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빨간 구두
시인 김태영
두메산골 단발머리 소녀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뒷굽 높은 빨간 구두
세월이 먼저 가져가 버렸다.
얼마 전 KBS 1TV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서는 가수 알리가 고 나애심 씨의 히트곡 “세월이 가면”을 불렀다. 고 나애심을 자신의 가슴 속에 이입시켜 불렀다가 자신만의 노래로 재해석하기도 해 관객들의 큰 손뼉을 받았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이 시를 쓴 박인환은 모더니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전후 폐허의 공간을 술과 낭만으로 누볐다. ‘세월이 가면’은 전쟁으로 가족과 연인을 잃고, 살아가던 당시 사람들의 아픈 가슴을 다시 한번 울게 만들었던 시였다. 우리는 이 노래를 다시 들을 때면 옛 추억이 떠올라 울컥하기도 한다.
며칠 전은 6년 전 2014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했던 날이었다. 하필 그 이름이 ‘세월호’였더란 말인가? 유가족들은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세월호 침몰 해역을 다시 찾아 헌화했다. 그러나 그곳엔 국화꽃만 둥둥 떠내려갈 뿐 아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도 그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은 간다. 나는 걷지만, 세월은 뛴다. 어떤 이는 세월의 흔적을 지운다고 얼굴에 보톡스를 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월은 여지없이 간다. 김태영 시인은 “두메산골 단발머리 소녀가 /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 뒷굽 높은 빨간 구두 / 세월이 먼저 가져가 버렸다.”라고 노래한다. 빨간 구두를 가져가 버린 세월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아파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동화처럼 담담하게 노래할 뿐이다. <우리문화 평론가 김영조>
* 김태영 (시인)
실버넷 기자
한국문인협회ㆍ서울시인협회 회원
2006년 문학공간 시인상
시집 《해바라기 연가》, 《빨간 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