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40여 년 전, 나는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위치하는 ‘이카이노’라고 하는 동네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는 재일교포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일본인인 나와는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교포 2세 3세 젊은이들이 남북 입장 차이를 넘어 하나가 되어 민족 문화와 마음을 지켜가자고 '이쿠노 민족문화 축제'를 개최하려고 했었고, 이카이노에는 그 준비에 분주한 그들의 열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난 1985년 여름, 나는 그들의 부모님, 조부모님이 태어난 ‘고국’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한국을 찾았습니다. 대도시 서울을 피해 첫 목적지로 택한 곳은 경주와 부산이었습니다. 불과 1주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나에게는 처음 접하는 외국이었고, 무척 긴장하면서 혼자 거리를 헤매면서 커다란 문화 충격을 마음껏 겪었습니다. 낯선 곳을 찾아 거기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 때, 나에게는 ‘통행 어음’과 같은 사진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떠나기 전 벼락공부로 외운 한국어 “사진을 찍어도 좋습니까?”를 반복하면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오오타 준이치- 오는 9월 12일부터 인천관동갤러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02년 전(1923년) 오늘 9월 1일은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날입니다. 리히터 지진계로 7.9도를 기록한 이날의 대지진을 일본에서는 관동대진재(関東大震災)라 부르는데 우리는 이날을 조선인 관동대학살의 날로 기억합니다. 관동대지진은 일본이 명치유신 뒤 근대사회로 진입하여 맞이한 가장 큰 재난이었습니다. 지진으로 도쿄,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에 수많은 이재민과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도쿄 일대가 잿더미로 변하는 등 상당한 재산피해를 입었다. 문제는 무고한 조선인들이 일본의 군경과 민간인에게 학살당하는 만행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때 학살당한 조선인 수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상하이 임시정부의 기간지인 《독립신문》에 발표된 학살자 수는 6,661명에 이릅니다. 경찰이 계엄령을 선포한 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탄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라는 유언비어가 경찰에 의하여 유포되었고 일본 민간인 자경단(自警団)이 조선인을 무차별로 학살한 것입니다. 그때 요코하마, 아라카와 강변, 치바현 나기하라 등을 포함한 도쿄의 여러 곳에서 조선인 학살이 자행되었는데 지금도 도쿄위령당(납골보존) 지하에서 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장상훈)은 보존처리를 마친 관서병마절도사(關西兵馬節度使) 이종승(李鍾承, 1828~?) 만인산을 2025년 8월 26일(화)부터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이하 파주관) 열린보존과학실에서 처음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파주관 열린보존과학실에서 마련하는 네 번째 교체 전시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만인산 5점 가운데서 관서병마절도사 이종승과 희천군수(熙川郡守) 김영철(金永喆, 1836-1901)의 만인산 2점을 연이어 선보인다. 만인산은 양산의 일종으로, 선정(善政)을 베푼 수령이 임지를 떠날 때 고을 백성이 감사의 뜻을 담아 선물한 기념품이라 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모두 5점의 만인산을 소장하고 있으며, 제작시기는 주로 1873년에서 1887년 사이다. 만인산은 직물, 목재, 금속 등의 복합 재질로 구성되어 있어, 단일 재질 유물에 견줘 보존처리 과정이 복잡하고 전문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직물의 손상이 심해서 보존에 적어도 한해에서 여러 해가 걸리기도 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6년 상설전시관의 전시를 위한 보존처리를 시작으로 2024년까지 5점의 보존처리를 모두 끝냈다. 이와 같은 보존처리 과정에서의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