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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고려 태조 왕건의 초상화를 모셨던 안성 봉업사터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그 이름도 생소한 봉업사(奉業寺)는 안성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폐허지만 한때 봉업사는 양주 회암사, 여주 고달사와 함께 고려시대 경기도 3대사찰로  꼽히는 거대한 규모의 절이었다. 절 이름  "봉업"이란 고려의 왕업을 받든다는 의미로, 조선조 서울 근처 왕릉들을 보살피기 위하여 지었던 절들처럼 왕실과 관련된 절 이름이다. 현재 서울 근교에는 왕능과 관련된 절들로 남양주 봉선사, 강남 봉은사가 대표적인데, 봉선사는 세조의 광릉, 봉은사는 성종과 중종의 능을 관리하기 위한 절이었다.

 

안성의 봉업사는 고려의 첫 임금인 태조 왕건의 초상을 절에 모시고, 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였던 절로 고려가 창건된 뒤 고려광종때 봉업사로 새롭게 중창된 뒤 조선이 들어설 때까지 고려왕실의 보살핌을 받고 융성했던 절이었다, 그러나 절의 흥망성쇠도 왕조의 흥망성쇠에 따랐기에 조선이 들어선 이후 고려의 흔적 지우기 영향으로 봉업사는 조선시대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안성 봉업사가 있던 곳은 안성 죽주산성 바로 아래로 넓은 평지로, 지리적으로 영남에서 서울로 오르는 길목이어서 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지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조선조에 유학을 섬기던 선비들은 봉업사 근처 지나기를 꺼려했을 듯 싶다. 조선조에 들어서 언제인지 모르게 폐사가 되고보니, 절의 경내 수만평 드넓은 절터는 흙속에 파묻히게 되고, 썩지 않는 돌들은 땅속에 묻히게 되었다. 거대한 탑도 당간지주도 절의 예불대상이었던 불상들도 모두가 땅에 파묻혔다. 그렇게 파묻힌 깊이는 1m가 넘는다.

 

그뒤  500여년의 세월이 흘러, 절터는 논과 밭이되어 백성들의 곡물 생산지가 되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땅속에 묻혀있던 석물과 기와들이 하나 둘 나고고, 광복이후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국가적으로 문화재에 대한 예산이 생기면서 1966년 경지정리사업을 통해 유구가 발굴되자 문화재청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이곳이 고려사에 기록으로만 전하던 고려의 왕실사찰 봉업사였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봉업사는 고려왕실사찰이나, 그 이전에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화차사(華次寺)로 부르던 절이 있었던 곳에 이름을 태조왕건과 건국이념을 받든다는 의미로 봉업사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는 고려가 창업될 당시 왕건의 오른팔과 같았던 장수 《능달》이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능달》은 이곳에서 가까운 청주지역의 호족이었다.

 

현재 봉업사터에는 땅속에 묻혀있던 석조물들 중 다시 세운 오층석탑(보물 제435호)과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삼층석탑과 당간지주가 있다. 그런데 이곳에 있다가 칠장사로 옮겨져있는 『봉업사지석불입상』(보물 제983호)도 있어, 봉업사터에서 발굴된 문화재는 꽤 많이 있다. 봉업사터 주변에는 봉업사 본터 이외에도 사내 암자들도 있었던바 본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3층석탑과 석불이 이를 말해준다. 이들 또한 조성된 시기는 신라말 고려초기로 보여진다.

 

봉업사 본터에서 조금 떨어진 주변에 흩어져있는 경기도 지방문화재들인 석탑과 석불중에서도 석불은 그 입체적 형상이 거의 완전하고, 석불의 좌대까지 온전하여 매우 귀한 문화재라는 생각이 들어 그 가치는 재평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된다. 문화재의 평가는 문화재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문화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을 때 비로서 그 가치도 새롭게 알게되는 것이다. 봉업사본터에서 약간 떨어진 산비탈면에 위치한 신라말 석불의 재평가를 기원해 본다.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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