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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면암 선생, 단식으로 순국하지 않았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2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생각건대, 신이 이곳으로 들어온 뒤에 한 숟가락의 쌀과 한 모금의 물도 모두 적의 손에서 나온 것이면, 설사 적이 신을 죽이지 않더라도 차마 구복(口腹, 먹고살기 위하여 음식을 섭취하는 입과 배)으로써 스스로 누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기에 마침내 음식을 물리쳐 옛사람이 스스로 죽어서 선왕에 보답한 의를 따를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신의 나이 74살이니, 죽어도 무엇이 애석하겠습니까?”

 

 

이는 면암 최익현이 대마도 유배 당시 임병찬에게 쓰게 한 유소(儒疏, 유생들이 연명하여 올리던 상소)에 나오는 말입니다. 의병연구소장 이태룡 박사에 따르면 당시 대마도 경비대장이 실내에서는 갓을 쓸 수 없다며 강제로 갓을 벗기려 하자 김홍집내각이 내렸던 단발령(斷髮令)에도 굴복하지 않았는데 왜놈 대장의 말대로 벗을 수는 없다며 왜놈들의 온갖 곤욕을 이겨내며 면암과 임병찬 등은 단식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틀 뒤 경비대장이 실내에서 갓 쓰는 것을 허락하였는데 이에 이들은 바로 단식을 중단하였습니다.

 

그 뒤 면암은 1906년 12월 4일, 대마도에서 음식을 먹으면 토하는 질병으로 인해 자리에 눕게 됩니다. 이에 가족들에게 알려 조선에서 한의사들이 급히 건너가 치료해보려 했지만 호전시키지 못하고 결국 이듬해 1월 1일 병사 순국했습니다. 이태룡 박사는 사실이 그런데도 50여 년 동안 국정교과서였던 고등학교 국사책에 단식으로 순국했다 하여 만고충절의 표본으로 삼았는데 이는 오히려 면암 선생의 충절을 욕되게 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처단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하고 72살의 고령에 의병을 일으켰던 우국지사 면암 최익현 선생은 186년 전 오늘(12월 5일) 태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