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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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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벽송사 삼층석탑(보물 제474호)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4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 - 이 달 균 기실 나무는 탑이 되고 싶었고 탑은 한 그루 나무이고 싶었다 널 보며 또 다른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키 세워 더 멀리 보면 무엇이 보일까 차라리 눈을 감아라 심안(心眼)마저 꺼버려라 벽송사(경남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는 혼자 가도 좋고 일행과 함께여도 좋다. 요즘은 제법 알려진 탓으로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기지 않아 고즈넉함은 덜 하다. 하지만 함양이야 어느 곳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곳이 아닌가. 개평마을이 그렇고 상림숲이 또한 그렇다. 오도재 지리산 제일관문을 지나면 마천면이다. 그렇게 벽송사에 닿는다. 벽송사는 조선 중종 때(1520년) 벽송 지엄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사찰이라 한다. 경내를 걷다가 “정진 중, 출입금지”라고 기와에 쓴 분필글씨를 보았다. 이 글을 보니 진정 “절 답다!”는 생각이 든다. 절은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정진하고 수행하는 도량임을 새삼 깨닫는다. 삼층석탑에 키를 맞추는 소나무는 굽어져 굄목이 고개를 받히고 있다. 나무의 끝가지는 탑을 향하고 있는데 탑은 짐짓 못 본 척 시침을

진주 묘엄사터 삼층석탑(보물 제379호)

석탑, 덕천강 윤슬에 몸을 담글까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4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진주 묘엄사터 삼층석탑 이 달 균 사람들아 제발 날 찾아오지 마시게 허허 내게 날개가 없는 줄 아시는가? 방금도 남해에 갔다가 덕천강에도 갔던걸 묘엄사터(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 447-1)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시원하다. 이곳은 서부경남을 대표하는 큰 인공호수인 진양호와 가깝다. 근처 마을들은 수몰되어 사라진 고향의 아픔을 함께한 기억도 있다. 진양호는 덕천강물을 가두었는데, 이로 인해 남강 주변의 물난리를 다스렸다. 가까운 곳에 대평마을이 있는데 풍부한 물이 있어 큰 들이 형성된 까닭이기도 하다. 부처님 세상은 이렇듯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이런 곳에 석탑이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열 채쯤 되어 보이는 집들 사이로 삼층탑(보물 제379호)이 보인다. 이 탑은 고려 시대 화강암으로 만든 것으로 높이는 4.6m이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석탑 1층에는 빛바랜 염주가 햇살에 익어간다. 주위에는 주춧돌과 석주, 부도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팔각형의 석재가 흩어져 있어 사각사각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대부분 석탑이 그렇듯 이 탑의 상륜부도 없어진 상태다. 하지만 뿌리 박혀 있다고 날개가 없을까. 우리들 몰래 남해바다에

양양 낙산사 7층 석탑(보물 제499호)

죽음이 영생(永生)의 문(門)임을 깨우쳐 주었다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4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양양 낙산사 7층 석탑 시인 이 달 균 미친 듯 불기둥이 천지를 덮쳐왔다 훌훌 잿더미를 홀로 걸어 나오며 죽음이 영생(永生)의 문(門)임을 깨우쳐 주었다 설악의 끝자락이 동해에 이를 때 만나는 절이 바로 낙산사다. 수평선이 시작되는 이곳 단애에 관음보살이 계셨던가. 그 물음을 안고 의상대사는 여기까지 찾아왔으리라. 법력 깊은 기도가 통했던지 용에게 여의주와 염주를 받게 되고, “대나무가 솟아나는 꼭대기에 불전을 지어라.”라는 말씀에 따라 낙산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유서 깊은 절도 화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2005년 4월 5일, 하필이면 식목일에 일어난 불은 홍련암 하나만을 남기고 죄다 태워버렸다. 누구도 제어 못 할 불기둥 속에서 탑은 저 홀로 걸어 나와 바다를 향해 섰다. 영생의 문은 이곳에서 비롯되는가. 이 죽음의 순간이 아니었으면 생명의 소중함을 어찌 알았으랴. 그래서인지 유난히 탑 앞에서 손을 모으는 이의 기원은 간절해 보인다. 이 7층 석탑도 조선 세조 때 낙산사 중창 당시 함께 세워진 것이다. 제아무리 석탑이라고 하나 그 화마를 온전히 피해갈 수는 없었고, 표면이 균열되는 등 상당한 훼손을 입었다. 이 탑은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보물 제1113호)

뒷짐 진 채 탑은 걷고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4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 - 이달균 뒷짐 진 채 탑은 걷고 절은 그저 못 본 척 때 이른 산천재 남명매 진다고 그래도 비로자나불 아는 듯 모르는 듯 부처는 산을 보는데 보살은 안개를 본다 물은 갇혀 있어도 연꽃을 피워내고 흘러서 닿을 수 없는 독경소리만 외롭다 벗들의 전화음도 저 홀로 길을 잃을 때, 머뭇거리지 말고 지리산 내원사 가자. 그곳에 닿기 전, 남명 조식이 기거하던 산천재에 남명매(南冥梅) 진다 하여 잠시 들렀다. 그 여정에 있어 남명매가 덤인지 내원사 석탑 구경이 덤인지 굳이 선후를 잴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내원사는 산청군 삼장면 장당골과 내원골이 합류하는 곳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되도록 여름은 피하고 봄가을 혹은 초겨울쯤이면 더 좋다. 장당골 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반야교다. 비 온 뒤라면 이 다리 위에서 물안개가 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탑은 대웅전 앞에 서 있다. 원래 흰빛이었을 화강석은 불에 타 황갈색을 띠고 있으며 도굴꾼에 의해 훼손 상태가 심하여 원래의 미려한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디 번듯한 탑만 탑이랴. 오면서 본, 지고 있는 매화도 꽃은 꽃이었다. 지리산 산안개에 상륜부가 감춰진 얼룩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