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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세수한 신채호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8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세수할 때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물을 찍어다 바르는 버릇 때문에 마룻바닥, 저고리 소매와 바짓가랑이가 온통 물투성이가 됐다고 합니다. 선생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이면 절대로 뜻을 굽히지 않았는데, 특히 일본이 지배하는 땅에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며 꼿꼿이 서서 세수를 한 것입니다. 1936년 오늘(2월 21일)은 단재 선생이, 차디찬 감옥에서 순국한 날입니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드물게 언론, 역사, 그리고 독립운동 세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한 분이지요. 먼저 언론인으로서는 황성신문의 논설위원에 이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어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고 침략 논리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애국계몽운동의 실천적 지식인으로 크게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리고 사학자로서는 식민사관에 맞서서 역사의식을 갖추는 것이 곧 애국심을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독사신론(讀史新論)》과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를 펴냈으며, 특히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총론에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기록’이라는 그의 유명한 민족주의 사관을 극명하게 이론화하여 밝혔습니다.

 

선생은 독립운동가로도 뛰어난 활동을 했는데 1910년 안창호 등과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으며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만들 때 참가했고 그 뒤 군사 행동으로 일본과 맞서기도 했습니다. 또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형성과 국권피탈 이후 최대의 한민족 독립운동단체인 ‘권업회’의 조직에 힘쓰고 1928년 북경에서 '무정부주의동방연맹 북경회의'를 조직하기도 합니다. 그 뒤 1929년 5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0년형의 언도를 받고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1935년 그의 건강이 매우 악화하자 형무소에서 그의 친척 가운데 친일파 한 사람을 보호자로 삼아 내보내려 했지요. 그러나 선생은 "친일파에게 내 몸을 맡길 수 없다."라며 옥문을 나서지 않았고 결국,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독립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라고 외쳤던 단재 선생을 기려야 할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