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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화북포구에 추사의 바람이 분다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2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제주 화북포구에서

 

                           - 고명주

 

       포구에 파도가 이니

       추사 선생 바람인가?

       구년의 정진 속에

       수선화가 피어나니

       제주의 역사 속에

       영원히 향기나리.

 

                 고명주 첫시집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리고 그 너머》에서

 

 

 

 

제주시에서 언덕 하나를 둔 지척간에 있는 화북포구는 ‘베린냇개’ 또는 ‘별도포’라고 불렀다. 조천포구와 더불어 조선시대에 육지와 뱃길을 이어주던 2대 포구 가운데 하나로 대부분 유배인과 벼슬아치들은 이 포구로 들어왔다. 조선의 으뜸 명필이며, 학자인 추사 김정희도 이곳을 통해 유배를 왔음이다. 추사는 54살에 동지부사가 되어 연경으로 떠나기 직전 유배를 가야했고, 제주도에 들어와 험난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좁은 방안에는 거미와 지네가 기어 다녔고, 콧속에 난 혹 때문에 숨 쉬는 것도 고통스러웠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혀에 난 종기 때문에 침을 삼키는 것조차 힘든 날,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편지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유배지에서 화가 날 때도 붓을 들었고 외로울 때도 붓을 들었음은 물론 슬프고 지치고 서러움이 복받칠 때도 붓을 들었으며 어쩌다 한 번씩 받게 되는 반가운 소식이 올 때도 지체하지 않고 붓을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비로소 인생을 긍정하는 법을 배웠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자신에게 엄습해오면 몸부림치지 않고 받아들였으며, 그 고통의 시간을 삭히고 곰 삭혀 온전히 발효시킨 내공을 글씨 속에 쏟아부었으며 포기하고 싶은 세월을 붓질로 버텨 천하의 추사체를 완성했다.

 

여기 고명주 시인은 추사의 그런 위대함을 안다. 심지어 화북포구에 파도가 일어도 추사 선생의 바람으로 체득한다. 그리고 아홉 해의 정진 속에 유배한 집 마당에 수선화가 피었고, 드디어 제주의 역사 속에 영원히 향기 날 것이라고 노래한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