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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일본군이 두려워한 평민의병장 신돌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0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41년 전(1878년) 11월 3일은 의병대장 신돌석 선생이 태어난 날이지요. 신돌석 선생은 대한제국 말기의 평민출신 항일 의병장으로, 을미사변과 을사늑약 이후 경상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준 활약을 하였습니다. 선생은 19살의 나이로 동지들을 규합하여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타고난 용기와 담력으로 일본군과 대적할 때마다 큰 전공을 세웠고, 그에 따라 영해의병진의 중군장이 되었지요.

 

 

1906년 3월 13일 선생은 다시 의병을 일으켰는데 선생의 명성을 듣고 많은 청장년들이 몰려와 의병부대의 규모는 3,000여 명으로 커졌고 사기는 충천하였습니다. 선생은 의병부대를 이끌고 먼저 영해부근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을 격파한 뒤, 그 해 4월에는 울진 장흥관에 정박 중이던 일본 배 9척을 격침시켰습니다. 이후 선생의 의병부대는 동해안 일대와 경북 내륙지방, 강원도 내륙지방 등에서 일본군수비대와 여러 차례 격전을 벌여 크게 승리하였지요. 이에 따라 일본군은 선생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선생은 1907년 11월 이인영, 허위, 이강년 등 양반 유림이 중심이 되어 13도창의군을 결성할 때, 평민 출신이었지만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교남창의대장으로 뽑힐 정도였습니다. 신돌석 장군이 의병부대를 게릴라식으로 신출귀목하게 운영함으로써 큰 전과를 올리자 일제는 선생을 회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작을 벌였는데 일제의 귀순권유서를 불살라 버리고 죽을 때까지 항일투쟁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런 신돌석 장군은 그의 부하 김상렬의 손에 죽임을 당해 1908년 11월 18일 31살의 나이로 순국합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