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삼국시대 신라에서 당나라 산동반도로 가기에 가장 가까운 곳 가운데 하나였던 항구가 당진이다. 당진이란 지명은 당나라로 가는 나룻터라는 뜻으로 당시로는 매우 큰 항구도시였다. 따라서 망망대해 바다를 건너는 것은 늘 험난한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늘 무사히 건너기를 기원하였다. 따라서 당진항으로 가는 길목에는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목에 뱃길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한 절을 세우고, 부처님께 기도하는 일이 반드시 해야할 일이었다. 그렇게 세워진 절이 안국사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절이 없어지고 석불만이 남아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 절이 없어진 터에 스님들이 다시 찾아와 석불 주변을 꽃밭으로 만드는 작업을 정성껏 하였고, 이제는 석불 주변이 온통 꽃밭으로 바뀌었다. 스님들은 석불 앞마당과 주변 언덕을 온통 각종 야생화들로 가득 채워서 봄부터 가을까지 안국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석불의 앞을 꽃의 화엄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석불만 우뚝 서있을 때에는 황량한 언덕이 너무도 쓸쓸하였었는데, 꽃으로 변한 안국사는 그 어느 절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당진은 오래된 고찰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옛 당진의 영화를 그려볼 수 있는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금릉해변 돌담에 피어난 '송악' 비양도 너머로 해가 몸을 낮추면 금릉의 바다는 은빛 비늘을 털어내고 즈믄 해를 견딘 검은 현무암 돌담 위로 초록의 파도가 다시 일렁인다. 뿌리 내릴 흙 한 줌 없는 마른 돌 틈에 가녀린 손가락을 집어넣고 거친 바닷바람이 뺨을 때릴 때마다 더 짙은 초록으로 몸을 불린다. 사람들은 너를 두고 기어가는 식물이라 하지만 너는 바위를 끌어안고 일어서는 자, 모진 염분과 뙤약볕을 제 안으로 삭여내어 기어이 돌담 끝에 고요한 깃발을 꽂는다. 파도는 밀려왔다 이내 돌아가지만 너는 한 번 잡은 인연의 손을 놓지 않고 겨울에도 죽지 않는 상록의 마음으로 차가운 돌의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오늘도 금릉의 돌담은 너와 함께 숨을 쉬고 뿌리 깊은 집념은 잎사귀마다 반짝이며 세상의 모든 벽은 기어오를 수 있는 길이 된다고 바다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다. -한꽃 시, 금릉해변 돌담에 피어난 '송악' -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 땅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진 이래 한국은 생명존중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생명있는 존재는 인식의 정도에 따라 값어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값어치가 있으며, 현재의 위치에서 비록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다 할 지라도, 생명있는 모든 존재는 언젠가 깨달음을 얻어 성불할 수있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며, 그 때까지 중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스스로 부처가 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수행하고 정진해야 하며,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언젠가 깨달음을 얻으면 온세상이 부처님나라가 될 것이므로 자신과 다른사람을 위하여 공덕을 쌓는 생활을 하고, 그런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면서 살아가길 가르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불기(佛紀)는 부처님의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정한다. 올해는 불기 2570년인데 이는 석가모니가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석가모니는 80살까지 살았으므로 역사적으로 석가모니가 태어난 때는 2650년 전이다. 인도의 작은 왕국 카필라국에서 왕자로 태어나 왕좌를 버리고 세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