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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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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강요당한 여인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환향녀가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끌려간 여자들도 많지만 끌려가기 전에 죽은 여자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가 ‘병자호란’이라고 간단하게 말하지만, 그 전쟁사를 미시적(微視的)으로 들여다보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서에 보면 ‘포개진 시신들 사이로 젖먹이들이 어미를 찾아 기어다니며 울고 있다’라는 처참한 표현도 나옵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는 많은 왕족들과 고위관료 가족들이 피난 가 있었습니다. 인종은 이렇게 피난시켜놓고 뒤따라 강화도로 들어가려다가 청군에 의해 길이 막히는 바람에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었지요. 청군이 강화도에 들어왔을 때, 강화도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때 성리학의 허황된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사대부 여인들은 죽음을 택했습니다.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에 보면 유인립의 아내는 끝까지 버티다가 청군이 총을 난사해 몸의 살이 다 뜯겨나갔지만 꼿꼿하게 선 채 넘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호선의 아내는 토굴 안에 숨어 있다가 적병이 불을 질렀는데도 나오지 않고 그대로 타죽었답니다.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의 어머니 얘기도 나옵니다. 청군

허종ㆍ허침 형제 다리에서 낙마, 화를 면하다

종교교회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세종문화회관 뒷길에서 경복궁역 쪽으로 가다 보면 ‘종교교회’라고 있습니다. 종교교회는 캠벨 선교사가 1900년 부활절에 배화학당 기도실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며 시작되었는데, 교인이 늘어나면서 1908년 지금 자리에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역사 오랜 교회지요. 저는 대학 다닐 때 제 고교, 대학 선배가 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여 처음 ‘종교교회’라는 이름을 접하였습니다. 처음에 종교교회라고 하니, 당연히 ‘종교(宗敎)’가 먼저 떠올랐겠지요? 그래서 “굳이 교회 이름에 ‘宗敎’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있나?” 하며, 피식 웃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宗敎’교회가 아니라 ‘琮橋’교회였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종다리교회’가 될 텐데, 교회 이름에 다리 ‘橋’자가 들어가는 것도 여전히 특이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 여기에 ‘종침교(琮琛橋)’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청계천의 상류 부분인 백운동천과 백운동천에 합류하는 사직동천이 여기에 있어서 이를 건너가는 종침교라는 다리가 있었던 거지요. 백운동천과 사직동천은 지금은 복개되어, 그곳을 지나다녀도 여기에 시내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교회가 들어설 무렵에

부당한 명령 거부, 295명을 살린 경찰

우린 너무 몰랐다 6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해진 오스카 쉰들러(1908~1974)라고 아시지요? 쉰들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유대인 약 1,200명을 자신의 공장 노동자로 빼돌려 자기 재산을 소모해가며 끝까지 지켜낸 독일계 체코인 사업가입니다. 한국에도 그런 의인이 있어 한국판 쉰들러라고 불리지요. 도올의 책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으면서 알게 된 한국의 쉰들러는 바로 6. 25 당시 제주 성산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던 문형순 경감(1897~1966)입니다. 문 경감은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직전에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입니다. 그는 광복 뒤 경찰에 투신하여 1947년 7월 제주도로 부임합니다. 그다음 해에 4.3 민중항쟁이 발생하였으니, 문 경감은 4.3 민중항쟁을 직접 몸으로 겪으신 분입니다. 1948년 12월 말 무렵에 진압군인 제9연대는 여순진압 작전에 공적을 세운 제2연대와 맞교대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9연대는 떠나기 전에 자기들도 제2연대의 여순진압에 필적할만한 공적을 세우기 위해 군인으로서 기본적인 양심도 버립니다. 곧 이들은 가

여순 민중항쟁 때 검사 빨갱이로 몰려 총살

우린 너무 몰랐다 4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도올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보면 여순 민중항쟁 때 죽은 박찬길 검사 얘기도 나옵니다. 검사가 죽었다고 하니까 반군에 의해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아닙니다. 경찰에 의해 총살당한 것입니다. ‘으잉? 경찰이 죽였다고? 그럼 빨갱이 검사였겠구먼.’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박 검사는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검찰의 위력을 생각하면 검사가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는 것이 선뜻 믿기지 않지요? 지금부터 그 얘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여순항쟁 무렵 박 검사는 순천지청에 근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어떤 시대입니까? 없던 빨갱이도 만들어내던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박 검사는 경찰이 송치해오는 사건 가운데 증거가 부족한 사건은 과감하게 무혐의 처분을 하고, 경미한 사건은 기소유예합니다. 이렇게 박 검사의 무혐의 결정과 기소유예가 늘어가니까 경찰의 불만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찰의 불만에 기름을 붓는 일이 생겼습니다. 박 검사가 어느 경찰관을 기소한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어느 경찰관이 길을 가는데 한 남자가 이 경찰관을 보더니만 갑자기 도망가더랍니다. 의심이 든 경찰관은

미국과 이승만이 구원해준 친일파들

우린 너무 몰랐다 3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도올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분단이 되고, 아직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는 데에는 미국의 책임도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 소련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3.8선도 없었을 것 아닙니까? 미국은 일본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별로 생각이 없던 소련을 끌어들였습니다. 당시 소련은 서부전선의 병력을 빼서 동쪽으로 돌릴 만큼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소련은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 관동군과 대결을 벌이는 것을 주저하였습니다. 아마 러일전쟁 때 만만하게 보던 일본에 참패한 쓰라린 기억이 있어서 더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일본이 원자탄 한 방으로 비틀거리자, 소련은 미국이 차려준 밥상을 걷어갈까 봐 부랴부랴 만주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정세 판단을 잘하여 소련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분단의 비극도 없었을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우리의 역사나 문화, 우리민족의 염원에 대해서는 무지하였습니다. 그러니 한반도에 진주한 하지 중장은 약소국의 서러움을 씻어준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패전국의 한 영토에 진주한다

큰 반향 일으킨 도올 독립운동사 다큐멘터리

우린 너무 몰랐다 2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으면서 철학자인 도올이 어떻게 현대사에도 정통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풀렸습니다. 2004년에 EBS에서 <명동백작>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하였습니다. 명동을 무대로 활동하던 박인환, 김수영, 전혜린, 변영로, 이봉구 등 문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 것이지요. 명동백작은 이봉구의 별명입니다. 명동에 가면 명동예술극장 근처에 ‘은성주점 터’라는 표석이 있습니다. 이들이 드나들던 술집이 있던 곳을 알리는 표석이지요. 이 은성주점은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술집입니다. 명동에 나가실 일 있으면 한 번 이 표석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도올이 이 드라마의 광팬이었던 모양입니다. 도올은 드라마가 종영되는 날 밤 새벽에 흥에 겨워 <명동백작>이라는 시를 하나 씁니다. 오랜만에 보았다 명동의 백작들을 ... 김수영처럼 무엔지도 모르는 말장난이 아닌 물흐르듯 토해내는 피를 잉크 삼아 끄적거리고 싶어졌다 평범을 거부하며 자유를 구가하고 순간의 해탈을 위해 삶의 시각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려야 했던 그 군상들의 군더더기조차 이젠 소중한 생명의 저음 ........ 이 짧은 자유라도 만끽할 수 있다는 이

알아도 너무 많이 알아 괴롭다는 도올 김용옥

도올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고 1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도올 김용옥 선생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었습니다. 책 표지의 부제는 ‘해방,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입니다. 그렇기에 저도 도올이 보는 4.3과 여순사건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샀습니다. 그런데 역시 도올답게 글이 천방지축으로 튑니다. 너무 아는 것이 많으니까 글이 나아가다가도 곁길로 빠져 한참 설을 풀게 되지요. 도올도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이러한 얘기를 자세히 하고 앉아있을 계제가 아니지만, 한 예를 더 들어보자! 나의 죄업이란 진실로 너무 많이 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알아도 너무 정밀하고 정확하게 안다는 데 있다. 알면 괴롭다. 알기 때문에 남이 보지 못하는 측면이 너무 많이 보이고 또 그것을 종합해보면 우리 상식의 터무니없는 오류에 대해 분노가 치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눈감고 살기에는 너무도 억울한 것들이다. 세밀하게 안다는 것만으로 세계가 새롭게 보이지 않는다. 세밀하게 아는 것과 동시에 반드시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마이크로와 매크로는 반드시 동시적일 수밖에 없다.” 예! 도올은 알아도 너무 많이 압니다. 그래서 이 책도 400쪽 가까운 분량인데,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

중종은 왜 혼자 누워있나?

정릉으로 중종 모신 문정왕후, 자신은 태릉으로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6]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강남의 요지에는 두 임금이 이웃하여 영면(永眠)하고 있다. 바로 성종(선릉)과 그의 아들 중종(정릉)이다. 워낙 비싼 땅이라 그런지 능역(陵域)을 싹둑싹둑 잘라 최대한도로 개발하느라고, 왕릉 바로 옆까지 길이 나있다. 정릉 옆길은 이면도로라 그나마 차들이 적게 다니는데, 선릉 옆길에는 성종이 누워있건 말건 차들이 씽씽 달린다. 성종은 살아서는 조선의 문물을 완비하였다고 하여 묘호(廟號)도 이룰 ‘성(成)’자를 써서 성종이라 했지만, 죽어서는 영 잠자리가 편안치 않다. 임진왜란 때는 왜놈들이 무덤을 파헤치고 성종의 시신을 능욕하더니만, 오늘날 후손들은 왕릉에 바짝 붙여 넓은 도로를 내었으니 성종이 무덤 안에서 영원의 잠을 제대로 누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성종은 그나마 옆에 아내(정현왕후 윤씨)라도 같이 있지만, 중종은 홀로 누워있다. 임금이 영면하는 곳이면 당연히 그 옆에 왕비도 같이 있어야 하거늘, 중종은 왜 홀로 누워있는 것일까? 지금부터 그 사연을 알아보러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중종은 원래 고양시 서삼릉 내 둘째부인 장경왕후(희릉) 옆에 같이 묻혔었다.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엿새 만에 죽었으니, 중종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