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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백사 이항복의 가르침, 나오고 물러감의 철학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37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在郊那似在家肥(재교나사재가비)  교외에 있는 것이 어찌 집에서 살찌는 것만 하겠냐고

人笑冥鴻作計非(인소명홍작계비)  사람들이 기러기 세운 계획 잘못됐다 비웃지만

莫把去留論得失(막파거류론득실)  가고 머무름으로 얻고 잃음을 말하지 말라

江南水闊網羅稀(강남수활망라희)  강남에는 물이 넓고 그물도 드물다네

 

 

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 지은 ‘영정안(詠庭雁)’ 곧 “뜰의 기러기를 노래함”이라는 한사로, 벼슬에서 물러나 숨어 사는 것이 더 슬기롭다는 것을 기러기에 비유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백사는 말합니다. 들판에 있는 것이 어찌 집에서 뒹굴뒹굴 살찌는 것만 하겠냐고 또 사람들이 기러기 세운 계획이 잘못됐다고 비웃지만, 나오고 물러감만을 가지고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따지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강남에는 물이 넓어서 기러기가 살기 편하고 기러기를 잡는 그물도 많지 않다고 노래하지요. 여기서 그물은 벼슬길에 생기는 위험을 비유한 것입니다.

 

백사 이항복은 임진왜란ㆍ정유재란 당시 5번이나 병조판서에 오를 만큼 선조의 신임을 받았으며, 전란 뒤에는 그 수습책에 힘썼습니다. 정유재란 때는 조선이 왜와 함께 명나라를 치려고 한다고 명나라에서 오해하는 일이 벌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진주사(陳奏使)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는데, 그의 탁월한 외교적 수완으로 전란을 무사히 극복하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항복은 1617년 이이첨(李爾瞻) 등 강경 대북파가 주도한 폐모론(廢母論)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다가 삭탈관직되고 북청(北靑)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는데 죽은 뒤에 복관되고 청백리(淸白吏)에 선정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