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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경복궁 영추문, 드디어 빗장을 푼다

2014년부터 닫혔던 영추문, 11월부터 개방 예정
7일 세계문자심포지엄 폐막 퍼포먼스 “영추문을 열다” 열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 중기 문신 정철(1536∼1594)이 쓴 《관동별곡》에는 “연추문(延秋門, 영추문의 옛 이름)으로 달려 들어가 경회루 남문 바라보며 임금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니”라는 대목이 나온다. 굳게 닫혔던 이 영추문(迎秋門) , 드디어 빗장을 풀고 문을 활짝 열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3일 “그동안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의 통행이 제한돼 개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인력 배치와 소방, 전기 시설 등의 실무 작업을 마무리한 후 11월부터 시민들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전면 개방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사실 김슬옹 세종나신곳성역화국민위원회 사무총장은 지난해 8월 20일 영추문 폐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칼럼 “경복궁 영추문은 왜 꽁꽁 닫아놓았나”를 우리 신문에 올린 적이 있었고, 또 지난 5월 8일에 기자가 쓴 “한재준의 <붉은 한글>, 세상에 대한 외침” 기사에서 한재준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이를 지적한 바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신문은 지난해 8월 문화재청장 앞으로 “영추문 개방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으로 공문을 보내 영추문 개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의 소망이 드디어 이뤄진 것이다. 다음 달 본격적인 영추문을 개방하기에 앞서, 한글날 제572돌을 기려 어제 10월 7일 잠깐 문을 열었다. 세계문자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세계문자심포지아 2018’의 폐막식 행사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 시민대표가 “영추문을 열어라”고 하는 외침을 한 뒤 10여분 동안 문이 열린 것이다.

 

 

 

문이 열리기 직전 폐막 퍼포먼스 “영추문을 열다” 행사 기획자인 서울여대 한재준 교수는 “영추문을 열어라”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읽었다.

 

 

                            영추문을 열어라

 

     조선 시대에 문무백관이 드나들던 경복궁의 서쪽 문,

     이 영추문은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 임금이 태어나신 마을과

     집현전이 있던 경복궁을 가장 가깝게 이어주는 대문입니다.

     이 문의 바로 안쪽에 경회루와 수정전(옛 집현전 터)이 있고,

     흠경각, 사정전, 강녕전 등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역사적인 공간이 곳곳에 있습니다.

 

     세종이 탄생한 인왕산 기슭으로부터 경복궁까지,

     영추문으로 이어지는 길,

     이 길은 매우 뜻깊은 길입니다.

     새로운 문자 한글에 얽힌 600년 역사 문화의 길입니다.

     그 가운데에 영추문이 있습니다.

 

     영추문을 열면,

     사람 이도와 훈민정음의 가치가 다시 살아날 것이고,

     인왕산 지역과 경복궁 일대의 가치가 함께 살아날 것이고,

     문자 도시 서울의 가치가 더 새로워질 것입니다.

 

                                                2018년  10월  7일

                                               세계문자연구소

                                            세계문자심포지아

 

 

 

엄숙한 순간이었다. 선언문 낭독이 있은 뒤 참가자들은 영추문을 함께 밀고 들어가서 기쁨을 함께 누렸다. 이 행사의 주최자인 세계문자연구소 임옥상 대표와 영추문 개방에 큰 힘을 보탠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대로 한글이름연구소 소장 등은 감격적인 인사말을 토해 놓았다.

 

 

 

 

 

이후 한재준 교수의 이끔과 해설에 따라 집현전 터(수정전), 강녕전, 흠경각 등 훈민정음이 탄생되고  세종대왕의 얼이 서린 경복궁 곳곳을 돌아보는 답사도 이어졌다.

 

영추문은 우리 역사의 주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기도 했는데 특히 세종대왕과 인연이 깊다. 세종은 1397년 현재 종로구 통인동 근처인 준수방(俊秀坊)에서 탄생했다. 준수방은 영추문 맞은편 의통방(義通坊·현재 통의동 일대) 뒤를 흐르는 개천 건너편이다. 또 집권 뒤엔 영추문에서 가까운 경회루 남쪽 집현전(현 수정전)을 설치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집필했다.

 

그간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은 그런 영추문이 닫혀 있어 매우 불편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경복궁은 현재 남쪽 광화문(光化門)과 동쪽 동십자각 옆 주차장 출입문 등으로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경복궁에서 세종대왕 생가터(준수방)가 있는 세종마을로 나가려면 영추문이 닫혀 있어서 광화문까지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영추문은 경북궁의 동쪽 문인 건춘문(建春門)의 반대편에 있다. 동쪽은 봄에 해당하여 ‘춘(春)’이라고 하였는데, 가을에 해당하는 서쪽 문이어서 ‘추(秋)’를 붙였다. 주로 승지 등 관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들던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다. 1926년 일제가 경복궁 전각(殿閣)들을 헐어낼 때 무너졌는데 1975년 지금처럼 원형대로 복원했다. 광화문만큼 화려한 꾸밈은 없지만 겹처마 구조와 지붕 위에 치미(鴟尾), 잡상(雜像) 등이 있어 소담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재준 교수는 “영추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이 문이 열려야 한글길이 열린다. 경복궁은 훈민정음 창제의 중심 공간이며, 《훈민정음》 해례본을 집필한 곳이다. 또한 이를 주도한 세종 이도는 지금의 경복궁 서쪽 옛 준수방 터에서 태어났다. 경복궁에는 경회루 앞 수정전(옛 집현전 터)을 비롯하여 흠경각, 사정전, 강녕전 등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역사적인 공간이 곳곳에 있다. 특히 세종의 침전 강녕전 옆에는 흠경각을 두어 자동물시계 옥루(玉漏)를 설치해 백성과 시간을 나눴고, 이를 바탕으로 문자 훈민정음을 창제해 또한 이를 나눈 것이다. 이런 사실과 각 장소에 얽힌 사연을 잘 풀어내면 경복궁의 상징성은 더 높아진다. 따라서 한글의 가치도 더 실감나게 전할 수 있다.”고 영추문 개방의 의의를 소리 높여 외친다.

 

행사에 참여했던 네덜란드대사관 이하진 선임문화스포츠담당관은 “영추문은 조선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문이었는데 그동안 닫혀있어서 안타까웠다. 내가 하는 일이 문화와 관련된 일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영추문의 개방은 좀 더 서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쁜 마음이다.”라는 말로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