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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장 숨진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9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왜변(倭變)이 일어났다고 들음에 미쳐서 곽재우는 그 당시 별서(別墅)에 있었는데, 곧 크게 통곡하고는 스스로 별서를 불태우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재물을 모두 흩어서 무뢰배 1백여 명을 모아 왜적을 토벌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먼저 의령(宜寧)에 있는 왜적을 치고 다음으로 포위당한 진주성(晉州城)을 구원하여 여러 차례 왜적을 격파하였다. (중간 줄임) 어느 날 홀연히 바람과 우레가 그의 방을 감싸더니 곽재우가 그 방안에서 갑자기 죽었다.”

 

 

이는 《광해군일기[정초본]》 광해 9년(1617) 4월 27일(양력 5월 31일) 기록으로 한성부 좌윤을 지낸 곽재우 죽음의 기록입니다. 곽재우(郭再祐)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한가로이 세월을 보내던 시골 선비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왜군이 부산포를 점령했다는 기별이 당도하자 스스로 의병대장이 되어 의병들을 이끌고 왜군을 크게 물리쳐서 전라도로 향하는 길목을 막았지요. 이후에도 거름강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낙동강을 이용하는 일본군의 보급로를 가로막았으며, 현풍과 창녕과 진주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쳤습니다.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보면 곽재우는 싸울 때 항상 붉은 비단으로 만든 철릭(帖裏)을 입고 당상관(堂上官)의 치장을 갖추고 스스로 '천강홍의대장군(天降紅衣大將軍)'이라 칭하면서 종횡무진 적을 무찌르니 적이 “홍의장군”이라 하면서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또 곽재우는 조정의 관직도 받지 않았지만, 심지어는 적군의 머리를 모두 강 속에 던져 버리고 공을 스스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고인(古人)에게 부끄러운 점이 없으니 후하게 포장하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라고 했다는 《선조실록》 기록도 보입니다. 오늘은 홍의장군 곽재우가 숨진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