며, 마음으로도 동의하는 삶 속의 산물이다. 그리고 때로 서툴러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문서로 전해지는 지식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사대부 지혜의 구조

 

 

경험방과 달리 한문 중심의 자료에 근거한 사대부 정치는 전적으로 경(經)이나 전(典/傳)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지식은 이후 토론 등을 통해 상정소나 집현전에서 집단 지성의 모습을 보인다.

 

문서 중심의 지혜는 지식 - 지성 - 집단 지성의 구조를 이루어 간다. 세종시대 지식이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가를 경복궁 내 정치를 이루는 기관의 배치와 구조를 통해 살펴보자. 경복궁은 들어서서 앞에 근정전이 자리 잡고 그 뒤로 사정전 그리고 그 왼쪽으로 집현전이 배치되어 있다.

 

 

생각하는 임금이라면 그 구도를 궁 안에서 나라 전체로 확대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의 여러 종류의 해시계 제작, 음악 작곡, 금속활자 제조, 훈민정음 문자 창제는 그런 확장의 도구가 될 것이다.

 

세종의 정치는 우리말 표현으로 ‘말’을 하고 그 말대로 ‘일’을 펼치고 그 바탕에 ‘글’로 나타나는 ‘사상’이 밑받침 되는데 이 글-일-말의 구조는 앞에서 보았듯 경복궁 내 주요 건물의 구도와 부합되는 셈이다. 위 그림을 다시 한 번 보자.

 

 

세종 시대에는 백성의 산 지식인 ‘경험방’을 모아 이를 책으로 정리하여 전국의 백성에게 알리고, 사대부 정치에서는 지식을 모아 집단지성으로 키워나간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