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1 (수)

  • 구름많음동두천 15.0℃
  • 흐림강릉 12.4℃
  • 구름많음서울 13.2℃
  • 구름많음대전 13.6℃
  • 흐림대구 15.7℃
  • 흐림울산 14.0℃
  • 구름많음광주 13.4℃
  • 흐림부산 12.9℃
  • 구름많음고창 12.3℃
  • 흐림제주 13.4℃
  • 구름조금강화 14.3℃
  • 흐림보은 13.0℃
  • 구름많음금산 13.7℃
  • 구름많음강진군 13.1℃
  • 흐림경주시 14.7℃
  • 흐림거제 14.6℃
기상청 제공
닫기

우리문화편지

강력한 민족말살 정책의 하나 “창씨개명”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7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 민사령 개정에 의한 조선 사람의 씨 제도는 드디어 명 11일 빛나는 황기 2,600년의 기원가절을 기약하고 시행을 보게 되었다. 조선 민중의 열렬한 요망에 맞추어 원대한 이상으로써 제정된 이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서 총독부에서는 법무국을 중심으로 하여 각지 약 60개 소에서 협의회를 열고 호적 사무에 관한 부군읍면의 끝까지 취지가 철저하게 인식되었으므로 일반 민중의 씨 창설 계출에 대한 준비는 조금도 유감스러운 점이 없이 준비되어 있다.”

 

 

이는 조선일보 1940년 2월 11일 치 기사로 이날부터 “창씨개명”을 시작한다는 얘기입니다. 일제는 1930년대 후반 들어 강력한 민족말살정책과 황민화(皇民化)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가 1939년 12월 공포된 ‘창씨개명령’입니다. 조선의 성 대신 일본식 씨를 만들고 이름을 다시 짓도록 강요하는 법령이었지요. 일제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이들은 불령선인(不逞鮮人) 곧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 하여 각종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자녀 학교 입학 불허, 관리 채용 차별은 물론 식량 배급에서 제외하는가 하면 심지어 우편물도 배달하지 않았지요.

 

이 때문에 주어진 기한 안에 80%의 조선인이 창씨개명을 했습니다. 개중에는 앞장서서 창씨개명을 한 이들도 있었지요. 특히 작가 이광수는 아침 관리들이 문을 여는 시각을 기다려 가장 먼저 달려가 ‘향산광랑(香山光浪)’이란 이름으로 등록을 마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조금 더 천황의 신민답게 살기 위해 창씨개명 한다.”라고 까지 강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되 성을 개새끼란 뜻으로 ‘견자(犬子)’라고 붙이는 등 저항의 뜻을 표시하거나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한 이들도 적지 않았지요. 특히 한용운 선생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