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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벡 족이 사는 땅

식당 화장실, 마르린 먼로의 아찔한 사진이 있었다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우즈베키스탄 나라 이름의 끝 글자 글자 스탄은 페르시아어로 ‘땅’이라는 뜻으로 민족 이름 뒤에 붙여 그 민족의 영토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벡 족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은 모두 이슬람교를 믿으며 터키어 계통의 말을 쓰고 있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탄자로 끝나는 나라들의 인구와 면적을 비교하는 표를 다음과 같이 만들어 보았다.

 

 

위 표를 보고서 나는 카자흐스탄이 인구는 많지 않은데 면적은 남한보다 27배나 넓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작아서 살기 좋은 나라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사업가인 나의 친구는 위 표를 보고서 파키스탄의 인구가 2억 명이나 되기 때문에 사업하려면 파키스탄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였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누구나 자기의 관점에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데 인구가 300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이다. 타슈켄트라는 이름은 투르크어로 ‘돌(Tosh)의 도시(Kent)’라는 뜻이다. 중국 사람들은 타슈켄트에 있는 부족 국가를 석국(石國)이라고 불렀다. 타쉬켄트는 큰 도시로서 구소련 시절에는 모스크바, 기에프, 민스크와 함께 소련의 4대 도시로 손꼽혔다. 현재의 타슈켄트는 1966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이후에 다시 건설한 도시이다. 신도시답게 건물은 깨끗하고 도로는 잘 정비되었다. 차선을 세어보니 간선 도로는 왕복 10차선이나 되고, 그밖에 지선도로도 8차선도로 6차선도로가 많이 보였다.

 

타쉬켄트는 한국과 두 가지 점에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첫째로, 서기 750년 고구려 유민 출신 당나라 장수인 고선지 장군이 당시 석국으로 불리던 도시 국가인 타쉬켄트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고선지 장군은 험준한 파미르 고원을 넘어 타쉬켄트를 공격하였는데, 석국의 모든 집과 건물을 파괴하고 임금을 사로잡아 장안으로 압송한 뒤에 죽였다고 한다.

 

둘째로, 1937년에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17만 명의 고려인들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였다.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아직도 타쉬켄트 근처에 많이 살고 있다. 특히 타쉬켄트 근교에 있는 아리랑 요양원에는 고려인 2세들이 살고 있다. 아리랑 요양원 방문은 이번 여행 일정에도 포함되어 있다.

 

 

7/16 (화)

 

아침 식사를 간단히 숙소에서 해결한 뒤에 우리는 가까운 기차역으로 갔다. 내일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로 가는 왕복 기차표를 예약하고 나서 우리는 ‘김병화 박물관’까지 21km를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결정했다기보다는 순례단장인 병산이 결정을 했고, 나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김병화(1905~1974)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전설과 같은 고려인이다. 1905년 연해주에서 태어나서 공산주의 활동을 한 김병화는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김병화는 잠간 동안의 소련군 복무를 마치고 타쉬켄트 근처 집단 농장의 농장장으로 근무하였다. 김병화는 지도력이 있고 경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나 보다. 1940년부터 35년 동안 고려인 집단 농장을 최우수 농장으로 만들었으며 뛰어난 생산 능력을 인정받아 소련 당국으로부터 두 차례나 ‘노력 영웅’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기차역에서 출발하여 병산이 앞장서고 나는 5m 뒤에서 걸었다. 조금 걷자 기온이 오르며 공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평창 시골집에서도 매일 아침 1시간씩 걷는 나는 20km 쯤 걷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시간 쯤 걸은 뒤에 우리는 가게에 들러 생수를 두 병 주문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이 어딘가에 손말틀(휴대폰)로 전화를 하더니 한국 사람이라면서 손말틀을 병산에게 바꿔 준다. 통화를 한 사람은 가게 주인의 친구로서 고려인 3세라고 한다. 고려인 3세는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도와줄 일이 있으면 자기가 지금 이쪽으로 오겠노라고 말했다. 매우 친절한 제안이었지만 갈 길이 바쁜 병산은 그의 친절한 마음만 받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게 주인은 병산에게서 실크로드 순례에 대해서 설명을 듣자 감동을 받았나 보다. 생수 값을 받지 않겠단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우즈벡 식으로 인사를 했다. 우즈벡 인사는 약간 고개를 숙이며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에 대는 방식이다. 우리는 다시 출발을 했다. 편도 3차선 도로는 차량 통행이 많아 시끄러웠다. 길 가장자리로 걸어가는데 인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위험하기도 했다. 조금 가다가 돔 모양의 전형적인 이슬람 사원을 만났다. 들어가지는 않고 사진만 찍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 국가라서 곳곳에 사원이 많다.

 

 

다시 한 시간 쯤 걸은 뒤에 땀을 뻘뻘 흘리는 병산은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소음(小陰) 체질인 나는 땀을 잘 흘리지 않는 편인데도 날씨가 더워서 속옷이 흠뻑 젖었다. 기온이 체온을 넘는 듯 몹시 더운 날씨였다. 병산이 손말틀의 구글 지도를 이용하여 가까이에 있는 한국 식당을 찾아내었다.

 

우리는 그럴듯한 간판이 붙어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에어콘이 설치된 식당은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메뉴는 한국 음식이 나오는데 식당 주인은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병산은 김치찌개 2인분과 두부제육복음을 주문하였다. 하얀 쌀밥이 따라 나왔다. 우리 돈으로 2만원이 채 안 되는 값이니 물가가 한국보다 싼 것은 분명하다.

 

한식을 맛있게 먹고 식당을 나오기 전에 나는 잠간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소변기 위쪽에는 마르린 먼로의 아찔한 사진이 붙어있었다. 여기가 이슬람 국가 맞아? 나는 이슬람 국가 국민들은 매우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며 술을 먹지 않고 또 여자들은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다고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알았나보다. 손말틀로 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두 시간을 걸으면서 거리에서 수많은 여자들을 보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은 열 명에 한 명 정도나 될까? 젊은 여성들은 한국에서와 똑같이 짧은 바지를 입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위에 입은 옷도 노출이 심한 정도는 한국과 거의 똑같았다. 자세히 보니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들은 대개는 나이가 든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었다.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에도 세속화의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