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문화 넓게 보기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는 왜 윤동주를 일본에 알리고 있나?

일본 도쿄 진보쵸의 한국 북까페 <책거리(CHEKCCORI)>에서 대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윤동주 시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야나기하라 야스코 (楊原泰子, 71) 씨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올해 나라안팎에서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지만 20여 년 넘게 윤동주 시인을 일본에 알리는 일을 해온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를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해마다 2월 도쿄에서 윤동주 시인 추모회를 여는 등 윤동주 시인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를 기자는 지난 85일 오후 3, 일본 도쿄의 최대 고서점가 진보쵸(神保町)의 한국 북까페 <책거리(CHEKCCORI)>에서 만났다.

 

야나기하라 씨는 1년에 한두 번씩 윤동주 시인 관련 일로 한국에 다녀갈 정도로 한국통이며 한국어 실력도 상당하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건넨 명함에는 아무런 직함도 없이 이름과 연락처만 적혀있다. 그것은 원래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조용한 성품에서 나온 자세로 사실 야나기 하라 씨의 직함은 시인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記念する立教)’의 대표다. 올해 71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야나기 하라 씨와의 대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그는 말했다. “릿쿄대학의 모임은 이제 10년째지만 후쿠오카의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 尹東柱), 교토 도시샤대학 코리아 동창회 윤동주를 기리는 모임(京都同志社大学コリア同窓会尹東柱)1995년부터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희 보다는 대선배지요. 항상 연락을 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격려하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라며 겸손해 했다.


윤동주(1917.12.30~1945.2.16) 시인은 만주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공부했고, 숭실중학과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423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학 (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해 10월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으로 옮기는데 도시샤대학 재학 중이던 1943년 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27살의 나이로 순국의 길을 걷는다.


   

야나기하라 씨는 윤동주 시인이 다닌 도쿄 릿쿄대학 출신으로 일본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추도회인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記念する立教)’을 올해로 10회 째 이끌어 오고 있다. 이날 기자와 야나기 하라 씨와의 대담은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대담의 일부분은 누리편지(이메일)로 받아 정리하였다. 특히 기자가 86일부터 22일까지 아오모리의 네부타마쓰리(축제) 취재를 시작으로 일본 내에서의 장기간 이동 등으로 대담 기사를 이제야 싣게 됨을 야나기하라 씨에게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윤동주 시인을 만나 보람차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일본의 손꼽히는 윤동주 연구가 야나기하라 씨와의 대담을 통해 그가 어떻게 윤동주 시인과 만났는지, 그리고 어떠한 활동을 해왔는지 등을 소개하기로 한다.


 

  비극적인 삶에 대해 눈감을 수 없었다

  [대담]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대표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




 

- 윤동주 시인과의 첫 만남은 언제였습니까? 그 계기는 무엇인가요?

 

“20여 년 전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 1926-2006) 시인이 쓴 글을 읽고 윤동주 시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글에는 윤동주 시인이 릿쿄대학(立教大学)에 유학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그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사실을 알고 나의 대학 선배이기도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자상하고 조용한 청년이 옥사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 옥사한 사실을 알고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한 끝에 윤동주 시인이 남긴 자료들을 하나둘씩 찾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였지요.“

 

- 처음에 윤동주 시인 모임을 시작했을 때 일본인들의 관심은 어떠했습니까?

 

처음에는 시인 윤동주 고향을 찾는 모임을 만들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북간도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그 뒤 찍어온 사진을 주변에 보여주면서 윤동주 시인의 시와 생애를 소개하는 모임을 여러 번 가졌습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윤동주 시인의 존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윤동주 시인의 시와 생애에 대해 일본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그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눈감을 수 없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은 그의 시어(詩語)가 갖고 있는 강한 끌림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가 그런 마법의 힘을 갖고 있을 줄 말입니다.

 

- 릿쿄대학의 윤동주 모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2005년부터 윤동주 시인의 고향을 찾는 모임을 중심으로 여러 번 심포지엄을 열면서 언젠가는 릿쿄대학에서 추도행사를 열어야겠다는 염원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릿쿄대학의 채플레인(chaplain, 대학의 성직자)인 유시경 신부를 만난 뒤 20082월에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을 만들어 제1회 추도회를 열었습니다.

 

그해는 마침 릿쿄대학 창립 100돌을 맞는 해로 대학 측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릿쿄대학 이케부쿠로챔펠 (정식명칭, 릿쿄학원제성도예배당 立教学院諸聖徒礼拝堂’)은 정원이 250명인데 해마다 2월 추도회 때에는 추도객이 넘쳐 보통 의자를 100여개 더 준비해야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고 있습니다.

 

추도회는 대개 제 1부는 예배와 시 낭송, 2부는 강연회로 꾸려집니다. 2017년 올해는 10회째로 윤동주 시인 탄생 100년이기도 해서 제2부를 피아노와 첼로 연주 그리고 토크 콘서트를 집어넣었으며, 시낭송을 곁들인 윤동주 이야기라는 주제의 공연도 했습니다.“



- 윤동주 시인을 통해 야나기하라 선생님이 일본인에게 특별히 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의 모임을 만든 것은 윤동주 시인을 추모함과 동시에 일제에 의한 조선 침략 역사의 진실을 많은 일본인에게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처럼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청년이 왜 일본땅에서 옥사해야했는지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더 나아가 누구보다도 윤동주 시인이 원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평화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이 모임을 만들게 되었지요.”

 

-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의 모임의 활동을 소개해 주십시오.

 

가장 큰 활동은 해마다 2월 윤동주 추도회를 갖고 있으며, 10월에는 릿쿄대학 홈커밍에서 졸업생에게 윤동주 시인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릿쿄대학이문화커뮤니케이션 학부의 활동 협력, 릿쿄대학 윤동주국제교류장학금을 받는 학생과의 교류, 타대학에서 윤동주 관련 강연회, 영화 동주상영 시의 토크와 시낭송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일본으로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안내를 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요.”

 

- 윤동주 시인을 알게 되어 보람 있었던 일은?

 

윤동주 시인의 시와 생애를 통해 식민지 조선 유학생의 아픔과 고뇌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윤동주 시인을 통해 나 자신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아니었으면 한국과 일본의 좋은 분들과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한국의 윤동주 시인의 조카 윤인석 선생, 윤형주 선생, 송우혜 선생뿐만 아니라 연구자, 시인, 유학생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소중한 만남을 통해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이 점이 보람되고 감사한 일입니다.”

 

- 윤동주 시인 모임을 이끌어 가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윤동주 시인의 추도 모임은 릿쿄대학의 후원으로 채플레인 장소를 제공받고 있습니다. 이곳은 윤동주 시인이 릿쿄대학 재학 중에 다녔던 곳이라 매우 뜻깊은 곳입니다. 추도회 장소뿐 아니라 여러 행사에 많은 분들의 협력을 얻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모두 윤동주 시인의 인품과 훌륭한 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로서는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지만 내 자신이 나이가 들어 앞으로  이 모임을 오래 지속시키려면 어떻게 해나가는 것이 좋을지 은근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윤동주 시인과 관련하여 어떤 계획이나 꿈을 갖고 계신지요?

 

이미 내년 2시인 윤동주와 함께 2018’의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윤동주 시인의 100주년 탄생해로 영화 동주의 상영과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여 진행 중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와 생애에 관심을 갖고 과거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시대와 국경과 언어의 벽을 뛰어 넘어 윤동주 시인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꾸준히 가르쳐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그만큼 강한 힘과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요. 앞으로도 윤동주 시인의 시와 생애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힘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