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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이슬람 여성의 옷, 부르카ㆍ차도르ㆍ니캅ㆍ히잡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건축물, ‘비비하눔 모스크’ 이야기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이슬람 세계의 보석으로 불리는 푸른 도시 사마르칸트에는 티무르와 관련된 유물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중앙아시아 최대 사원이라는 비비하눔 모스크다. 비비하눔은 9명의 왕비 가운데 티무르가 가장 사랑했던 왕비의 이름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 아름다운 모스크를 방문하지는 못하고 다만 인터넷을 검색하여 이 모스크에 관해서 알아보았다.

 

1398년 인도 원정에서 돌아온 티무르는 비비하눔을 위해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모스크를 짓겠다고 결심했다.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제국의 각지에서 200여 명의 장인과 500여 명의 노동자를 뽑고, 대리석 운반을 위해 인도에서 코끼리 95마리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현장에 나가 작업을 독려하고, 음식물을 제공하며, 주화로 포상하는 등 모스크 건립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았다.

 

그 결과 비비하눔 모스크는 높이 35m에 달하는 에메랄드빛 돔과 직경 18m의 아치형 정문, 50m 높이의 미나레트 그리고 400개의 대리석 기둥이 떠받치는 둥근 천장 갤러리를 가진 화려한 모습으로 조성됐다. 실내 또한 아름다운 대리석과 다양한 형태의 모자이크 테라코타 등으로 장식되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한 역사가는 “모스크의 돔은 마치 하늘을 보는 것 같고, 모스크의 아치는 마치 은하수를 보는 것 같다.”라고 기록했다. 1404년 사마르칸트를 방문한 스페인의 외교사절 루이 곤잘레스는 ‘비비하눔 모스크는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건축물’이라고 극찬했다.

 

 

비비하눔 모스크를 세상에 더욱 널리 알린 것은 ‘운명의 키스’ 이야기다. 비비하눔은 이집트에 출정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모스크가 완성되기를 바랐다. 모든 공정이 순조롭게 마쳤지만, 아치 하나만 미완으로 남아 있었다. 모스크 건립에 동원된 페르시아 출신의 젊은 건축가는 비비하눔을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때마침 이집트 원정에 나갔던 티무르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거라는 전갈이 왔다. 초초해진 왕비가 공사를 다그쳤지만, 진전이 없었다.

 

왕비를 흠모하던 건축가는 공사 완공을 조건으로 왕비에게 한 번의 키스를 요구했다. 비비하눔은 푸른색이 나는 물과 투명한 물이 담긴 잔을 주며 건축가에게 마시게 했다. “물의 색깔은 달라도 맛은 모두 같다.”라며 자신을 뺀 누구와의 키스도 허용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건축가는 두 잔의 맑은 물을 비비하눔에게 보여 주며 마시게 했다. “보기에는 모두 맑은 물이지만 하나는 설탕물이고 하나는 맹물입니다. 외형이 같다고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비비하눔은 아무도 모르게 볼 키스를 허락했지만 왕비의 볼에는 반점 자국이 남고 말았다. 원정에서 돌아온 티무르는 이 반점을 보고 왕비를 추궁해 사실을 알아내었고, 불같이 노하여 건축가를 사형에 처했다. 비비하눔 또한 미나레트 꼭대기에서 땅으로 던져 죽이는 형벌에 처했다. 한 여인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가 완성되었을 때, 그 여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티무르는 제국의 모든 여성에게 천으로 얼굴을 가리도록 명령을 내렸다. 비비하눔 모스크 맞은편에는 비비하눔 왕비의 영묘가 자리잡고 있다. 가장 사랑했던 비비하눔을 처형하고 괴로워하던 티무르가 그녀를 잊지 못해 만든 묘지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전설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슬람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는 히잡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히잡은 ‘가리다’는 뜻을 가진 아랍어 동사 ‘hajaba’에서 유래하였다. 히잡 착용의 관습은 아랍 세계에서 이슬람 이전 시대부터 존재해 왔다. 전통적으로 아랍 여성들은 베일을 쓰지 않은 채로는 거리에 나서지 않는다. 집에서도 가까운 친척들 앞에서만 베일을 벗을 수 있고 남성이 있을 때‘는 절대 벗지 않는다. 이슬람에서는 여자가 결혼했거나 성숙하면 (일반적으로 초경 후) 부모가 히잡을 만들어 신체를 가려주게 된다. 여성의 의복에 관한 사항은 코란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코란 24장 31절: 밖으로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된다. 곧, 가슴을 가리는 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의 부모, 자기 부모, 자기 자식, 자기의 형제, 형제의 자식, 소유하고 있는 하녀, 성욕을 갖지 못하는 하인, 그리고 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이외의 자에게는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교리에 따라서 여성의 옷은 온몸을 덮어 가족 이외의 사람들로부터 신체와 장신구들을 가리기 위한 쓰임으로 발전하였다. 수영장에서도 여자들은 히잡을 쓰고 수영한다. 그러나 아홉 살 이하의 어린 소녀들은 베일을 쓰지 않고도 지내며 여성들도 아주 어린 소년이나 나이 많은 남성들 앞에서는 베일 쓰는 것이 완화된다. 여성의 몸을 가리는 베일은 노출의 정도에 따라 네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가리는 정도가 심한 순서는 부르카>니캅>차도르>히잡 순서이다. 서구적 관점에서 히잡의 착용을 여성의 신체 자유의 제약으로 해석하기도 하나 이것은 이슬람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히잡은 여성의 종속보다는 탐욕스러운 시선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원래 상류 계층의 여자들만이 지위의 상징으로 히잡을 쓸 수 있었다. 내가 히잡과 관련하여 궁금했던 질문은 “부르카를 뒤집어쓴 여자가 젊은 여자인지 늙은 여자인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이었다. 이슬람 남성들은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의 드러난 팔목의 노화(老化) 정도와 걸음걸이를 보고서 여성의 나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서구의 영향으로 20세기 초반부터 많은 이슬람 여성들이 답답한 히잡을 벗어 던졌다. 뜨거운 사막 기후에서 히잡을 쓰면 아무래도 불편할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히잡은 긴 드레스, 혹은 소매 긴 불라우스와 긴 치마, 그리고 색깔 있는 머리 덮개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수많은 지식층 여성들과 직업을 가진 여성들에게서 광범위한 호응을 얻었다.

 

이슬람 국가들에서 유럽 국가로 노동자와 이민자가 늘어나자 히잡을 두고서 문화 간 갈등이 생겼다. 2004년에 프랑스 의회에서는 공립학교와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는 것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동시에 가톨릭 신자는 커다란 십자가를 목에 걸지 못하고 유대교 신자는 키파를 쓴 채로 등교할 수 없도록 했다. 학교나 공공장소를 모든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입법 취지이었다.

 

이어서 2011년에는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나 니캅 등 얼굴을 가리는 베일의 착용이 금지되었다. 부르카 금지의 가장 큰 이유는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의 특성상 입은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고, 무기 소지 여부를 알기 어려워 테러 위험에 대처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6년 칸과 니스 등 프랑스 30여 개 도시에서는 해변에서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했다. 부르키니는 '부르카(Burqa)'와 '비키니(Bikini)’의 합성어로 이슬람 여성이 입는 전신 수영복이다. 부르카와 달리 부르키니는 얼굴을 드러내 신원 확인이 어렵지 않으며 몸에 딱 붙는 형태라 무기 등을 숨기기도 힘들다. 따라서 부르키니 금지는 반이슬람 정서에 따른 인종차별이라며 이를 철회해야 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슬람이 세속화되면서 많은 젊은 여성들은 히잡을 두르지 않고 거리를 활보한다. 히잡 입는 것이 의무가 아니고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처럼 자국 여성은 물론 외국 여성들까지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한다는 규정을 가진 나라도 있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히잡에 대한 강제성이 약화하여 가고 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 중에 보니 나이 많은 이슬람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하지만 젊은 여성 중에서는 히잡을 쓴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하였다. 이슬람 세계에서 아마도 한 세대가 가기 전에 히잡은 사라지지 않을까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