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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나들이

[화보] 네마리 사자와 제천 사자빈신사터 구층석탑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사자빈신사터에는 특이한 조형의 석탑이 있다. 본래는 9층석탑이었으나, 5층 지붕돌 윗부분은 산실되어 불완전한 석탑이지만, 남아있는 부분만으로도 그 독특한 형상과 아름다움은 각별한 대접을 받을만 한 석탑이다. 윗부분이 없어졌지만, 기자가 찾은 날에도 석탑 바로 뒷편 바닥에  한층의 지붕이 뒹구는 것으로 보아, 주변을 발굴조사 한다면 없어진 부분의 석탑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천 사자빈신사는 고려 여덟번째 왕인 현종13년(1022)에 창건한 절이라고, 탑의 기단 앞 부분에 새겨놓아, 그 조성시기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석탑이다. 이런 변형된 석탑은 신라시대 전형적인 석탑에서 벗어나 차츰 새롭고, 다양한 모양의 석탑으로 변형 발전해가는 한국석탑의 변천사를 알게 해주어 매우 소중한 탑이다. 

 

한국의 석탑은 불국사 석가탑을 완전한 형태로 보고, 오랫동안 답습되어오다가, 신라 말 이후 차츰 층수도 5층, 7층, 9층 등 다양하게 발전하여 탑의 조형성도 변하고 기단의 모양도 변화하였다. 그런 가운데 사자빈신사터 석탑의 기단은 특이하게도 석사자를 네 모서리에 배치하여 사자가 지키는 석탑으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4마리의 사자가 탑의 기단에 배치된 예는 화엄사 사사자석탑이 있다.

 

또, 네 모서리에 사자가 있으면서, 그 가운데는 보살상을 배치하여,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었으며 의미도 더욱 보완하였다. 그런데 이 네 귀퉁이에 있는 사자는 각각 별개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모양은 사자이나 그 위에 지어지는 9층의 탑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기둥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자가 앉아있는 기단 받침돌은 약간 경사져 있는데 사자는 그 위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으로 탑 전체는 수평을 잘 맞추어야만 탑 전체가 수직으로 서있을 수 있다. 따라서 네마리 사자의 아랫부분은 기단 밑돌과 닿은 면이 최대한 많고 고르게 잘 앉혀야하고, 또 사자의 머리는 사자가 이고 있는 기단상부돌과 닿는 면이 많아야만 사자의 머릿돌이 위에서 누르는 하중으로 부서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석탑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네귀퉁이에 사자머리부분이 수평을 이루기도 쉽지 않지만, 네곳이 하중을 고르게 분담하기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어렵게 사자로 기둥삼아 세워진 사자기단의 위에는 탑의 본체가 놓여있는데, 층수가 많은 만큼 각각의 층 높이는 작아졌지만, 전체적으로는 불국사 석가탑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본래 9층 탑이지만 상륜부분이 산실되어 어떤 모습일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만일 있었다면 그 모습은 신라탑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한다. 이 탑은 그 조형적 특이성 역사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 보아  상부까지 제대로만 갖추었다면 화엄사 사사자석탑처럼 국보급으로 충분하나, 아쉽게도 윗부분을 찾지 못하여 국보보다는 한등급 낮은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그런데 절의 이름이 매우 생소한 "사자빈신사"라는 이름이다. 절 이름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자빈신"이란 말은 불교의 역사적 변천과정에서 볼때 고려시대 크게 융성했던 화엄사상에서 유래한다.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이라, 온세상이 부처님 모습이요, 하는일은 모두 부처님 공적이라는 화엄사상에 따라, 이 세상을 화엄불국토로 이루고자 화엄경의 요지를 믿고 따르던 고려시대였기에, 그중 화엄경 입법계품에 표현된 부처님이 선정에 드는 모습을 동물들의 왕인 사자에 빗대어, 사자빈신(獅子嚬呻)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부처님이 선정에 드는 화엄불국정토를 이룬 절"이라는 뜻으로 절의 이름으로 사자빈신사라 붙인 것이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석탑의 2층기단 네 모퉁이에 사자와 보살(부처님)로 형상화 한 것이다. 불교에서 사자는 깨달음과 지혜의 상징으로 보며, 이를 보살로는 문수보살로 표현 하지만, 더 나아가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을 보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부처님의 설법을 사자후(獅子吼=사자가 뭇 동물들을 향하여 크게 울부짓는 소리)라고도 한다. 사자가 한번 으르렁하면 들판의 모든 동물들이 그 소리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초겨울 스산한 날씨에 덩그렇게 홀로 남은 사자빈신사터 석탑의 주변에는 전각들이 있던 곳이 밭으로 이용되고 있고, 그나마 푸르던 잎들이 다 떨어져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30여년 정도 되어보이는 민가가 자리잡고 있어 본래 주인 잃은 천년 석탑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사자빈신사터 석탑 주변을 몇 바퀴 돌면서 그나마 이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석탑의 멋진 모습을 보노라니, 기자는 옛 고려시대 조상을 보는 듯 반가움을 느끼면서도, 한편 아직 발굴조사도 제대로 안되어 주변정비도 되지 못한 모습을 보니 사자빈신사를 창건했던 옛 고려인들의 뜻에 너무도 못미쳐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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