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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제사상 차림을 들고 30리길을

60여 년 선산을 지켜 엄마
[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24]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선산이란 곧 우리 선조들의 넋이 주무시는 곳이란다. 우리 백의민족의 넋도 장백산 높은 봉에서 늘 아래를 굽어보며 민족의 번영창성을 기원하고 있단다.

 

력래로 사람들은 어느 집 가문이 잘되면 “선산을 잘 썼겠다.”라고 잘 안되면 “선산을 잘못 썼는가? 선산에 가서 제를 잘 지내라.”고 하는 소리 가끔씩 들리지. 그래서인지 우리 백의민족은 선산을 잘 모시고 제사상 잘 갖추는 것을 한낱 례의로 문화전통으로 전해지고 있지.

 

엄마는 16살에 큰집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늘 알뜰살뜰 제사상을 준비하여 80살까지 60여 년 동안 한해라도 빠짐없이 선산에 다녀오셨단다. 1946년 10월 아버지가 저세상 가신 뒤에도 우리들을 데리고 10상이나 되는 선산들에 일일이 제사상 올리시었지.

 

1958년 자식들의 공부를 위해 고향을 떠나 연길시에 이주 했어도 선산을 모시는 엄마의 정성은 여전했었단다. 엄마는 제사상 차림을 들고 버스도 없는 30리길을 걸어 고향마을의 어느 집에 미리 맡겨두었던 낫과 삽을 이용하여 선산들을 일일이 보살피시고 술향기, 미나리향기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으셨단다. 그리고 물고기는 제사상의 어느 자리에 놓아야하고 후토로부터 제사상 올리심을 잊지 않으셨지. 그때는 국가휴식일도 아니어서 엄마는 늘 혼자 다닐 때가 많았단다. 간혹 일요일이면 나도 같이 갔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제사상 준비하여 30여리 걸었어도 엄마는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오늘은 정말 좋구나! 너 아버지 반가워하시겠다." 그리곤 힘겹게 10상의 분묘를 벌초하시느라 땀동이* 흘렸어도 마냥 즐거워하시었단다. 어찌 그뿐이겠니? 삼촌네가 이사해 가시면서 둘째오빠에게 제사지내는 글- 지방 쓰는 법을 배워주고 간 뒤에도 삼촌네와 같이 지내던 제사법대로 오빠가 쓴 지방을 놓고 집에서 제사를 지냈단다. 집엔 시계도 없었지만 밖에 나가 칠성별을 보곤 아버지의 제사- 꼬부랑제를 지냈단다. 그러던 몇 해 뒤에 둘째오빠가 대학교로 떠나게 되었지.

 

오빠가 떠나면서 당황히 “엄마, 나 지방 안 써놓아 어찌지? 아버지 제사 이후 어떻게 지내요?”하였단다. 엄마는 그냥 한숨 한번 쉬더니 “그냥 가거라. 우리도 혁명하자. 아버지도 이해하겠지. 마음속으로 지내야지……”

 

오빠를 그냥 떠나보낸 뒤 엄마와 나는 밤 제사를 못 지내였단다.

 

“지방도 못썼는데 아버지가 이 집을 어떻게 찾는가?”고 한숨만 쉬더구나! 그때 내가 지방 쓰는 법 안 배워둔 것이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러나 엄마의 고향선산을 지킴을 여전하였단다. 선산을 지켜가는 엄마는 우리의 본보기로 되었으며 가정역사를 알게 하였고 어른을 존중하는 례의범절을 가르쳐 주시였단다. 엄마는 여든 살까지 선산으로 다니다가 94살에 세상을 하직하셨단다.

 

엄마가 저 하늘나라로 가신 뒤에는 7대 장손인 큰 오빠가 엄마가 하시던 대로 11상의 선산을 지켰었다. 지금은 또 큰오빠마저 암으로 저 세상 가시고보니 8대장손인 큰조카 길수가 자기 아버지 고려함까지 모시고 있단다. 나는 사촌이상 오빠와 토론하고 할아버지네 분묘 제사를 끝맺기로 하였지. 한가위 때 점심시간이었단다. 우리는 “할아버지네들 모두 오십시오.”하고 할아버지를 비롯해 모두 모셔 술 한 잔 나누시면서 사방에 술향기를 뿌려 보내면서 서러워 말 것을 약속하였단다.

 

나의 아버지도 고향 뒷산에 작은 언덕으로 누워 계신지 72년이 된단다. 이젠 엄마도 작은 언덕으로 그 옆에 계셔서 아버진 외롭지는 않겠지만 나는 자식으로서 또 조카와 함께 그 선산를 지켜가고 있단다. 그래도 선산에 가면 불러보지도 못 했던 아버지도 불러보고 엄마가 나를 반겨주는 듯도 하여 어쩐지 마음이 편안하구나! 옛날 엄마는 산소에 다녀오면 “남편한테 다녀왔소……”라고 다른 사람들과 말하던 것처럼 나는 또 산소로 갈 때면 고향집에 가는 듯 하고 엄마가 거기서 나를 반겨 주리라는 느낌이지. 아마도 엄마는 이런 나의 마음 알아주고 멀리 달려와서 나와 같이 있어주는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발전하여 고향면모도 변해가고 일떠서 가고 있는 공장들로 하여 고향은 성시로 변해가고 있구나! 오래지 않아 고향 뒷산에 작은 언덕으로 누워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도 이젠 더 멀리 만리창공을 날아 구중천에 이주해야 할 때도 오래지 않은 것 같구나! 그때엔 아마 구중천을 향해 술향기 올리시며 선친들의 령혼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선산을 잘 모심은 우리민족의 전통이고 백의민족의 미덕이다. 엄마는 비록 저 멀리 구중천에 이사갔다하였어도 늘 나의 마음속에서 횃불 들고 나의 길을 밝혀주고 있단다.

 

 

<낱말풀이>

* 력래 : 예부터

* 후토로부터 : 대가족의 여러 묘지에서 제일 웃 어르신의 묘지 위쪽에 가문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자리

* 땀동이 : ‘동이’는 물동이. 따라서 ‘땀동이’는 땀을 많이 흘리는 것

* 꼬부랑제 : 새벽 첫닭이 울 때 곧 0시에 집에서 지내던 제사

* 일떠서 ; 한꺼번에 많이 일어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